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수괴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을 발표하면서 내건 모토가 ‘종북좌파 척결’이었습니다. 계엄을 해서 종북좌파를 일거에 척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거덜날 것이라는 것이 그가 내건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였지요.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국정을 마비시켜서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이 파멸로 치달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민주당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에는 종북좌파가 없습니다. 종미우파는 꽤 많지만...
1. ‘좌빨’과 극우
좌파 또는 좌빨이라는 말은 진보적인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말일 텐데, 진보적인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들 다수가 종북, 즉 북한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생각하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북한은 엄밀히 말해서 좌파가 아니라 집단적 우파 사회, 그것도 극우적 이념에 매몰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좌파는 무엇이고 우파는 무엇입니까? 좌파는 공산주의고 우파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진보를 좌파라고 말하고 보수를 우파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일단 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쉽게 말하면 보수는 기존의 가치와 문화를 중시하는 이념이고, 진보는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중시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 사회는 어떻습니까?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중시하고 창출하는 사회입니까? 그런 사람들이 일인독재를 하고 왕처럼 군림하는 사람을 절대존엄이라며 받듭니까? 그들이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연대하고 노력합니까?
극우에 속한 사람들이 말하는 좌빨, 즉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라면 지금의 북한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의 지도층이 보이는 행태는 좌빨과는 거리가 먼 극우적인 행태입니다. 한국의 극우세력과 북한의 김정은 집단은 그런 점에서 똑같은 극우일 뿐입니다.
한국의 진보 정치인들, 그러니까 극우들이 말하는 ‘좌빨들’이 대체로 친북적 성향을 띠는 건 맞습니다. 우선 저부터 친북주의자이니까요. 제가 친북주의자인 이유는 현재의 북한체제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김정은 일인독재체제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미쳐 날뛰는 철부지로 보이지만, 그래도 그가 쥐고 있는 권력이 내 핏줄, 내 동포 삼천만의 생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친북주의자로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많은 진보 인사들이 친북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요.
북한 주민들은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80년 동안 헤어져 살고 있지만 5천년을 함께 살아왔던 내 동포 내 민족입니다. 내 민족 내 동포를 버릴 수 없다는 이 마음, 이게 바로 보수의 핵심 개념입니다. 엇나가면 국수주의로 가고, 잘나가면 애국애족으로 가는 보수주의의 이념적 바탕이 바로 민족주의에 있으니까요.
2. 태극기부대와 미국
태극기부대로 상징되는 극우보수들을 보면 시위할 때마다 성조기를 태극기와 함께 듭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서 시위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자국 국기와 함께 성조기를 드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 수 없습니다. 미국이 대한민국을 구한 천사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건 20세기 중후반 한국전쟁 이후에 생겨난 이념적 오류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서, 필리핀은 미국이 갖고 한국은 일본이 갖는다는데 합의하여,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고 한일합병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 나라입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전략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일본을 독차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 결국 한국전쟁을 야기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일본을 독차지하겠다고 하면 소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 북쪽을 넘겨주어서 지금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지요.
다시는 전쟁을 못하게 하려고 유럽에서는 독일을 동서로 갈랐는데,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가르지 않고 우리나라를 나눈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혼자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국이 함께 결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연합국의 최대승전국은 미국입니다. 미국이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순리대로 일본을 갈랐다면, 한국전쟁도 없었고 지금의 분단상황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남북이 갈라진 이후에 미국은 또 한 번 한반도를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에치슨 라인을 발표하여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결국 김일성의 오판을 불러온 것도 역사적 사실이니까요.
그래놓고는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전쟁에 뛰어들어 어마어마한 군수물자를 풀어 전쟁을 소강상태로 만들고, 다량의 원조물품까지 풀어 천사의 나라인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들의 계략은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멋지게 성공한 것입니다. 일본 못지않게 한반도의 불행에 큰 책임이 있는 미국이 수많은 한국인에게 천사의 나라로 인식되게 되었으니까요. 이것이 지금 태극기부대가 성조기를 함께 드는 이유입니다.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성조기를 드는 그들이 친미입니까, 종미입니까? 명백한 종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종북좌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진보좌빨’로 알려진 문익환 목사님이나 저 같은 사람이 사실은 진짜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자니까요. 어떤 이념보다도 민족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니까요.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념보다 우리 민족이 함께 잘 살고 번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지금 윤석열을 구하겠다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걸 싫어하고 경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종교적으로는 진보가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쪽에 가깝습니다.
보수와 진보 얘기를 했으니 이 문제와 관련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보수는 나쁘고 진보는 좋다든가, 진보는 틀리고 보수만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보수가 극우화되면 국수주의가 되고, 자국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이웃나라를 해치고 세계평화를 위협합니다. 진보가 급진화되면 국가와 민족 뿐 아니라 가족마저 부정될 수 있습니다.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함께 가야 합니다. 그것은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습니다. 양쪽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상대방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우리나라 정당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 이익, 자기 당의 이익에 매몰되어 국가와 국민의 안정과 행복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당원들과 국회의원들은 상대방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부개혁부터 해야 됩니다. 국힘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3. 진짜 문제는 종북이 아니라 종미
지금의 계엄상태가 해결된 후에 어떤 형태로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드시 해결해야 될 선결 과제는 종북문제가 아니라 종미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종북이라는 건 없습니다. 어느 정신 나간 진보가 북을 맹종한다는 말입니까? 적어도 우리나라 국회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친북인사는 당연히 있습니다. 저도 친북주의자입니다. 미쳐 날뛰는 놈들이 있다고 해서 북을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내 핏줄 내 동포가 있는데요.
젊은이들 중에는, 그들은 동포가 아니라고, 그냥 영원히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 아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제 또래 사람들은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태극기부대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북한 주민들도 우리 민족임을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북한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열손가락 다 소중하지만 아픈 손가락에 더 눈이 간다는 말처럼, 북한이 병들어있기에 더 안타깝고 애틋한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 이해해야 하고, 그럴수록 더 다가가야 합니다. 일본인이 아니고, 미국인이 아니고, 내 동포 내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게 바로 보수적인 생각 아닙니까? 미국을 찬양하는 사람은 보수가 아니라 그냥 정신없는 사람입니다. 친북주의자가 진정한 보수주의자입니다.
4. 그래도 북을 품어야 하는 이유
미국이야 북을 통째로 부정할 수 있겠지요. 언제가 북의 ICBM이 미국에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남한의 생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을 쓸어버릴 것이 뻔합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지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그러면 북한이 가만히 있을까요? 가지고 있는 핵을 그냥 안고 죽어줄까요? 같이 죽을 것입니다. 미국을 죽일 수 없다면 남과 같이 죽을 겁니다. 재래식 무기는 형편없다고 하지만 그들은 핵을 갖고 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을 힘은 남도 없고 북도 없습니다. 그러나 너죽고 나죽을 힘은 남도 갖고 있지만 북은 더 확실히 갖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함부로 불장난을 하지만, 한반도는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가 상생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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