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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과 효율성으로 변해버린 농업 시스템 고발 다큐 '씨앗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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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혜
기사입력 2024-11-15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토종 씨앗과, 토종 씨앗을 오랜 시간 지켜온 농부들, 그리고 그들이 지켜온 특별한 씨앗을 찾아 다시 순환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공부 차>, <불편>, <씨앗의 이름>, <씨갑시> 등의 단편 다큐멘터리 및 비디오작품을 만들어 온 설수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씨앗의 시간>은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을 수상, 심사위원들로부터 “농부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활력 넘치는 리듬을 섬세하게 카메라의 시선에 담아내며, 사라져가는 느림 삶의 귀중함과 고된 노동의 숭고함에 시적인 예의를 표한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씨앗의 시간>을 구상하며 시작한 텃밭 농사를 6년째 이어오며 (반)자급농을 꿈꾸고 있던 설수안 감독은 영화에서 씨앗을 심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다시 씨앗을 거두는 일 년의 절기를 윤규상, 장귀덕 두 농부의 곁에서 세심하게 담아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씨앗의 시간>은 윤규상, 장귀덕 두 농부가 지켜온 토종 씨앗을 찾아서 나눔 활동을 하는 '토종 씨드림'의 농부들,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 씨앗의 시간과 농부의 노동에 애정과 존중을 표한다. 

 

뿐만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시침과 분침으로 나누어진 시간이 아닌, 쑥국새가 울면 쑥이 나고, 아까시꽃이 피면 깨를 심는 자연의 시간이 담긴 작품을 통해 소중한  자연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필름다빈

 

평택에 거주하는 농부, 윤규상 농부가 사는 평택은 급격히 도시화되어 들판을 가로질러 고속철도가 지나가지만,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소음 옆에서 윤규상 농부는 예전과 똑같이 손으로 씨앗을 한 알, 한 알고르며 옛 씨앗을 갈무리하고 다시 심는 과정을 반복한다.

 

허리가 반으로 굽은 윤규상 농부가 마늘씨를 걷어내고, 소중한 호박씨를 한톨이라도 잃을까 물에 담그어서 호박씨를 하나 하나 건져내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동부는 여기저기 많이 숭궈 어찌 될 지 몰릉께”라고 말하는 화순에 거주하는 장귀덕 농부가 사는 작은 마을에는 아직 농사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있다. 장귀덕 농부는 대세를 따라 지역 농협에서 보급하는 개량종을 심고 있지만, 옛 부터 내려온 토종 씨앗을 버리고 싶지 않아 한 켠에 계속 심고 있다.

 

장귀덕 농부가 사라져가는 동부를 퍼트리려고 여기 저기 마을과 산 귀퉁이에도 동부씨를 심어 사라져가는 토종 동부씨를 간직해 내려 하는 모습도 진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다.

 

장귀덕 농부가 대청마루 옆에 놓여 있는 다 부수어져가는 씨앗을 저장하는 장에 토종씨를 거두어 소중하게 담아놓는 장면은 인상적이며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씨앗들의 결혼까지 신경 쓰는 이경희 농부는 "씨앗 받는 게 어려워요. 인간인 내가 얘네들의 결혼까지도 신경쓰면서 일을 해야 하잖아, 누구랑 결혼해야 하는지“라고 중얼거린다. 알록달록 예쁜 토종 씨앗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년의 여성 농부 이경희 농부는 토종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다.

 

이경희 농부는 내가 원하는 노동을 내 마음대로 하는 농사일이 재미있고 좋다고 말한다. 부지런히 밭일을 하며 두런두런 하는 말들엔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토종 씨앗을 다시 순환시키려는 사람들 '토종씨드림'은 사라지고 있는 토종 씨앗을 찾아 연구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르신 농부들의 돔부, 똬리호박 등의 씨앗이 이들의 손에서 번호가 붙여져 연구되고 확산된다. 

 

영화는 두 여성 농부이자 활동가가 농사를 짓고 씨앗을 받는 곡성 산골의 밭이 어르신들의 느린 삶 사이사이로 펼쳐지며, 사라져가는 토종씨앗을 보존하려는 이들의 노고를 전해, 토종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 모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씨앗의 시간>은 생산성과 효율성에 따라 변해버린 농업 시스템, 농부와 씨앗의 시간마저 빠르게 돌려 놓은 농업 시스템을 동시에 고발하며, 종자 회사가 판매하는 상품화된 씨앗이 아니라 오랜 시간 농부들이 지켜온 토종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 사라져가는 토종씨앗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카메라는 “흙이 풀리면 고르고, 씨앗이 있으니께 심는거지"라며 수십 년간 자신의 씨앗을 받고 심어온 윤규상, 장귀덕 두 농부의 작업을 따라가며 일 년 안에 중첩된 긴 시간을 바라본다. 느리지만 성실하고, 수고스럽지만 다정한 노동의 가치 그리고 그들이 지켜온 특별한 씨앗을 찾아 다시 순환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담았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씨앗의 시간>을 연출한 설수안 감독은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다큐멘터리영화를 공부했으며, 채식을 시작하며 부딪힌 불편에서 시작한 <불편한 식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공부 차>, <불편>, <씨앗의 이름>, <씨갑시> 등의 단편 다큐멘터리 및 비디오작품을 만들어 영화제 또는 갤러리에서 상영, 전시했으며, <씨앗의 시간>을 구상하며 시작한 텃밭 농사를 6 년째 이어오며 (반)자급농을 꿈꾸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전일적인 삶의 형태에 관심이 있으며,  작품을 통해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잘 공생하는 삶을 모색중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설수안 감독은 “당연한 줄 알았던 씨앗을 받고 심는 과정이 현재의 농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씨앗을 찾으러 다니는 분들을 만나 함께 다니며, 씨앗이 없어지는 것은 그 맛과 냄새, 그것을 인지했던 우리의 감각이 함께 획일화되는 일이며, 씨앗을 정리해 보관하고 심어왔던 어르신들의 삶의 모습도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점 저의 관심은 우리와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듯한 어르신들의 삶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주변 생명들의 삶과 연결된 행위였던 그들의 노동과 삶의 리듬을 담아보고 싶었다"라며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덧붙였다.

 

▲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 포스터  © 필름다빈


아름다운 들판과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농가를 배경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이 우리의 농업과 먹거리 시스템을 점령한 우리 삶에 대해 강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씨앗의시간>은 11월 20일(수) 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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