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한국 남자는 전쟁 강간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여성주의 관점의 보고서가 올라와 있다. 여성부 폐지에 열 올렸던 가부장적 마초들의 공격이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신을 마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역시 한국 여성주의 주류 시각을 반영하는 이 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
한국 여성계의 '전쟁과 가부장제'에 대한 관점은 강대국 페미니즘과 연대하는 국제연대 페미니즘의 반영이다. 나는 이런 관점을 강대국 페미니즘이라고 칭해 왔다. 이 관점에서는 저항적 민족주의든, 가부장적 민족주의든 상관없이 민족주의는 페미니즘과 갈등을 일으켰을 때 배척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 남자들의 '전쟁 강간 범죄'가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일본과 독도 문제로 갈등을 빚을 때, 포털 사이트에 딸린 댓글에는 '일본 침략하여 일본 여자들 강간하자'라는 취지의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것도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여성 강간하자'로 표방되는 가부장적 민족주의인 것이다.
강대국 페미니즘 관점에서 <요코이야기>는 '가부장적 민족주의 한국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강간 이야기로 상징화시켰다. 한국 여성계가 여기에 동의하고 서로 국제적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 여성계의 주류 관점인 국제 연대 페미니즘은 <요코이야기>를 중국과 한국에 번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할 것이다.
중국이 번역을 거부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 번역이 거부된 것은 자국의 전쟁범죄가 자국 국민까지 어떻게 학대하는지를 자성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에. 전쟁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 우익의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이 민족주의 관점에서 거부해야 할 서적은 사실은 <요코이야기>가 아니라 <창가의 토토>이다. <창가의 토토>를 읽으면 한국인들은 치를 떨어야 한다.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는 기간 동안 일본 아이는 일본의 타국 침략을 모른 채 너무도 한가한 삶을 영유했던 것이다. 감동스런 장면이 있는 이 책이 한국인들이 읽을 때는 왜 치를 떨 수 밖에 없을까 논의되어야 한다. 일본 본토에서 평화로운 삶이 이어질 때 한국에서는 일제치하의 민족적 수치와 분노의 삶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창가의 토토>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고 <요코이야기>에 한국인이 강간범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런 관점이야말로 여성부 폐지 운동하는 마초들의 성폭력 범죄 의식에 기반한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 남자들은 일본 여자 상대로는 물론이고 자국 여성상대로 사실상 집단 윤간을 저지르고도 성매수는 범죄가 아니기에 합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성부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무슨 자격으로 <요코이야기>를 트집잡는지 의아하다. 자국 여성상대로도 일상적으로 집단 성폭력(성매수 범죄)을 저지르면서 그런 행위를 떳떳이 여기고 적반하장으로 여성주의자들을 습관적으로 공격하며, 여성들에게 책임을 몽땅 뒤집어 씌워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이, 정말 철면피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매수는 엄연히 성폭력이다. 성매수 범죄는 곧 전쟁 강간 범죄 의식과 동질의 것이다. 한국 여성계가 강대국 페미니즘과 연대하는 이유는 '성매매'에 대한 한국 주류 남성들의 관점 때문이다. '여성부를 폐지하자, 성매매를 합법화하자, 성매수는 범죄가 아니다' 마초들의 이런 심정과 사고방식은 저항적 민족주의가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는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뒷면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한국에서 '성매수 처벌법'이 실효화 되지 않는 한 약소국 여성계는 강대국 페미니즘과 연대하게 되어 있다. 한국 여성계가 일제의 침략을 당하고도 저항적 민족주의를 페미니즘 속에 포함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현상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여성계의 이런 사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저항적 민족주의를 페미니즘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적 현실무시 '성매수 범죄자 사고방식의 주인공들'이 <오마이뉴스>에 실린 '여성주의 보고서'를 벌떼처럼 달려들어 비난하고 있다. 마치 여성부 폐지 운동의 연장전을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가지고 냉정히 약소국 페미니즘에 대해 사유해 보자.
약소국 페미니즘은 뭔가? 강대국 페미니즘이 약소국에 적용될 경우에는 공허한 이론이 된다. 그것을 비판하고 현실에 맞춰 진실을 추구하는 관점이다. 약소국 페미니즘은 강대국 페미니즘이 근거 없음을 샅샅이 까발릴 충분한 체험담과 증거들을 갖고 있다.
강대국 페미니즘은 이론상 여성 연대를 추구하고 있는 듯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제적 여성 연대는 공허하다. 교수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약소국 현실 여성의 고통을 겉핥기하는 방식이다. 가부장적 피해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여성의 현실에 촛점이 맞춰져서 이론이 나온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 한국 여성계가 베트남 전에서 전쟁 강간의 피해자들을 위해 페미니즘 연대를 이유로 뭘 해 줬는가 생각해 보자. 강대국 페미니즘은 저항적 민족주의를 삼킴으로써 그 결과 약소국 여성의 현실을 개선시킬 여지가 말살되게 한다.
말로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사과할 수 있다. 혹은 이론상으로 '전쟁 강간과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 결과를 강대국 페미니즘처럼 생산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강대국 페미니즘이 베트남 전쟁 강간 피해자를 위해 한국군인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하는 등등 그런 움직임이 있었는가? 감정적으로 설령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국제적 연대 의식을 가진다해도 그런 노력이 약소국 여성의 처지를 개선시키는데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가? 아니다.
여기까지 현실을 더듬어 갔다면, 한국이 피해국가일 경우, 일제치하에서 벌어진 전쟁 강간 범죄에 대해 서양 강대국 페미니즘이 한국 여성계에게 뭘 해 줄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파악이 될 것이다.
강대국 페미니즘이 공허한 이유는 절대적이다. 이 강대국 중심의 국제 연대 여성주의는 자연계에서 여남 관계의 본질을 무시하고 있다. 강대국 페미니즘은 레즈비아니즘 속에서 일부 진실로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서양 페미니스트들의 행동과 베트남 피해 여성들에 대한 한국 여성계의 행동을 관찰해 본 결과 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인종주의는 어쩌면 부인하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감성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아니 더 나아가 생활권이 인종주의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평등을 추구하는 강대국 페미니즘 신봉자라고 해도 인종주의가 페미니즘 연대를 삼키는 현상은 막을 길이 없다. 자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약소국에서는 가부장적 마초 남성의 의식을 변화시켜 약소국 여남이 함께 저항적 민족주의를 포함하는 약소국 페미니즘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나는 호주와 유럽에서 페미니스트과 대중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속에서 인종주의가 페미니즘 연대를 당연히 삼킬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생각해 봐라. 강대국 페미니즘 환경에서 살고 있는 서양 여자들이 서양 남자들과 생활비를 함께 쓰고 같은 생활권 내에서 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마당에 '페미니즘의 국제적 연대'에 진정으로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겠는지? 현실에서 강대국 페미니즘은 공허한 이론에 그칠 뿐이다. 페미니즘 연구자들의 연구 업적만 하나 더 늘어날 뿐 약소국 여성의 삶의 개선에 공헌하지 못한다.
기타 강대국 페미니즘이 공허한 이유는 너무도 많아 구구절절하게 나열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수 처벌법'이 없는 한국에서 '성매매 방지법'이 사문화되어 있고, 여성부 폐지 운동을 자랑스럽게 다수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여성 평등을 발설하는 여자들은 여지없이 뭇매를 맞는 이런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강대국 페미니즘을 한국 여성계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는다.
<오마이뉴스>에서 여성주의자로 커밍아웃한 그 기자가 맞는 무수한 발길질이 가슴 아프다.
<요코이야기>, 가능성 있는 우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백한 소설이다. 한국 남자들이 그 소설의 허구성을 아무리 많이 나열하더라도, 툭하면 '일본 여성 강간하자'고 떠들어대는 마초들의 사고방식이 증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다수 남자들은 일본 남자처럼 잠재적 전쟁 강간범이고 반성도 없고 보상도 없을 자들이다. 베트남 여성에 대한 전쟁 강간 경우를 보라. 그런 자들이 어떻게 일제치하 군 성노예 피해를 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당신의 약소국 페미니즘은 그럼 뭔가? 라고 묻는다면 '성매수 처벌법'이 실효화되고 성매수가 성폭력임을 인정하는 남자가 다수가 된 후에야 드디어 저항적 민족주의를 페미니즘 속에 포함시키는 약소국 페미니즘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라고 답하겠다.
나는 미래를 보기 때문에 약소국 페미니즘을 택했다. 그래서 마초들을 가부장적 민족주의에서 저항적 민족주의 노선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는 중이다. 이미 마초들은 싫든 좋든 선택권이 없다.
한국의 여남은 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관계이므로 한국 여성계도 남자들의 태도 변화에 맞춰 자연법칙을 따라 약소국 페미니즘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여성계는 <요코이야기>의 한국 출판을 적극 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의 교과서 채택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인종주의가 약소국 페미니즘을 삼키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