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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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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경
기사입력 2002-06-17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국가에 의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탄압은 줄어 들었으나, 유연한 방식의 통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은 무력하여 소설가들의 구속 및 유죄판결이나 표현매체 전반에 대한 제한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등의 제정이 깊은 논의나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이루어졌다. 이 점은 표현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 기본권에 그치지 않고 여론 형성과 민주적 제 원칙의 원활한 운용에 필수적인 제도라는 무게에 값하는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Ⅰ 들어가며

2000년 7월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공청회로부터 시작되었던 인터넷내용등급제 논란이 햇수로 삼년째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초기에 적극적인 편이었던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인터넷 검열 반대 운동이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적으로 소극적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국가의 검열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을 할 만큼의 충분한 확신은 부족해진 듯 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2000년 12월부터 발발한 일련의 '자살 사이트 사건'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다음해 2월에는 전남 목포와 충북 청주에서 평소 자살 사이트를 자주 접속했던 것으로 알려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즉,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로도 계속 불거진 '불건전 사이트' 사건들을 겪으면서 시민사회운동 진영은 인터넷의 검열을 반대해야 한다는 당위와 불건전 사이트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사이에서 분열하고 갈등해 왔다. 전자가 음반·영화 등에 대한 국가 검열을 폐지해 온 남한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 있다면, 후자는 국가가 먼저 나서 시민사회운동 진영을 설득하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후자의 설득력이 전자를 압도할 만큼 비중이 커진 것은 일차적으로 '청소년 보호' 담론이 사회전반적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신보수주의적 현상의 배경에는 공공 부문의 역할과 책임을 축소하면서 교육·사회복지 영역을 시장에 방치한 신자유주의가 존재하고 있다.

다른한편으로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에 매우 무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우리의 공공 부문은 의무교육을 마친 후 시장에 방치되어 노동 착취와 성 착취의 위협에 처한 청소년들을 '일탈 행위자'로 바라보면서 이들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려 왔다. 특히 청소년의 성 문제에 대해서는 유교적인 보수적 성관념까지 가세하여 아예 언급을 회피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험의 일천함은 청소년 보호의 문제를 미디어에 대한 것으로 협소하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디어 통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데 비해 전반적인 청소년 문제와 공적 역할에 대한 관심과 토론은 그와 비례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 기형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청소년 보호'와 '사상·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설정이기 때문에 대립항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보호하면서도 사상·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논쟁 구도는 사상·표현의 자유의 개념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여기서 기존의 사상·표현의 자유 운동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남한 사회의 사상·표현의 자유 운동은 정치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투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사회윤리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90년대 중반 들어 영화·소설·만화 등에 대해 계속된 '음란물' 논쟁에서는 대체로 "예술이냐 음란이냐", 즉 '예술 아니면 음란'의 구도를 선택해 왔다. 이것은 결국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이 아니면 표현의 자유는 없다"는 잘못된 결론을 암묵적으로 도출해 왔다.

바로 여기에 인터넷 검열 반대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바람직한 사회적 '보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책임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다. 물론 이러한 국면을 계기로 하여 남한 사회에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새삼스런 사회적 토론이 활발해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인터넷의 특성, 사상·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이해와 토론이 함께 이루어지는 가운데 바람직한 인터넷의 사회적 규제 모델이 수립될 수 있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매체의 규제 모델을 매체와 함께 수입해 왔기 때문에 인터넷의 경우처럼 세계적 수준에서 더불어 토론하고 해답을 모색해 본 역사가 없다. 그나마 우리가 경험해 본 규제 모델들은 대부분 국가 권력의 규제 권한을 상당히 강압적으로 관철시키는 것들이었다. 규제 모델에 대한 상상력조차 상당히 제약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험적 현실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인터넷의 규제 모델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인터넷 규제 모델은 정보통신부가 청소년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규제의 주체와 범위를 그 수준에서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국가 권력이 강력한 매체 규제 권한을 가질 때 그것은 곧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이러한 국가 권력의 규제에 맞선 싸움 속에서 확장되어 왔다는 것도.

이 글에서는 제기된 과제의 아주 일부분만을 다룰 것이다. 우선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인터넷이 제기하고 있는 쟁점들을 중심으로 검토를 할 것이며, 이를 통하여 사상·표현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한번 환기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인터넷 규제 모델에 대하여 최근 논란이 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중심으로 비판할 것이다.


Ⅱ 사상·표현의 자유

1. 기존의 논의 검토
   가. 사상·표현의 자유의 개념

사상·표현의 자유를 보편타당한 인권으로서 가장 잘 규정하고 있는 것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다.

제18조
사람은 누구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에는, 자신의 종교 또는 신념을 바꿀 자유와, 자기 혼자서 또는 남들과 함께, 공공연히 또는 은밀하게, 강론,  행사, 예배 및 의식이라는 형태로 자기의 종교 또는 신념을 밝히는 자유가 포함된다.

제19조
사람은 누구나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에는 간섭을 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자유와, 무슨 수단을 통해서거나 그리고 국경과는 무관하게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또 전달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

또한 위 선언의 내용을 구속력 있게 만들기 위해 1966년 유엔이 채택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B규약)'에서는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 국제협약에는 우리나라도 가입하여 1990년 7월 10일자로 규약이 발효함과 동시에 이를 이행할 의무가 생겼다.

제18조
1.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2.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아니한다.

제19조
1. 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구두, 서면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스스로 선택하는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우리 헌법에도 아래와 같은 조문이 있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0조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나. 사상·표현의 자유의 의미

사상·표현의 자유는 인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는 인간의 내심에 들어 있는 세계관, 인생관, 정치적 신조의 자유이다. 이러한 사상이 내심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에 표현될 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로 나타나며, 신앙의 문제와 함께 문제될 때는 종교의 자유로 나타나며, 진리구명의 문제가 될 때는 학문의 자유로 나타난다. 이렇듯 사상의 자유는 실제 모든 정신적·정치적 자유의 '원리적 기초'이며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특히 사상의 자유는 사상을 표현할 자유와 같은 뜻이다. 사상의 자유가 어차피 국가 권력의 영향권밖에 있게 마련인 내심만을 보호하는 데 국한된다면 굳이 기본권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상·표현의 자유는 다른 인권에 비하여 우월한 지위를 인정받아 왔다. 그것은 개인의 표현은 개인이 자기 실현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고 국민의 언론 활동은 국민이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가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구별하고 정신적 자유에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이중의 기준론(double standard)도 인정받아 왔다.

한편 표현의 자유는 표현 행위 뿐만이 아니라 표현의 수령 행위, 그 사이의 정보의 유통과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보장하며, 나아가 표현을 위한 정보수집 행위도 보호의 범위에 포함하여,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총체적으로 보장한다. 결국 표현의 자유는 표현하는 '수단'인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다. 표현의 자유의 제한

표현의 자유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지만,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동시에 보호하고 공공적인 가치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조건 속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

위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B규약)'의 18·19조의 각 3항에서는 사상·표현의 자유가 ① 법률에 규정되고 ②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③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경우에 제한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헌법 또한 제21조 제4항에서 표현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폭언 이론'(fighting words doctrine)에서는 증오범죄[혐오범죄](hate crimes) 또는 증오표현[혐오표현](hate speech)은 인종·종교·성별 또는 성적인 문제에 관하여 특정한 집단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표현의 자유의 대상에서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위의 어떤 경우에도 검열은 금지된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표현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검열'은 "사상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국가기관(행정부)이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일정한 사상이나 의견의 표현의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제도"이다. 즉 일반적으로 검열은 주체로서는 '국가(정부)'가 시간적으로는 '사전'에 표현을 제한하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검열 금지의 원칙이 성립된 것은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주로 공권력에 의해서 제한받고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과잉 규제가 금지된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는 기본권을 제한할 때 과잉금지할 것을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명확성과 최소규제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명확해야 한다는 것은 규제의 기준이 막연해서도, 광범위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소 규제의 원칙은 임박한 불법 행동과 '실질적 해악(sustaitial evil)을 야기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clear and present danger)'이 존재하지 않는한 표현은 자유라는 것이다. 이를 제한하는 법률이 있다면 그것은 위헌적 법률로서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국가전체에 직접적인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경우"로 국한시켰다. 국가안보를 내세워 불필요하고 부당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많다고 지적한 인권위원회는 국가안보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당한 근거로 인정을 받는 것은 "진정으로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때"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규제는 명확히 규정되어 "누구나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 알고, 무엇이 제한을 받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2. 인터넷의 등장

   가. 인터넷과 언론 환경의 변화

근대 인쇄기술의 발달은 그동안 소수의 특권이던 교육과 학문 영역에 일반인의 접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표현과 그 자유를 확보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새로운 언론 환경이 등장하였고 이것이 당시의 가장 효과적인 의사전달의 수단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변혁적 자유주의에 의해 도입된 사상·표현의 자유는, 시민혁명 이후 부르주아지가 생산 수단과 권력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이를 소유하지 못한 무산자 대중에게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표현의 자유는 선언되었으되,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물적 수단 - 즉 언론과 출판이 권력 관계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언론기업의 대규모화와 독점이 언론 환경을 규정하게 되었다. 언론업이 대규모화하고 시장을 독점하면서 언론집중현상이 생겼고, 이것은 일반국민의 의사형성의 기회를 축소시켜 의사의 다양성을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터넷은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민중의 매체'였다. 인터넷은 등장 초기서부터 기존의 매스미디어의 폐해와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대한 시장의 굴레와 정부의 억압을 완화시키고, 상업적인 또는 정부차원의 이해관계 때문에 생겨난 장벽을 넘어서 의사소통을 이루려는 … 인류의 노력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러한 기대는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으로 대표되는 초기 네티즌 집단이 사이버 공간을 현실과 분리하여 자유의 무한한 확대를 주장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한한 자유'는 이해 관계에 따라 표현을 통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고 그럴 수 있는 수단도 가지고 있는 권력의 속성 앞에서는 낭만적인 것이었다. 1996년 미국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을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는 이를 볼 수 있었다. 미국 의회는 1996년 발효한 통신법(Telecommunications Act)의 일부인 이 조항에서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상스럽거나(indecent) 명백히 모욕적인(patently offensive)' 내용의 표현물을 전송하는 것을 금지했다. 결국 이 논란은 시민사회단체가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끌어냄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이후로도 미 의회는 '아동 온라인 보호법'(Child Online Protection Act)과 '아동 인터넷 보호법'(Children's Internet Protection) 등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들을 계속 상정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 대한 최근의 강력한 규제 요구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표현의 자유의 원칙에서는 행정기관의 검열을 금지하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때는 명확한 원칙에 의해서 최소한도로 규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의 규제의 방법으로 제안되고 있는 내용은 규제 주체로 정부 혹은 정부의 감독 하에 규제를 대행하는 사업자(시스템 관리자)를 상정하고 있다. 또한 규제 대상으로 다른 법률로 규제가 되고 있는 '불법'이 아닌, '불건전'한 정보를 상정하고 있다. 불법이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로서 불법 정보는 제작과 유통이 금지되는 데 비해 '불건전'은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최소규제의 원칙은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만을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불건전'이라는 기준은 자의적 해석 여지 때문에 논란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해석의 권한이 정부에 주어진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한편 인터넷내용등급제 등 '기술에 의한' 규제 요구가 강력하다. 이것은 과거의 규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이다.

그럼, 인터넷의 어떤 특성이 이런 규제에 대한 요청을 불러왔는가?

첫째, 인터넷으로 표현물이 급증했다. 인터넷 이전의 언론 환경에서는 소수의 발신자로부터 다수의 수용자에 대한 일방향적인 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터넷이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지원하기 때문에 발신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는 전채널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표현에 드는 비용 또한 대폭적으로 감소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언론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표현물의 양적인 증가가 이루어지던 시점에는 언제나 이를 통제하기 위한 권력의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음란물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강화되어 왔다. 구텐베르그가 금속 활자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단지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만이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었고 문학작품이나 정치적 논문들은 지배층, 특권층에게만 읽혔기 때문에 검열이 불필요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전으로 문맹률이 낮아지고 독서가 대중화되자 교회와 정부가 사상과 표현의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매스미디어가 확산되면서 포르노물이 미국사회에 크게 증가했고 이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이 강화되었다. 인터넷은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 과거와 같은 규제가 적용되기에 어렵다. 특히 기술적인 규제 방법이 등장한 것은 이와 같이 양적인 측면에서 규제 대상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원이 다양해지다 보니 정보제공자가 불법적인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기존의 방식보다 사업자(시스템 관리자)가 유통을 제한하고 출구(outlet) 규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둘째, 인터넷에는 편집자(gatekeeper)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언론과 출판 환경에서는 편집자가 정보를 중계하고 선별하는 역할을 수행했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 선택되는 엄격한 사실 정보와 투철한 예술혼만이 유통될 수 있었고 비로소 '표현물'로 등장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비위계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통제에 있어 탈중앙통제적이고 개방적인 환경을 불러 왔다. 즉, 아래로부터 직접 생산되는 표현들 - 그래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거친 표현들도 유통의 경로를 타면서 대중의 눈에 직접 닿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이용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불쾌한 경험을 하게 했다. 특히 인터넷은 기록된다는 특성을 갖지만 그 공식성은 '글'보다 '말'에 가깝다. 파급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전제 속에서 비기록적 구두 언어에서 허용되던 강한 비공식성이 기록된다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이런 혼란을 중재해 줄 수 있는 안전 지대나 권위(authority)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적인 명예훼손 소송과 당사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선거 때만 되면 이용자가 '가볍게 올린 글'이 선거법상 선거운동으로 해석되어 인신 구속과 유죄 판결을 받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직접 통신'의 '노골성'은 역설적으로 질적으로 강력한 규제를 요청하는 배경이 된다. 특히 인터넷의 빠른 파급력은 법적인 판단보다 더욱 빠른 규제를 요구한다. 편집자가 없는 공간에서 이는 대개 정부와 기술에 의한 규제 요구로 이어진다. 특히 사업자(시스템 관리자)는 각종 복잡한 분쟁으로부터 책임을 면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규제 요구의 강력한 옹호자이다.

셋째, 인터넷은 기술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통신품위법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 재판부는 인터넷 이용은 단순히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거나 텔레비젼 채널을 바꾸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사용 지침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가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를 켤 때처럼 예기치 않게 음란물을 컴퓨터 화면에서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한 측면에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이용이 이용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규제도 수용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제 모델의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있어 기술적 능력에 따라 격차(digital divide)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터넷에 대한 접근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격차가 이 기술에 대한 공포(techno-phobia) 혹은 무관심의 원인이 된다. 다른 매체에 대한 경우와 달리 학부모들이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선호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여기서 학부모들은 단순히 불법적인 내용을 사후에 제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부모가 담당해 왔던 윤리적 훈육의 역할도 요구한다. 그런 까닭으로 많은 학부모 단체들이 정부가 불건전 정보를 강력히 규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넷째, 인터넷은 인쇄, 방송, 통신 등 기존의 여러 가지 매체의 특성을 복합적으로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매체의 규제 모델을 적용할 것이냐를 두고 격렬한 해석 다툼이 일어나고 앞서와 같은 규제 논리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통신품위법 논쟁에서 미국 의회와 정부는 인터넷을 방송과 동일시하고 방송의 규제논리를 인터넷에 적용했다. 신문·잡지나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수준의 성적 표현이 방송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1934년에 제정된 미국의 방송법은 방송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공공의 이익과 편의 혹은 필요성'에 의해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방송국은 불법으로서의 음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에게 저속한 내용을 방송할 경우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통신품위법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시민사회단체와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 재판부는 컴퓨터 통신이 그 속성이 방송보다는 인쇄매체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은 방송처럼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지도 않고, 소수의 사람들만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방송과 동일시해서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나. 새로운 언론 환경에 대한 적극적 해석

이상과 같은 인터넷 언론 환경의 특성이 새롭고도 강력한 규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의 어떤 특성도 역사를 거스르는 국가권력의 규제와 검열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이제서야 비로소 민중에게 주어진 표현 매체인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보장책을 강구해야 한다. 인터넷의 특성 - 특히 다대다 통신 방식, 비위계성, 직접성, 매체 수렴성은 그 자체가 인터넷을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가 이를 제한한다면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 바람직한 규제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나올 수 있다.

먼저, 인터넷에 대해서는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인 옹호가 필요하다. 사이버 공간은 사상과 표현의 직접적인 교환이 그 활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본질적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해석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표현 자체를 범죄시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표현만으로도 불법이 될 수 있는 것으로는 음란죄(형법 제243조 및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309조),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 내지 공직선거후보자비방죄(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82조의 3, 제250조, 제251조), 찬양 고무죄(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 저촉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사이버 공간의 표현의 규제에 대한 대한 별도 입법이나 광범위한 규제 제도의 적용을 통해서 표현을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44조에서는 이용자가 명예훼손 등 법익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사업자가 반드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런 주장은 인터넷이 매우 빠른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는 사업자의 규제를 통해 결국 정부의 행정 규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자 공익적이고 진실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형법상의 위법성조각사유조차 인정하지 않는 광범위한 표현의 제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조항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인터넷 고발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소위 '자살 사이트' 사건에서 정부가 실제 범죄 행위가 동반되지 않은 자살에 대한 생각과 토론을 처벌하는 것을 정당화했던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이런 경향은 남한의 인터넷에 규제의 기준으로 '불법' 이외에 '불온', '유해' 등의 자의적 개념을 중복하여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무엇이 불온하고 유해한지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판단한다. 중학교 미술 교사 김인규씨의 개인 예술 사이트의 경우 누드 작품이 게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불온통신으로 지정된 후 폐쇄되었으나 사회 여론이 나빠지자 다음날 바로 복구되었다가 며칠 간격으로 다시 몇 개의 내용에 대하여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이 내려졌다. 결국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 해석하기에 따라 불온이 되었다가 유해가 되었다가 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 통제'가 아닌 '위법성 판단'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매체가 수렴되고 정보가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는 여러 매체의 규제 기준 중 가장 낮은 것을 기준으로 채택해야 한다. 서적에 허용되는 표현이 인터넷에서 금지된다면, 도서관에서는 볼 수 있는 책을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다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사이버공간에서 '검열'의 의미가 인터넷의 특성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기존의 검열은 국가(정부)가 시기상으로 사전에 표현을 제재하는 행위를 뜻하였다. 그러나 국경도 없는 인터넷의 수많은 컨텐츠를 '사전에' 규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후에 이루어지면서도 기술의 힘을 빌어 사전에 이루어지는 것만큼 강력한 제한 수단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는 사전/사후의 시점보다는 검열의 효과적 측면에 주목하여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위축적 효과'(chilling effect)가 클 때 검열로 보아야 한다. 만일 어떠한 규제 조치가 검열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위헌이므로 즉각 중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언론기업의 취재·보도의 자유와 동일시되다시피 한 사상·표현의 자유가 인터넷으로 인하여 비로소 본래의 민중적인 의미를 되찾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집자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쾌감과 당혹감은 민주주의를 위한 대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가치가 없어보이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국가가 이를 임의로 규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보다는 정보 소통의 효율성의 논리에서 이러한 표현들을 '잡음(noise)'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광범위하게 규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상·표현의 자유가 이러한 논리에 수렴될 수 없는 매우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표현에 대한 제한 방법으로 법에 의해 일괄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단 소프트웨어 등 기술적 수단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기술적 규제에서는 이용자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기 힘들다.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국 의회 산하 '온라인아동보호위원회'는 2년 간의 검토 끝에 2000년 10월 20일에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의회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인터넷에 특화된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 보다는 교육과 이용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기술을 통해 부모가 자녀의 인터넷 이용을 지도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들에게 길을 건너는 데 필요한 안정적 규칙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동들이 그들의 온라인에서의 안전뿐만 아니라 배움의 경험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규칙과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최종적으로 아동을 온라인에서 보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와 교사, 아동 등 소비자에 대한 교육과 아동을 온라인에서 보호하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기존의 법집행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무엇보다 기술에 의한 규제는 첫째, 탈맥락적인 기술의 힘에 의해 표현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둘째, 그 적용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지만 이용자는 그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없고 통제권도 제약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다. 미국의 통신품위법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이 나기 직전에 로렌스 레식은 "인프라의 폭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통신품위법은 나쁘다. 그러나 [통신품위법 이후에 도입될 예정인] 픽스는 더 나쁘다"고 주장했다. 법이 아닌 소프트웨어 코드가 검열을 행하는 것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기술이 중립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술적 검열은 더욱 손쉬운 검열방법이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웹 인프라의 일부로 작동하면서 개인이용자, 프록시서버,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그리고 국가적 수준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식과 내용을 생산하는 방식, 궁극적으로는 넷의 구조 자체에까지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때로 법보다도 소프트웨어 코드가 자유의 실질적인 한도를 정한다. 레식은 이런 환경이 과거 '보이는' 국가의 검열과 씨름해 왔던 활동가들을 당황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법처럼, 기술도 중립적이지 않다". 또한 기술적 규제 방법을 선호하는 주장은 인터넷 표현의 문제를 기술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이를 사상·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기술을 합리화하는 문제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


Ⅲ 인터넷내용등급제

인터넷내용등급제란, 인터넷 홈페이지에 픽스(PICS: 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라는 전자적인 부호를 표시하도록 하고, PC방, 학교, 도서관 등 국민의 주요 인터넷 접속점(access point)에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인터넷 접속을 선별, 차단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1월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아니라 현재 남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해 비판을 시도한다.
첫 피해 사례로 등장한 것은 동성애 사이트 <엑스죤>(http://www.exzone.com)이다. <엑스죤>은 동성애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도록 한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심의 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2000년 8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받고 2001년 7월부터 발효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해 차단 소프트웨어가 인식할 수 있는 전자적인 부호 표시를 해야만 한다. 이 표시를 하면 향후 PC방, 학교, 도서관 등에 설치되어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에 의해 청소년들에게 차단되며, 표시를 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것이 우리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검열이라는 주장은 규제 기구와 규제 방식의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기술 등급제로서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1. 규제 기구의 문제

위와 같은 구조에서는 일단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이후에 중대한 표현의 자유의 제한을 받는데 여기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지정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의 불온통신을 단속하기 위한 기구로 설치된 법정기구이다.(법 제53조의2)

그러나 불온통신의 단속 활동은 검열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존재 자체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다. '불온통신'은 사전검열이 아니지만 이에 해당할 경우 정보통신부 장관이 사후에라도 강력한 거부·정지·제한명령을 할 수 있다. 명령을 위반했을 경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부과함(법 제71조)으로써 결국 국가가 이용자를 직접 규제하고 있을뿐더러 상당한 수준의 위축적 효과를 주고 있다. 반면 명령에 대한 이용자의 반론권 등 의견진술권을 갖추고 있지않아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표현, 성표현물에 대한 자의석 해석을 열어놓아 죄형법정주의에 기초한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지 원칙에 위배되고 있다. 결국 불온통신에 의해 통신을 규제하는 것은 검열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민간 자율 조직이 아니라 행정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위원은 정보통신부 장관에 의해 위촉되고 위원장의 선출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인사권이 정부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둘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정보 모두에 대한 심의를 하고 있다. 셋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직접적인 시정요구' 활동을 하고 있다. 즉 심의 결과 불온통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를 이용자에게 경고하거나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불온통신을 행한 자에 대해 이용정지 및 이용해지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시행령 제16조의 4 제1항) 그리고 전기통신사업자는 이러한 시정요구를 받은 경우에는 그 조치결과를 위원회에 통보하여야 한다.(동조 제2항) 더 나아가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유통정보에 대한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한 때에는 그 결과를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보고할 의무를 지고 있다(시행령 제16조의 5). 넷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시정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부장관에 거부·정지·제한할 것을 건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동조 제3항) 정보통신부 장관의 거부·정지·제한명령에 대한 위반할 경우 직접적인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이는 결국 표현의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삭제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상과 같은 점은 1996년 검열 기관으로서 위헌판결을 받은 구 공연윤리위원회와 매우 흡사하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법적 성격은 '전기통신에 있어서의 검열을 위한 행정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검열 기관'으로서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 심의하도록 하고 있는 것 역시 국가가 이에 직접 개입하는 것으로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이와는 달리 영화·서적·방송 등 다른 매체 심의 기구들은 민간이 구성하고 심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이 규제 기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토론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의 것들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이와 같은 규제 기구의 쟁취는 남한 민주화 운동의 일정한 성과라 볼 수 있다. 가장 나중에 생긴 최첨단의 매체에 대한 규제 기구가 이미 위헌 판결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시대의 검열 기구의 모양을 본따 남아 있다는 것이 상당한 아이러니이다. 헌법재판소는 만일 시민사회 내부에서 서로 대립되는 다양한 사상과 의견들의 경쟁을 통하여 유해한 언론·출판의 해악이 자체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면 국가의 개입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2. 규제 방식의 문제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공청회에서 정부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논란을 빚은 후 국회는 청소년보호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표시 의무만을 남긴 채 구체적인 사항은 시행령으로 위임하고 기술 등급제로서의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본법에서 삭제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이에 '전자적 부호 표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기술 등급제를 부활시켰다. 또한 그 구체적인 방법은 정보통신부 장관의 고시로 위임하였다.

무거운 형사처벌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인 기준이나 범위를 정하지 않고 모두 하위법령인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은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에 반하며 그렇게 제정된 시행령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 시행령 역시 구체적인 사항은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위임하였으므로 명확성과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에 반한다.

또한 일단 차단소프트웨어가 설치된 곳에서는 처음부터 접근이 불가능하여 성인의 알 권리도 제한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선별접속을 통해 접속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피해 최소성의 원칙이나 법익형량의 원칙에 반한다. 그리고 음반  및 비디오, 방송프로그램, 영화·연극·음악·무용 기타 오락적 관람물, 간행물 등 다른 매체의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서는 시청 또는 관람 불가 연령을 기재하도록 한 반면, 인터넷의 경우에만 전자적 표시의무를 부과하고 접속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다른 매체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형평성의 원칙에 반한다.

특히 일단 출판된 후에는 그 내용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형의 표현물에 대하여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와 지정이 이루어지는 다른 매체와 달리 인터넷은 매순간이라도 변화할 수 있는 매체이다. 그러나 현행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방식은 인터넷 도메인 전체에 대한 것이어서 문제가 있는 내용만을 수정할 수 있는 자율 규제의 가능성조차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엑스죤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3. 기술 등급제의 문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이용자의 선택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청소년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규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의 내용 규제는 정보에 대한 선택권을 정보제공자에서 정보이용자에게로 이양하며 기술적 방식으로 실효를 거두면서도 불법정보나 유해정보의 유통에 대한 통제가 국가 주도형 규제 방식에서 민간 자율적인 방식으로 전환되고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이념에도 부합해야 한다고 전제한 후,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규제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술 등급제로서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이러한 기대들과는 달리 정보 선택권의 민주화를 이루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오히려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세계최초로' 국가적 수준에서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등급제이다.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기술은 예기치 않은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토론과 평가가 있어야 하며 이의 도입을 둘러싼 의사결정 역시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하여 이것이 명분대로 청소년을 보호할수 있을지, 국민의 정보접근권과 알권리에 어떤 사회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하여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하고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일방적인 방식의 기술 등급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부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는 등급이 미처 표시되지 않은 사이트에 대해서 이것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인지 아닌지를 자동으로 판정할 수 없으며 이를 모두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거나 한다. 만일 모두 보여준다면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효과가 감소할 것이며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면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광범위한 차단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차단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니라는 등급을 달 수 밖에 없다. 결국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서만" 등급제를 시행한다는 애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면서 국민에 대한 포괄적인 자기 검열의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그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부터 청소년을 완벽하게 격리하면서도 성인들의 볼 권리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광범위하게 제한되면서도 청소년 보호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핵심적인 문제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이다. 등급을 달아도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통하지 않으면 선별차단의 효과가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효과를 발휘시키기 위해서 차단 소프트웨어가 PC방, 학교, 도서관에 널리 보급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등에관한 법률에 의해 PC방에 음란물차단 소프트웨어를 깔지 않으면 업주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법에서는 특정한 차단 소프트웨어의 방식을 지정하고 있지 않으나 대부분의 PC방은 유료의 차단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권위를 가지고 무료로 배포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 소프트웨어를 채택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대부분의 인터넷 접속점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 소프트웨어가 광범위하고 '실질적'으로 관철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용자의 선택권은 발휘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내용등급제의 옹호자들은 차단 소프트웨어의 옵션을 조정함으로써 정보에 대한 접근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인터넷내용등급제의 적용 대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가정이 아니라면 PC방, 도서관, 학교 등에 일단 설치된 차단 소프트웨어의 설치와 옵션 조정이 과연 개별 이용자의 권한이라고 볼 수 있을까? 더구나 정부는 심의결과상 청소년유해매체물인데도 이에 해당하는 등급을 달도록 강제할 수 없는 해외 인터넷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제3자 방식으로 이에 대한 등급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차단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한 이런 상황에서 이용자의 선택권이 발휘될 여지는 전혀 없다. 즉, 광범위하게 보급된 차단 기제는 정보에 대한 이용자의 접근을 일정한 수준에서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Ⅳ 나가며

최근의 경향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받아온 사상·표현의 자유가 청소년 보호의 논리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사상·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청소년 등 이 사회의 약자를 인터넷에서 보호하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사상·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상·표현의 자유는 인터넷에서 더욱 강하게 관철되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청소년의 자살을 인터넷 탓으로 돌리면서 다른 모든 원인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하는 태도야말로 무관심과 무책임의 극치라 할 것이다. 사상·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가 대립하고 있는 구도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규제 권한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

이 글에서는 글의 처음에 제기한 '바람직한' 청소년 보호의 개념은 다루지 않았다. 또한 규제 기준의 논쟁지점으로 부각하고 있는 '음란'의 문제 또한 다루지 않았다. 이것은 너무 복잡한 쟁점들이라 과제로 남기고 다음 기회를 빌리기로 한다.

다만 현재 정부의 인터넷 청소년 보호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짚어 두고자 한다. 이 문제는 경험적인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엑스죤>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을 때 피해를 입은 것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이다. 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현실 공간에서 접하기 힘든 상담과 위로를 동성애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길이 원천봉쇄되는 것이다. 자퇴 청소년들의 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http://www.inoschool. net)은 청소년들의 가출과 자퇴를 조장한다고 하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폐쇄되었으며 이의신청 역시 기각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현재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의 대상에는 적어도 청소년 동성애자, 가출 청소년, 자퇴 청소년들이 포함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소외된 청소년들을 배제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인 것이다.

이것은 동성애와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다. 현재의 규제 방식은 청소년들의 인권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도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자기 통제권과 자기 결정권을 인권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의 '권리'는 청소년 '보호'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 상기해야 하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에서 적어도 우리는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의 개념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수 있으며, 정부가 이러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누가, 무엇을 '청소년 보호'로 규정하는가"이다. 청소년 보호가 '막연한' 규제의 논리에 수렴되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의 개념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따지고 들 필요가 있다.

통신품위법에 대한 위헌소송의 재판장이었던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의 슬로비터 판사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마땅한 의무이지만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부의 규제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고 그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연방대법원의 판례라고 지적했다. 슬로비터 판사는 통신품위법에 대해 위헌판결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를 보호할 방법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며, 현재의 아동포르노금지법을 완전히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정부와 의회가 우려하는 인터넷상의 음란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답은 아직 없지만, 바람직하면서도 성공적인 인터넷의 규제 모델은 결국 청소년 보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해석 속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미래에 대한 여지를 열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사상·표현의 자유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반드시 보장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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