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경림 시인의 문인장 영결식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했고 조사, 조시, 추모시 낭송 등이 이어졌다.
지난 22일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암투병 중 타계한 고 신경림(88) 시인의 '대한민국 문인장 영결식 및 추모식'이 24일 오후 7시 신경림 시인 대한민국 문인장 장례위원회(신경림 시인 장례위원회, 위원장 염무웅) 주최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행사장에서 열렸다.
신경림 시인 장례위원회는 지난 22일 주요 문학단체와 기관들이 합심하고 유족들과 숙해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례위원회는 염무용 위원장과 도종환 집행위원장을 필두로 현기영 소설가, 정희성 시인, 윤재웅 동국대총장 등 14인의 문화예술인 대표들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날 영결식에서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도종환(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국회의원이 먼저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염무웅(영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고인은 70년 가까운 문필생활을 통해 수많은 시와 산문을 민족문학의 자산으로 남겼다"며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고난의 세월을 이웃 동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정직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문정희(시인)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김평수 민예총 이사장, 이경자 소설가 등이 추도사를, 이근배 시인, 정희성 시인, 이재무 시인 등이 조시를 낭독했다.
고인의 시 '민주'를 안혜경 가수가 노래했고, 민요연구회 회원들은 고인의 시 '돌아가리라' '낙타' 등을 노래(추모)했다.
장순향 전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이 추모 춤 '천도무'를 선보였다. 특히 고인의 시 낭송도 이어졌다. 여서완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를, 한국문인협회 강정화 시인은 ' 농무'를. 한국시인협회 방민호 시인은 '길'을, 동국문학회 김금용 시인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전한 작은 아들 신병진 씨는 "아버지의 뜻을 기리고 아버지의 아름다운 시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잘 보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생전 고 신경림 시인의 문학적 가치를 소중히 여겨 박사 논문을 썼던 강민숙 시인은 "'낙타'라는 고인의 시가 있는데, 영정 밑에 조각한 낙타 두 마리가 서 있어 놀랐다"며 "아마 낙타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결식에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수경 전 국회의원, 유시춘 EBS이사장 등도 참석해 영결식을 지켜봤다.
고인의 영정 주변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의 조화가, 차기 국회의장으로 유력한 우원식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이학영, 김우영, 송갑석 의원 등의 조기도 보였다. 영정 밑에 두 마리 낙타 조각과 '목계장터'라는 고인의 시가, 그 옆에 고인이 생전 술을 즐겼던 탓인지 막걸리와 소주가 나란히 놓였다.
고인은 25일 오전 서울대 장례식장을 떠나 이날 오후 장지인 충주시 노은면 선영에 잠든다.
고인은 36년 4월 6일 부친 신태하와 모친 연인숙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충청북도 충주시(당시 중원군)에서 태어났다.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화예술> 잡지에 시 '낮달' 등으로 문단에 등장했고, 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 등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농무'는 농민들의 궁핍한 삶, 황폐해진 광산, 떠돌이 노동자들, 도시 변두리의 뿌리 없는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때부터 민중의 삶을 소재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을 시로 형상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8년 시 '가난한 사랑 노래'의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본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다. 하지만 5공화국 군사정부의 검열을 의식한 출판사의 만류로 수정했다고 알려졌다. 고 천상병 시인과 절친이었고, 생전 문학평론가 구중서 수원대 명예교수,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도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동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었고, 7년 전 암이 발생해 투병생활을 해 온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오전 8시 17분 경, 향년 88세로 암투병을 하다,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다음은 신경림 시인의 문학적 가치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던 강민숙 시인이 <전북도민일보>에 쓴 고인의 추모시이다.
신경림 시인의 버킷리스트
인연은 운명이라 했던가.
어느 세미나 뒤풀이 자리였나
아무도 앉지 않은 내 옆자리
여기가 내 자리인가 하며,
미소 지으시며 앉아
세상은 다 인연이라시던 시성(詩聖),
그날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말했지
“나 말이야, 고소 공포증이 있어
남산 타워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는데
강 시인이 동행해 준다면
오늘 용기 있다,” 하시던 천진한 소년 시인,
타워에 올라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들이켜시며
“이제야 나도 서울 사람 되었다”라며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 두고 가셨다.
쾌속선 한번 타보고 싶은데
배가 무서워,
지금껏 타보지 못했다는
그 말씀에 함께 떠났던 덕적도 여행,
모래밭에서 달래기 시합하며
나 아직도 청춘이라시던
그 말씀 두고 가셨다
이제 소원 다 이루었다며 소주잔 부딪치던
지울 수 없는 추억 두고 가셨다.
지금 천국에서 아름다웠던 지상의 날을 들춰 보고 계시겠지
한국문학사의 큰 획, 거장,
아! 신경림 시인님,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