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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의와 여성억압의 이면, '대한민국은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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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태
기사입력 2006-07-12


지난해 읽고서 뒤늦게 서평을 쓴다.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이 바로 '그 권인숙'인지 몰랐다.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조봉암, 문익환, 리영희, 전태일…. 이들의 이름을 마주칠 때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도서관 구석 먼지 쌓인 조봉암 평전을 펼칠 때나 몇 해 전 MBC 미디어비평에 리영희가 아픈 몸을 이끌고 출연했을 때, 차가운 이성은 이내 식어버리고 뜨거운 눈물을 가슴으로 삼킨다. 이는 고중세사를 공부하면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자극이다. 그러한 묵직한 이름 중에 권인숙도 있었다.
 
'그 권인숙'은 바로 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인숙이다. 여성학을 전공하여 뒤늦은 유학을 다녀오고서 명지대 교수로 부임했고 그녀가 그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박사논문이 담겨진 결과물이 이번 저서였다.
 
독서를 할 때 아까우면서도 순식간에 책장을 넘겨가며 읽을 때의 모순된 마음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사실 책을 읽기 전만하더라도 현대사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권인숙의 뜨거운 텍스트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박사논문을 토대로 씌어져서인지 시종일관 차분하고 차가운 이성에 기대어 분석을 시도하였다. 한편으론 독자로서의 욕심에 아쉬움이 있지만 '그 권인숙'의 아픔이 치유되었다는 안심과 그녀에게서 이러한 텍스트를 맛볼 수 있도록 해준 어딘가에 있다면 그 신에게 감사한다.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여성억압의 고리를 밝힌 권인숙 교수의 역저 <대한민국은 군대다> 표지     ⓒ 청년사, 2005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범주로 구분하여 읽었다. 하나는 80년대 학생운동권 내부에 있었던 군사주의적인 면에 대한 분석과 또 하나는 군대 내의 성폭행과 관련한 군사주의 분석이다. 80년대 당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군부정권에 대항한 학생운동권이 가부장적, 군사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준 모순에 대한 당시 운동권 여성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한 분석은 기존의 학생운동 관련 논문이 90년대 드문드문 있었던 현실에 비춰서 단비와도 같다.
 
군대 내 성폭행에 대한 분석 또한 정희진 외의 여성학자의 기존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도 구하기 힘든 관련 논문을 찾는 노력과 부족한 부분은 병사 출신 인터뷰를 적극 참조하여서 군내 성폭행이 사회에서도 연동성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노력한 점이 차별화된 인상 깊은 글이다. 
 
"군대에서 계급적 우열 관계에 의해서 빚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피해와 가해의 경험은 일반 사회에서 약자를 주로 구성하는 여성에게 행사될 가능성이 크다. (중략) 이렇게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때 권력 행사나 통제의 욕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훈련받는 남성들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성 문화와 남성 우위적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빈번히, 일상 문화로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280쪽)
 
현재 준비중인 논문의 참고문헌으로 권인숙의 텍스트를 다시 읽다가 군복무시절 생활이 생각난다. 간부나 고참 병사가 그의 어머니나 귀여운 자식들 앞에서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지만 병사들과 작업을 할 때나 일과, 훈련 중에 여성의 생식기를 마치 그 병사의 이름으로 불렀던 기억. '폭언 욕설 등 일체의 언어폭력을 금한다'고 점오 시간마다 외치지만 여성의 생식기를 병사의 남성성에 모욕을 주는 레테르로 사용하는 그 일상적 행태가 사회에서 여성을 비롯한 타자에 대한 차별과 성폭행 건수를 늘린다는 권인숙의 분석에 적극 동감한다.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서 학교 체벌을 주제로 가수 신해철이 패널로 나왔는데 주장의 핵심은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가정폭력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 군대에서 파생된 군사주의 고리를 하나 더하고자 한다. 이 연결고리에 대해서 권인숙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국과 같이 식민지 경험이 있고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큰 나라에서의 평화 유지 노력은 국가주의적 논리를 강화시켜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성별화, 남성적 가부장적 지배력의 강화, 여성적 역할의 낮은 가치 평가 혹은 비가시화를 낳는다. 즉 국가 중심의 평화는 군사주의적 질서를 강화시켜 나가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또 다른 형태의 여성억압 논리로서 한 사회나 국제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21쪽)
 
지난해 월간 <인물과사상> 12월호에서 지승호와의 인터뷰 말미에 권인숙은 "예전에는 명분과 사회적 대의 앞에 모든 걸 희생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사회변화에 대해선 저의 현재의 상태와 수준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아니 할 수 있는 데까지도 아니고 '조금만'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며 "현재로선 행복해질 수 있는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가슴 아픈 이름으로 남을 뻔하다가 이렇게 국가주의 담론에 매몰된 한국사회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성과물을 내놓고, 무엇보다 본인이 행복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기자 또한 행복함을 느꼈다. 그녀의 행복이 오래오래 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그녀의 책을 통해서 이 사회구조에 박혀있는 국가주의, 가부장적 습속, 군사주의가 뿌리 뽑혀 더 많은 여성들도 행복해졌음 바람이다. 그간 암울하기만 했던 현대사 공부에서 새로운 자극이 불러왔다.
 
spes agit mentem! 희망은 정신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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