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은 매해 아시아영화산업과 문화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는 '큐어'(1997), '회로'(2001), '밝은 미래'(2002), '스파이의 아내'(2020) 등의 영화를 만든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신작 ‘클라우드’와 ‘뱀의 길’을 두 편을 선보였다.
‘클라우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요시이(스다 마사키)가 ‘라텔’이란 가명의 전문 리셀러로 활동하다 집단 폭력의 표적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요시이는 피규어부터 핸드백, 심지어 의료기기까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으로 모든 물품이 그의 리셀러 대상이다.
그가 도시 외곽 호숫가에 거처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리셀러 활동을 시작한 어느 날, 명백한 적의를 띈 폭력이 요시이를 덮치고, 뜻밖의 폭력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클라우드'는 익명성에 묻힌 증오가 곯아 터져 결국 집단의 광기로 분출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혼란 그 자체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모습을 다루어악의, 폭력, 집단광기의 연쇄를 구현해, 현대 사회의 또다른 폭력을 다루어 경각심을 주는 영화다.
'뱀의 길'은 파리 교외에 사는 프리랜서 기자 알베르(다미엔 보나드)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어린 딸의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뱀의 길(2024)'은 1998년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각색,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촬영했으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동일하지만 컬트 클래식 야쿠자 장르였던 원작과는 다르게, 거칠고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지만 끝내 진실 이면의 깊이에 다다르는 모습을 그린다.
어린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기자 알베르(다미엔 보나드)가 일본인 의사 사요코(시바사키 코우)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시작한다.
사요코와 알베르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연관된 사람들을 잡아 끔찍한 고문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나, 마침내 딸을 납치했던 이들의 의문의 컬트 단체와 연결된 사실을 파헤치지만 그 이면에 아무도 짐작 못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면서 “영화 시작한 지 40년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건 20년이 됐다. 제 영화 인생의 반을 부산영화제가 지켜봐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명예로운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격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올해 두 편의 영화를 완성했는데 그 두 편의 영화 모두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해서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최신작 두 편을 선보이기 위해 부산에 왔다. 20년 전부터 저의 작품을 계속 봐주는 분들도 이번에 처음 보게 되는 분들도 많이 기대해달라.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10월3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갈라 프레젠테이션 '클라우드', '뱀의 길' 을 연출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기자회견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처음에는 액션영화를 찍고 싶단 단순한 욕망이 있었고, 프로듀서의 요청도 있었다”며 “일본 대부분의 액션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처럼 야쿠나와 경찰, 킬러 등이 등장한다. 그런 편리한 방식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고 ‘클라우드’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70년대 미국 액션영화 중 평범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이야기서 영감을 받았다"며 “현대 일본 이야기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해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클라우드’는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리셀러 청년 요시이(스다 마사키)가 구매자의 타깃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라며 "화려한 액션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등장해 문제에 부딪히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구로사와 감독은 ‘클라우드’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 전반부에서 주인공 요시이가 사는 아파트 창 밖으로 그가 그만둔 공장 사장이 찾아온 것을 보게되는 장면을 꼽았다. 컷을 나눠 처리할 수도 있지만 이어서 처리했기에 촬영 품도 많이 들었다"며, “장면을 이어서 보여주면 일상의 공포로 와닿게 된다. 공포의 순간을 시간의 경과 속에서 느끼게 되기에 흐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클라우드'를 "야쿠자, 경찰, 살인범처럼 폭력과 가까운 사람을 그린 액션 영화와는 달리 폭력과 인연이 먼 보통 사람이 죽고 죽이는 극한적 상황으로 치닫는 영화"라며 "항상 '현실은 이렇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리얼리즘의 비약적 전개를 가미하고 영화로만 그려낼 수 있는 순간을 집어넣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뱀의 길’도 평범한 이가 극한으로 치닫는,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감각으로 풀어내는데, 구로사와 감독은 “일반 사회와 매우 멀지 않더라도 통용되는 규칙에서 벗어난 상황을 그려내고 싶어 그런 폐쇄적인 장소를 설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구로사와 감독은 “현실 공간에서 시작해, 점점 영화의 세계로 이어지는 걸 추구한다. 지금은 닫힌 공간이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살아가는 열린 곳에서 장르적인 무언가가 벌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작품을 만들 때는 제 안에서 샘 솟기보단 바깥의 역사 등 세상의 많은 것에서 발견한다. 영화 너머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식”이라며 "영화라는 큰 덩어리 중 하나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장르영화’를 만든다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장르영화를 설명했다.
이어 "영화적으로만 가능한 순간이 스크린에 표현되면 관객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없어 못이라도 박힌 듯 스크린에 집중하게 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다시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것이 장르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도, 인간의 마음을 파헤치는 영화도 만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적인 것이 중요하다"며 "영화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꼭 지켜야 한다. 그래야 영화의 길이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55년 고베에서 출생했다. '간다천 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한 뒤, '큐어'(1997)를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도쿄 소나타'(2008)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해안가로의 여행'(2014)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감독상을 받았으며, '스파이의 아내'(2020)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주요 연출작으로 '회로'(2001), '밝은 미래'(2002), '절규'(200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