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부 폐지 운동의 파렴치함 다음 글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여성부 폐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초들의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성매매 현실이 왜 부끄러운지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성매수범들이 여성부 폐지 운동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발효되자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마초들이 총연대하여 노무현 정부를 규탄하면서 여성부 폐지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당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여성부 장관이 경질되었다. 경질되어야 할 대상은 윤간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성매수범들이지 여성부 장관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가 불의에 쉽게 굴복한 실책중 하나가 성매매 방지법 유명무실화였다.
성매매에 이식하여 기생하는 금융권과 재벌들, 성매수 범죄를 합법화하겠다는 마초들의 테러행각으로 인해 '여성부 폐지 운동'은 한번도 멈춤 없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여성부가 어떤 실책이라도 하면 표면으로 부상했다가 시비거리가 없어지면 다시 가라앉곤하는 운동이다. 운동이라고 부르기엔 솔직히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성매수를 처벌 못하게 시도하는 법의 사문화 운동이고 성공하고 있다. 지네들도 솔직히 부끄러워 실명으로 이런 운동을 못하고 다들 익명으로 숨어서 여성부 테러를 자행한다. 어떻게 낯부끄럽게 그런 운동을 다 하나? 자기 자식들 앞에 고개를 어찌 들려고? 이 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은 한나라당을 기점으로 활동한다. 돈이 있어야 성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진보-보수 양쪽 마초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여성부의 모습은 외로운 노무현의 모습과 여성문제에 한해서 겹쳐 있다. 진보의 일부도 역시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마초주의적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역사적으로 최초로 발효된 '성매수 범죄 의식 심어주기'를 시도한 노무현 정부는 엄청난 여론의 매를 맞고 휘청댄 후에 쓰러졌다.
여성문제에 대해선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훌륭하다. 여성주의자인 내가 노무현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사안별로 비판하자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매수가 범죄이다' 라고 국민에게 최초로 용기 있는 발언을 한 정부가 이 정부이므로 여성들은 노무현 정부를 함부로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마초 왕국에서 그런 말 하면 매 맞아 죽는다. 고로 노무현이 엄청 매를 맞았던 것이다.
진보-보수 합동작전으로 시작된 한나라당 지지율 높이기는 최초에는 성매매 방지법 실행에 기인했던 것이다. 이제 솔직해지자. 한나라당의 지지율 상승은 성매수를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한국 남성문화의 성범죄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나라당 지지율은 성범죄 지지율'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국민들이 더러움을 택한 것이다. 그 더러움은 입밖으로 내기 어려우니까 숨기고 경제 문제만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속마음으로 남자들은 일제히 성매매방지법을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안 그러는 남자 있으면 여기 나와 자백해 보라. 그런 남자 있으면 여성부에서 포상해야 한다. 여성부가 깨끗한 남자를 포상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너무 더러운 물에서 그래도 깨끗한 사람들이 있으면 상 좀 주겠다는데 웬 난리들인가?
재벌과 금융계 더 나아가 4백만 생계형 성노예 계층이 성매매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성매매방지법 하나만 제대로 실행해도 어떤 정부든 지지율이 한 자리 수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 당시 마초들 입에 달고 있던 말이 '성매매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한나라당을 찍겠다'였다. 여성부 게시판에는 그런 글로 홍수가 났었다.
왜 진보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을 높이는지 몰랐던 사람은 성매매방지법 하나만 봐도 이해가 갈 것이다. 진보 마초라고 진보의 탈을 쓴 마초들이 한나라당 남자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진보진영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운동권의 성범죄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부는 아무데에서도 지지 기반을 만들 수가 없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무슨 힘으로 여성부를 끌고 갈 수 있었겠는가? 진보-보수 합동으로 마초들이 왕 달려들어 물어뜯는데 말이다. 다수 여성은 여자마초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부장제에 의지해 살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에 다수 여성을 상대로 해서 여성부가 지지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은 소수이다. 지식인들이 이걸 모르겠는가? 다들 알고 있다. 여성부는 여성이 소수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마초들은 여성부보고 왜 다수 여성에게도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존재하느냐 비난하지만 여성부가 다수 여성에게 지지를 받을 정도가 된다면 뭐하러 존재하겠는가 말이다. 성매수 범죄를 저지르는 마초들이나 그런 문화를 당연시하는 여자마초들이나 매한가지다. 그러기 때문에 성매매 현실이 이 지경이 되고 있다.
이영훈의 정신대 발언에 발끈했던 대한민국 남자들, 이들이 일본군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국 여성을 성노예로 학대하고 있으면서 이영훈에게 분노를 드러내자 여성계에서 한국 남성들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이영훈을 감싸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졌던 참으로 괴상한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과연 여성의 관점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나?
나는 여성이면 당당하게 북한의 공산주의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 문제 하나만 봐도 북한이 남한보다 여성의 존엄성이 높다. 물론 배고픈 문제가 있긴 하지만 북한도 경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다. 북한의 여자 축구하며 여성 취업률을 보자. 양의 시대에서 음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동양에서 이제 여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남한의 모든 여성은 북한을 지지하고 북한 중심의 통일을 꿈꾸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한 마초들의 여성부 폐지 운동의 염치없는 행각을 고려해 볼 때, 북한이 남한보다 여성에게는 최소한 1.5배 이상 바람직한 체제이다.
2. 한국 남자 걸레론과 중광스님 걸레론 비교학적 고찰 < 여성주의 풍자문 해석> 내가 1990년대 통신에서 여성운동 할 때 들고 나온 풍자문 시리즈 중에 '한국 남자는 걸레'라는 시가 있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한국남자 걸레론'은 중광스님의 걸레론과 다르다. 비교학적으로 개념 자체가 다르다.
1)걸레스님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걸레'는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활동을 하는 바람직한 도덕적인 활동을 뜻한다.
2)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욕으로 사용하는 걸레라는 개념은 ‘닳아졌다’ 라는 뜻이다. 새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다. 능숙하게 섹스스킬을 지닌 여자라서 남자로 하여금 열등감을 느끼게 하므로 남자로서 정력이 모자라서 스킬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변강쇠 컴플렉스 소지자들이 자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여자들이 이런 작은 페니스 컴플렉스에 발끈할 필요가 없다.
3) 내가 사용하는 한국 남자 걸레론에서 걸레는 걸레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걸레에 묻은 검은 오물에 주목한다. 성매수범이 80%, 아니 성매수 의식구조를 가진 남자가 90%인 한국 남자의 양심이 걸레에 묻은 때로 현상화 되었다는 개념이다.
한국남자 걸레론과 걸레스님 걸레론은 다르다는 관점에서 비교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성매수범들의 범죄질 그 자체를 검은 때로 연결시키는 이미지 기법이다.
여성주의에서 사용하는 풍자문은 이미지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한국남자 걸레론'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언어철학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동양사상이란 소파에 앉아있는 격이다.
여성주의에서 사용하는 '한국 남자 걸레론'은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탐구를 요하는 풍자문이다. 그 풍자문이 성매수범들의 테러에 의해 인터넷상에서 사라졌다. 오직 남은 것은 '걸레들에게 사과문'이란 쪼가리뿐이다. 걸레들에게 사과문에는 왜 한국 남자가 걸레로 은유되었는지, 과연 한국 남자가 걸레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차지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할 뿐 별 내용이 없고 말장난만 외로이 남아 있다. '걸레'가 무슨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 대중 사회가 사용했던 욕의 의미로서의 '걸레론'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미술철학과 언어철학, 그리고 동양사상의 결합에서 탄생된 '한국남자 걸레론'은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이다.
걸레 그러면 청소, 너덜너덜 이런 관념만 있다고 믿었던 조류남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은유할 때 사용하는 걸레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데 충격을 먹었다. 곧 그 충격으로 '한국남자 걸레론'에 테러를 자행했던 사건이 있었다.
한국남자 걸레론! 걸레질(성매수범죄)을 한 후 사회에 오물로 남은 하수구에서 생명들이 아빠 없이 탄생해 왔고 그에 대한 책임은 아동학대로 이어져 왔으며 비인간적인 인간차별로 귀결된다는 엄청난 역사철학이 담겨있다. 한국 남자 걸레질은 성매매방지법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어린 소녀들의 임신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책임 문제에 ‘한국남자 걸레론’이 철학적으로 딱 맞아떨어진다는 이 기막힌 발상은 인간의 양심을 헤집어 놓았다.
남한 사회에도 이제 좌익이 제대로 탄생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