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는 <감각의 제국>(1976)으로 전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열정의 제국>(1978)으로 제3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다시 한번 칸영화제에 초청 된, 반 데르 포스트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이 불발되었으나, 41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최초 개봉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영화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탄생한 전설 속의 명작으로, 그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본 적 없는 대중음악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 당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 등의 스타들이 참여한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합작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 당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세 사람은 모두 이 작품을 기점으로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연기뿐만 아니라 첫 영화음악에도 도전,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의 테마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탄생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는 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와 마주하게 된다. 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
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 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전쟁의 포로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 서로 적이었지만, 모두 인간이었던 포로수용소의 일본군과 영국군 포로사이의 갈등을 생생하게 다루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전장의 크리스마스> 제작 당시,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영화 <연합함대>(1981), <대일본제국>(1982)에 출연한 배우들은 배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확실한 선을 그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한다.
그러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기존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구상에는 60억 명 이상의 인구가 살아가는데, 나는 고작 20-30개의 배우 프로필을 보며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뭔가 다른 선택을 하면 작품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캐스팅뿐만 아니라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며 당시 연기 경험이 전무후무했던 신인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면식도 없었던 데이비드 보위가 일본에서 광고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광고 에이전시를 통해 무작정 수소문하여 편지를 써 캐스팅했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진집을 통해 그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 캐스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힌다.
영국 육군 소령으로 게릴라 작전 중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하지만, 포로로 잡혀온 군사법정에서도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반항적 태도로 요노이 대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잭 셀리어스 역은, 대중음악의 아이콘,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보위가 맡았다.
데이비드 보위는 과거 동생을 외면하고 배신했던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젝 셀리어스 역을 맡아, 요노이 대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처형은 피하고 포로로 잡혀온 상황 속에서도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반항적 태도로 기행을 일삼아, 요노이와 계속된 갈등을 빚으며,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데이비드 보위는 BBC 선정 20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로, 포크 음악, 글램 록, 펑크, 팝, 디스코, 일렉트로닉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혁신적인 음악과 예술적 실험을 통해 대중문화의 경계를 확장시켰다. 특히 매 앨범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무대 퍼포먼스, 영상 예술 등 대중문화 전반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문화적 아이콘으로 평가받으며, 2022년 기준, 21세기에 가장 많은 비닐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로 알려졌다..
일본 육군 대위이자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무사도와 명예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일본 군인 요노이 대위 역은,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영화음악의 거장, 일본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2.26 사건 당시 동료들과 함께 죽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으며, 군사법정에서 만난 잭 셀리어스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수용소에 데려온다. 잭 셀리어스를 포로 대장으로 만들어 가까이 두고 싶어하지만 뜻처럼 되지 않아 마음만 복잡해지는 역을 연기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의 테마곡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시작했으며, 이후 <마지막 황제>를 통해 아시아 최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고, 그외 골든글로브, 그래미어워드 음악상을 모두 석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음악의 거장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날타로운 눈매의 무사도와 명예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일본군 요노이 역을 맡아, 잭 셀리어스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해 내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특히 잭이 요노이에게 볼 키스를 하는 장면은 단순한 도발을 넘어 배우 데이비드 보위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주요 장면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유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남기며 지난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동일본 대지진 폐허 지역을 찾고, 일본 후쿠시마 지진 및 쓰나미, 원전 사고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사회적 운동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음악뿐만 아니라 9·11 테러 현장에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환경 보존 노력, 비핵화 및 세계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로서 전 세계에 따뜻한 치유와 위안을 안겨 준 음악가다.
“오늘 밤은 내가 크리스마스 아버지야”라며 로렌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하라 겐고 역은, 일본 코미디언 BIG3로 불릴 만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코미디언인 동시에 <소나티네> <기쿠지로의 여름> <하나비> 등으로 세계적 평단의 찬사를 받는 90년대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다.
기타노 다케시는 <하나비>로 제54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잔인한 폭력 속에서도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그의 작품들을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폭력 미학을 완성했다. 배우로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 육군 군조이자 포로수용소 군종부사관. 10대 때부터 군인으로 살아온 탓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는 윽박지르고 구타하는 등 가학적인 면모를 앞서 보이나, 로렌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등 포로수용소 내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로, 영화의 엔딩씬을 장식하며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영국 육군 중령. 전쟁 전 일본에서 지낸 경험으로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존 로렌스 역은 스코틀랜드 대배우이자 감독인 톰 콘티가 맡아, 일본군과 영국군 사이를 중재하는 가교 역할로서 곤란한 상황을 자주 겪는 역을 연기한다.
톰 콘티는 영국군 포로 대장으로부터는 일본군과 더 친한 것 같다는 비난과 일본군으로부터는 포로에 대한 멸시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고달픈 역할이지만,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려 애쓰는 역을 연기해, 포로수용소에사 일어나는 일본군과 영국군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톰 콘티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으로, 연극, 영화, TV 시리즈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방면으로 활약, 독특한 유머 감각과 진중한 연기 스타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존 로렌스 역할을 눈여겨본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손꼽으며 톰 콘티를, <다크 나이트 라이즈> <오펜하이머> 등에 캐스팅되어 캐릭터의 감정적 리얼리티를 더했다. 특히 <오펜하이머>에서 아인슈타인 역을 맡으며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로 몰입감을 끌어올린 바 있다.
오시마 나가시 감독은 일본영화사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며 논란과 혁신으로 가득한 영화를 선보였던 감독이다. 1950년대 일본영화계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를 이끌며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결합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데뷔작 <사랑과 희망의 거리>(1959)를 통해 일본 누벨바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두 남녀의 인생을 통해 일본 좌파의 혁명실패 이후의 신세대들의 혼란과 방황을 포착한 <청춘 잔혹 이야기>(1960)를 통해 ‘일본의 장 뤽 고다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장 뤽 고다르 본인도 ‘진정한 누벨바그의 시작’이라고 호평했으며, 당시의 문제작이었던 <일본의 밤과 안개>(1960)는 정치적·형식적으로도 일본영화사상 가장 혁신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에도 전통적 영화 문법을 탈피하고 도발적인 주제를 다루며, 일본사회의 위선, 권위주의, 성과 권력의 문제 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회적·정치적 금기를 깨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후기 대표작 <감각의 제국>(1976)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파괴적 사랑과 육체적 쾌락을 탐하는 연인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담아낸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았으며, 당시 일본의 검열과 금기에 도전한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는 검열을 피하지 못했으나, 칸영화제에서 크게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이후 <열정의 제국>(1978)을 통해 제3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제3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는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문화적 충돌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다시 한번 그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매번 일본영화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장르적 규범을 깨고 복합적인 주제를 탐구하며 혁신적인 예술가로 평가받으며, 영화를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인,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촉진하는 도구로 여겼으며, 그의 독특한 영화 접근 방식과 사회적 비판은 영화 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의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일본군과 영국군이라는 적대적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우정과 전쟁으로 무너지지 않는 휴머니즘을 담아내며, 단순한 전쟁영화를 넘어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영화다.
이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하는 중재자 역할로서의 로렌스를 향해 하라 겐고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엔딩씬은 많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전투 장면은 일절 보여주지 않는 한편, 전쟁의 참혹함을 담아낸 이색적인 전쟁 영화<전장의 크리스마스>는 11월20일(수) 개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