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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공간, 시민사회, 윤리의 정치
-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문제를 중심으로 -ba.info/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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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기사입력 2002-06-17

1. 머리말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터넷이 대중화됨에 따라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초기 정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사이버공간 독립선언'(1996년)을 발표해서 저항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사이버공간의 특수성을 강조해도 규제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버공간이라는 것은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통신매체였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이 사이버공간이라는 모호한 은유적 이름으로 널리 불리는 까닭은, 그것이 다른 정보통신매체에서 볼 수 없는 기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까닭은 그런 기술적 특성을 바탕에 두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구조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참여민주주의의 길을 넓히는 데 인터넷이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의 길이 넓어진다는 것은 주권자로서 시민 각자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을 뜻하고, 이것은 다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인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능이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지구적 차원의 열린 정보통신매체로서 인터넷은 정보의 양방향적 흐름을 촉진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역능을 강화하게 된다. 사실과 의견의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시민 각자의 토론을 통해 여론이 형성될 수 있게 된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의 대중화가 이렇게 '긍정적인 변화'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기도 하고, 문화적 혼란을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터넷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이런 '부정적인 현상'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특히 세계적으로 두드러졌던 것은 이른바 '인터넷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문제였다.    

   어떤 정보통신매체도 사회적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는 한, 국가 권력의 규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이버공간이라는 은유적 이름을 붙인다고 이런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은 이제까지의 정보통신매체와는 여러모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정보통신매체로서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요컨대 정보통신매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보통신매체에 대한 규제는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올바른 규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에 대한 일상적 규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다. 명칭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이 기구는 윤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실제적 구실은 대단히 정치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구는 태어날 때부터 논란이 그치지 않았으나 최근에 들어와 '인터넷 내용등급제' 때문에 더욱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새로운 규제제도와 그 주관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가 권력이 한국의 사이버공간에 강요하는 질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그것은 사이버공간을 매개로 한국의 시민사회가 국가 권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국가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에 맞서서 시민적 자율성을 지키고 키워가는 것은 시민사회의 중요한 실천적 과제이다.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윤리'와 '보호'의 이름으로 사이버공간에 가해지는 이러한 질서에 맞서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


2. 인터넷 내용등급제    

   2001년 11월 1일은 한국의 인터넷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날부터 한국에서는 인터넷의 이용방식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시행령에 따른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시행에 의해 일어난 변화이다.

   이 제도는 사실 벌써 몇 해 전부터 연구도 되고 논의도 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7월에 그 안이 발표되었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일명 '통신질서확립법')에서 처음으로 법제화되었다. 잘 알다시피 이 제도는 '검열'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짙었고,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결국 법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통과된 법에 이 제도가 살아날 여지를 남겨 두었고, 결국 시행령을 통해 이 제도를 살려내는 근성을 보여주었다.

   이 제도의 실행을 책임지고 있는 기구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다. 이 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제도의 기본요소는 다음과 같다(http://www.safenet.ne.kr/index.html). 첫째, 등급기반(Rating Infrastructure). 이것은 다시 세가지로 이루어진다. 우선 '등급부여 및 내용선별에 사용되는 기술표준'이 있는 데, 이것은 'W3C가 제정한 기술표준인 PICS(인터넷내용선별기술표준: 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를 사용'한다. 다음에 '정보내용을 일정한 등급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등급기준'이 있는 데, '국제적으로 ICRA(국제인터넷내용등급협회: Internet Content Rating Association), RSACi, Safesurf 등 다수의 기준이 있'으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SafeNet 등급기준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등급시스템 전체를 운영·관리하는 기관 혹은 단체'인 '등급운영위원회'가 있는 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를 위해 '등급전문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이것은 등급전문위원회와 등급자문회의로 이루어진다.  

   둘째, 등급부여체계(Labeling System). 이것은 '정보제공자 혹은 제3자가 등급기준에 따라 정해진 기술표준으로 등급정보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등급부여는 정보제공자의 선택에 따라 홈페이지, 홈페이지 내의 디렉토리, 페이지 단위로 표시가능'하다.

  세째, 내용선별체계(filtering System). 이것은 '정보이용자(혹은 정보이용자의 보호자: 학부모, 교사)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등급설정에 따라 정보내용에 표시된 등급관련 정보를 읽어 정보내용을 선별'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인터넷이용자가 사용하고 있는 MS Explorer, Netscape 등 주요 브라우저에 이미 내용선별 프로그램이 장착되어 있어 이를 이용(rat파일을 이용하여)'하거나 '보다 안정적인 내용선별을 위해 관리자 기능이 강화된 내용선별S/W를 개발·보급'할 수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새로운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해서 소통되는 모든 정보를 감시해서 '불온정보'를 골라내고 없애는 일을 하는 곳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것을 '심의'라고 부르는 데, 그 결과 모든 정보는 '적합, 부적합, 보완' 중의 하나로 분류되게 된다. 그런데 적합에 해당하는 정보일지라도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다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되게 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이런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2001년 6월 20일에 내려받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정보내용등급제는 정보제공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내용에 일정한 기준에 따라 등급을 표시하면 이를 바탕으로 정보이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내용을 선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요컨대 정보의 제공과 선별이 모두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 제도가 '정보이용자에게 자신과 자녀들이 접속하고자 하는 인터넷 컨텐츠의 종류와 수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정보 선택의 최종적 권한이 내용선별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학부모나 교사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검열없는 규제"를 가능하게 하며, 청소년의 연령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정보내용을 선택할 수 있어 학부모·교사들에게 교육적인 수단을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러나 우리의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자율등급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율등급제의 탈을 쓴 '타율등급제'이자 '강제등급제'라고 해야 옳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등급기준을 정하고, 등급을 표시하지 않은 사이트는 자동으로 청소년유해매체로 분류되며,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등급제는 '검열없는 규제'가 아니라 '사실상의 검열'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알아서 기도록' 강요하면서 그것을 '자율'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근대적이거나 전체주의적 야만의 표지일 뿐이다.

   '자율등급제'조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ACLU, 1999)을 받는 터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명백한 '제3자 등급제'도 실행하고 있다. 사실 '제3자 등급제'는 검열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자율등급제'와 함께 이러한 '제3자 등급제'도 추진해 왔다. 2001년 6월 현재,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외국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이미 12만 건의 차단사이트 목록을 만들어 놓았으며, 이 목록은 매달 1만 건 정도씩 늘어나고 있었다. 차단목록작업은 기계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이트들을 훑어 오면, 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사이트들을 대강 검토해서 확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목록을 만드는 방식도 대단히 큰 문제이지만, 이런 식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목록을 만드는 이유가 해당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해외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제3자 등급제'의 또 다른 문제로는 기계의존성이 있다. 인터넷은 매일같이 큰 변화를 겪는다. 수많은 홈페이지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자료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이런 매체를 대상으로 영화나 음악을 심의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무슨 수로 그 많은 정보들을 사람들이 일일이 보고 듣고 분석할 수 있겠는가? 기준을 정해서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할텐가? 그런데 '대'와 '소'는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피해자는 차단당한 사이트의 운영자나 그 사이트에 정보를 올린 사람들만이 아니다. 그 사이트를 이용해서 소통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인 것이다.


3. 희극과 비극 사이

   등급기준과 강제조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핵심이다. 자율이건 타율이건 등급을 매기는 것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등급기준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SafeNet'이라는 것으로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 놓았는 데, 그 등급기준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SafeNet 등급기준'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것은 'RSACi 등급기준을 기반으로 하여, 일본 ENC 등급기준을 참고하여 마련되었으며, YMCA의 설문조사결과와 자문회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2002년 5월 현재, 그 등급기준은 다음의 <표>와 같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등급기준과 함께 '연령별 권장사항'도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등급기준은 누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18세 이상(성인가)'의 경우를 보면, 노출 3등급, 성행위 3등급, 폭력 4등급, 언어 4등급으로 되어 있다. 등급은 0등급에서 4등급까지 5단계로 나뉘어 있다. 그러니까 성인이라고 해도 잔인한 살인장면은 볼 수 있지만, 성기가 드러난 모습이나 성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제를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식의 양적 기준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제의 대상은 완전한 양적 분류가 불가능한 표현물이다. 이로부터 빚어지는 결과는 일단 희극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그 사회적 결과는 사실 비극이다. 예컨대 청소년 보호의 명분으로 가장 많이, 그리고 흔히 거론되는 '음란물'의 경우를 보자. 이 기준에 따르면 다음의 그림들은 모두 '노출 4등급'으로서 청소년은커녕 18세 이상의 성인들도 볼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림 1> 다비드상<그림 2> 세계의 기원  

                        
   <그림 1>은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다비드상'(1501-1504년)으로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으며, <그림 2>는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쿠르베의 유명한 '세계의 기원'(1863년)으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미켈란젤로는 자지와 불알과 불두덩의 털까지 세밀하게 조각해서 청년 다비드의 아름다운 몸을 강조했다면, 쿠르베는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보지를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미술사에 길이 빛나는 이 명작들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한낱 '음란물'로 여기고 있다.


<그림 3> 김인규 교사 부부 <그림 4>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

                  
   <그림 3>은 2001년 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당시 비인중학교 교사였던 김인규씨가 임신한 부인과 찍은 부부 나체사진이다. 김인규씨는 우리 몸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고귀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이트에 이 사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이 사진을 올려 놓았다. 그의 사진은 미켈란젤로와 쿠르베의 작품이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서 보여주고자 했던 예술적 가치와 같은 것을 담고 있다. 이 놀라운 작품은 우리 몸과 사회와 문화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림4>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가 1970년대에 찍은 사진이다. 이 작품은 <그림 3>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림 3>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림 4>와 비교했을 때, 김인규 교사 부부의 '도발적 작품'이 주는 예술적 자각과 놀라움은 한층 분명하게 나타난다.

   위의 작품들은 모두 우리의 몸을 소재로 삼은 것이고, 나아가 우리 몸과 세계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모두 뛰어난 예술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따르면 누구도 이 작품들을 봐서는 안된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것이 문제로다.  


4.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문제

   만일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일반화된다면, 인터넷의 활용이 크게 제약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성인 인증제'가 일반화될 것이다. 성인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이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회원 장사'는 지금보다 당연히 훨씬 더 활성화될 것이다. 그런만큼 각종 프라이버시 침해사건도 훨씬 더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다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희생'을 치루고도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인터넷에는 '개구멍'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인터넷 내용등급제인가? '제3자 등급제'는 물론이고 '자율등급제'조차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학부모도 '안심'시킬 수 없다. 대신에 그것은 정보 생산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정보 이용자의 '정보 접근권'을 침해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제도를 강행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시행에 따라 이득을 보는 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성인 인증 소프트웨어와 같은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제도는 경제적 구실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에게는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곳은 다름아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다. 이 위원회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비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속 자체가 의문시된다는 견해들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실행에 따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그 주관기관으로서 막강한 구실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야말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게는 희망의 외침이다.    

   '인터넷 내용등급제 문제'의 깊은 곳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과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터넷과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되는 데, 이 위원회는 바로 그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활동을 하는 국가기구이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마지막 군사정권인 노태우정권의 말기인 1992년 7월 30일에 '정보윤리위원회'로 출발하였다. 그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53조인 데, 이 조항의 제목은 '불온통신의 단속'이다. '불온'은 '불법'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이러한 '불온'과 같은 말은 최소한 법 조항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이런 말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묘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법적으로 정의되기엔 너무나 포괄적인 이런 '위헌적' 조항에 기대어 어떤 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비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제는 바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여러모로 '이상한 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우선 둘을 들 수 있는 데, 하나는 이 위원회가 '정보통신윤리'를 표방하면서 사실상 '정보통신검열'을 추진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 근거나 운영방식으로 보아서 '정부기구'(GO)가 틀림없는 데 '비정부기구'(NGO)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스스로 '민간자율기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정보통신부의 요청으로 만들어졌으며, 위원에 대한 위촉이며 예산을 포함한 운영이 모두 정보통신부의 지휘 아래에 있는 위원회가 어떻게 '민간자율기구'일 수 있는가? 그리고 '민간자율기구'라면서 어떻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정보통신매체에 대한 '국가규제기구'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목적은 '불건전 정보통신의 억제'와 '건전한 정보문화의 촉진'이다. 말은 쉽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문제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건전'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2001년에 나타난 두가지 사례는, 지금으로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한다.

   첫째, '아이노스쿨' 폐쇄사건. 아이노스쿨은 자퇴생들의 사이트로 2000년 11월에 시작되어 2001년 3월부터 http://iNoSchool.net이라는 도메인으로 운영되었다. 이 사이트는 '학교 밖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1년 6월 8일자로 이 사이트를 폐쇄조치했다. '불건전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이고, 운영자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미성년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운영자의 반론을 보면, 정말 '미성숙한 쪽'이 누구인가를 잘 알 수 있다(김진혁, 2001).

   둘째, '엑스죤' 자진폐쇄사건. 엑스죤은 국내의 유명한 동성애자 코뮤니티였다. 이 사이트는 동성애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르면, 동성애는 '퇴폐 2등급'으로서 차단대상이 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따라 엑스죤을 음란사이트로 결정하였고, 엑스죤은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전자적 표시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이 표시를 하게 되면, '음란사이트'라고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어떻게 해서 동성애가 무조건 '퇴폐'란 말인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동성애자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 2001).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낡고 편협한 '윤리'를 모든 사회 성원에게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국가기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자퇴생이라면 불건전한 망나니로 여기고, 동성애자라면 음란한 퇴폐의 족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 위원회는 이 사회에 큰 문제가 있으며, 또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모두 다수자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사이버공간을 이용한 이들의 소통을 원천봉쇄하려는 것 같다. 이 위원회는 이런 반윤리적 행위를 '윤리'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적 행위를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시민사회의 비판과 저항이 빚어지는 것이다.


5. 올바른 윤리의 정치를 위하여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문제'의 깊은 곳에는 다시 정보통신부가 자리잡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인터넷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행사하려는 것 같다.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문제는 이런 특정 정부조직의 이해관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명백히 잘못된 제도가 무리하게 실행되는 데에는 필시 어떤 이유가 없을 수 없다. 단순히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본 결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포함한 이른바 '불건전 정보'에 대한 논란과 시민사회의 대응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원론적 공방을 떠나서 규제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정면으로 문제삼는 방향으로 옮아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부활을 맞서서 2001년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을 꾸렸으며, 다시 2002년에는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 실제적인 목표는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지 혹은 발본적인 개혁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인터넷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규제정책은 '윤리'를 바로잡아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시민사회의 다양화를 뜻하기도 하며, 경제성장이나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정보통신매체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갈수록 촉진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국가가 나서서 특정 '윤리'를 모든 국민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0년 8월 현재, 위원장이 현재 66세의 고령이며, 위원들의 평균연령이 59세에 이른다. 그리고 위원들 중에는 기독교도들이 여럿이고, 그 중에는 근본주의의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둘째, 윤리의 정치는 윤리의 이름으로 보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며, 나아가 국가주의를 재생산하는 구실을 한다. 정보통신부는 시대착오적 윤리를 비민주적 방식으로 강요하기 위해 윤리의 정치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윤리의 정치는 사실상 낡은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일부 '장로의 정치'이며, 이것은 파시즘을 합리화하던 논리인 '국가 가부장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국가보안법에서 신물나게 경험했듯이, 아버지로서 국가는 '보호'하기 위해 '감시'하고 '규제'한다는 것이다(홍성태, 2000ㄱ).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민사회는 다른 윤리를 요청한다. 그것은 예컨대 사이버공간과 같은 새로운 현상에 부합하는 새로운 윤리이며, 모든 시민의 자율적 삶을 고무하고 촉진한다는 뜻에서 올바른 윤리이다(홍성태, 2000ㄴ의 9장). 이런 관점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폐지되거나 재편되어야 한다. 재편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그 목적을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서 위원들의 연령과 종교를 매우 엄격하게 따져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체와 정보를 읽는 시민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 이데올로기의 이면은 시민의 능력에 대한 폄하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토론민주주의의 발전에서 알 수 있듯이, 능력이 모자라는 것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여전히 시민을 규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부 관료와 일부 전문가들이다.

   사이버공간의 대중화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다. 그러나 정보통신부가 구사하는 낡은 윤리의 정치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른바 '문화의 시대'에 부합하는 문화적 정보화를 위해서도 경제적 정보화를 비판하는 동시에 여전히 횡행하는 낡은 정치적 규제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 및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철폐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외침은 이러한 비판적 재구성의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 필자는 현재 상지대 교양과, 사회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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