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부산을 찾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그저 사고였을 뿐' 시사후 영화의전당 비프힐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란 정부의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강한 의지와 철학을 피력했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부산을 찾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 기자회견 ©임순혜 |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2000년)과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201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2025년)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감독으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이후 "아시아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서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지만 17년간 가택 연금과 출국 금지 조치로 영화제에 오지 못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그 누구도 제 영화 제작을 막을 수 없었다"며, "영화인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위해 길을 찾는다"고 강조하고, "검열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부산을 찾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 기자회견 © 임순혜 |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번 수상이 침묵 속에, 망명 중에, 또는 압박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란 영화인들을 대신해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전에 없던 시설과 기술이 젊은 세대에게 주어져 있다. 얼마든지 혁신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영화 제작자들이 이야기를 만들 의무가 있다"고 덧붙이고, 젊은 영화인들에게 이란 정부의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강한 의지와 철학을 피력했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하고, "95%의 영화는 관객을 따라가는 영화인 반면, 나머지 5%는 관객이 따라오는 영화"라며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파나히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오자마자 묘소를 찾은 고(故)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와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영화 제작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내 힘은 제 아내로부터 온다. 영화를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영화 만들지 못하면 내 아내가 날 버릴지도 모른다"는 유머러스한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미국아카데미 시상 후보로 선정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에서 영화를 만든 후 다른 영화제 등에 출품할 때는 문제 없지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 출품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프랑스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기에 아카데미에 출품할 수 있었다"며 미국아카데미시상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나와 같은 독립적인 영화 제작자가 연대해 오스카에 작품을 출품하고자 할 때 자국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이며, 이란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저항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영화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연출한 '그저 사고였을 뿐'은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의 트라우마와 복수,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있게 다루는 영화다.
주인공 바히드는 과거에 억울하게 납치되어 고문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우연히 자신을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를 어떤 소리로 발견하게 된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바히드는 그를 납치해 트럭 뒤 나무 상자에 가두고, 복수를 할지 아니면 풀어줄지 고민에 빠지게 되고, 함께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에 동참하게 한다.
영화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정의와 복수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고문 당시 눈을 가린 탓에 가해자의 정체를 확신하지 못하고, 관객에게도 혼란과 긴장감을 안겨준다.
![]() ▲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고문 기술자의 의족에서 나는 소리는 영화 전반에 걸쳐 공포와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는데, 이란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성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현대 영화가 어떻게 현재의 공포를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등대 같은 작품"(Movies We Texted About), "가장 완벽한 결말.도덕적 모호함의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이끈다"(The Cairo Scene)는 평을 받았다.
파나히 감독의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은 단순한 수상의 의미를 넘어, 예술의 자유를 향한 그의 굳건한 신념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