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점기에 우리 겨레말과 겨레 얼은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으로 짓밟히고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광복 뒤에 조선어학회(한글학회)가 앞장서서 우리말을 도로 찾아 쓰자는 일을 하고 배움 책을 우리 말글로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 식민지 국민 교육을 착실하게 받은 이들이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자는 것을 가로막았다. 일본말투에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는 것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교수와 선생, 정치인과 공무원으로 이 나라 일을 하고 있어서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제국 식민지에서 풀려나고 5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일본말투와 일본 한자말을 교과서와 공문서에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1997년에 이를 바로잡으려는 강연회를 열었다.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조선어학회(한글학회)가 앞장서서 우리말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미국 군정청에 주었고, 국어 선생도 양성하면서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 운동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 이숭녕 교수, 고려대 조윤제 교수들은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반대했다. 그래도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 공문서라도 한글로 쓰자는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도 만들고 교과서에는 우리말을 많이 살려서 썼다. 그런데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부가 일본과 수교를 다시 한 뒤에 일제 때 경성제대를 나온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가 그의 제자 남광우 교수들과 ‘어문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면서 교과서에 살려서 쓰던 우리말이 다시 한자말로 바뀌고 일본말투가 늘어났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신 1950년대 자연책에 있던 “어깨뼈, 흰피톨, 붉은피톨”이란 말은 “견골, 백혈구, 적혈구”라는 일본 한자말로 바뀌고, ‘셈본’이란 배움책은 ‘산수’로, ‘말본’이라는 말은 ‘문법’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리고 문교부 교과 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에서 토박이말을 살려서 쓴 글은 빠지고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투로 쓴 글이 실렸다. 그래서 1990년대에 들어서 이오덕 선생이 일본말투와 일본 한자말을 버리자고 “우리글 바로쓰기”책을 내고,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 바로쓰기”란 책을 내고 그 잘못을 바로잡자고 했다. 나는 그동안 한자혼용을 막는 일에만 힘과 정신이 팔려 이렇게 우리 교과서에서 우리 토박이말이 일본 한자말로 바꿘 것을 알지도 못했고 막는 일은 나서지 못했다.
나와 한글단체는 수십 년 동안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자들과 싸우느라 우리말 지키고 바로 쓰는 일에는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은 문교부에 들어가 교과서에 일본 한자말을 되살려 쓰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고 설쳤다.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출신 선생들이 교과서를 그렇게 만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195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 교과서에 있던 토박이말이 많이 빠지고 일본 한자말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고 이수열 선생과 서정수 교수를 모시고 “이런 교과서로 학생을 가르치다니!”라는 강연회도 열고, 이오덕 선생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만들고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그 뿌리가 깊고 정부와 언론이 협조하지 않으니 쉽게 바로잡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일본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들 세 김시가 정권을 잡으면서 한자조기교육과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서니 영어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우리말이 영어에 치어 죽을 판이었다. 거리에는 한글간판이 사라지고 영어간판이 자꾸 늘어났으며 회사이름부터 영어 창씨개명이 늘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 한 것을 탓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중국 한문을 쓰면서 뿌리내린 언어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으로 뿌리내린 노예근정이 되살아나 한글을 살려서 자주독립국이 되자고 광화문에 걸린 한글현판을 떼고 중국 속국 상징인 한자현판이 걸렸다.
거기다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들까지 나오니 나는 영어 바람을 막는 데 힘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 교과서 바로잡기는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투에다가 영어와 미국말투 말이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반 나날 말글살이까지 퍼져서 교육을 망치고 국민정신까지 흔들리게 되어 나라가 혼란스럽게 되었다. 요즘 언론은 학생들이 일본 한자말을 몰라서 교육하기 힘들다고 떠들고 있다. 한자검정시험으로 돈벌이하는 세력이 다시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하자고 언론을 부추기는 것이다. 신문은 학생들이 “추후 공고”란 말을 듣고 어디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냐고 묻는다며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떠든다. 왜 이런 한자말을 써서 학생들을 헷갈리게 하는가! 학생들은 ‘공고’란 말을 들으면 먼저 공업고등학교를 먼저 떠올린다. 이런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다음에 알림”이라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신문에서 학생들이 잘 모른다고 들추어 낸 “심심한 사과”란 말도 그렇다. ‘사과’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먼저 먹는 과일이 떠오른다. ‘소천’이란 말도 잘 쓰지 않는 한자말이다. 그냥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헷갈리지 않는다. “중식 제공”은 “점심 드림”이라고 하면 된다. “우천 시 장소 변경”이라는 말도 그렇다. “비오면 장소 바꿈”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다. 한자말을 쓰니 “서울시, 부산시”처럼 ‘우천시’라는 도시가 있는가보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보고 쉬운 토박이말을 쓰면 문제가 없으며, 영어편식 교육 때문이라고 따지는 기자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이 말을 한자로 쓰자고 한다. 그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더 꼬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어선생님들은 일본 한자말을 버리고 우리 쉬운 말을 살리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대학 국문과나 국어교육과 교수들은 그런 일은 안 하고 교과서 개편 때마다 어려운 한자말을 자꾸 더 넣고 있다.
1945년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 서울사대 이기인 교수는 일본 한자말로 된 생물학 용어 5000여 개를 우리말로 바꾸어 “사리갈말 말광”이라는 사전도 만들었으나 교과서에 조금 쓰이던 것도 다시 한자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음악가 금수현 선생이 음악 용어를 “도돌이표, 쉼표”처럼 만든 것은 교과서에서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쓰이고 있다. 이제라도 “공격적, 평화적”처럼 한자말 뒤에 붙는 ‘적’과 같은 토씨를 쓰지 말고, “ ~와의, ~에로의’같은 일본말투도 쓰지 말자. 또 ‘유치하다’처럼 두 음절 한자말 뒤에 ‘하다’가 붙은 말도 빨리 쉬운 말로 바꾸자. 우리말이 살고 많이 쓰일 때 우리 겨레와 나라가 일어난다. 일본 한자말이나 외국말을 한글로만 쓴다고 다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말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말다음기에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쓰자. 이 길은 자주독립 강국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