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월19일자 아침논단에 등장한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의 글은 황당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이런 역사의식에서 무슨 역사를 공부했으며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글 ‘책임있는 유권자의 자격’은 이렇게 서두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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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월 19일 아침논단 ©조선일보 |
“불법 자금으로 줄줄이 구속되는 정치인들은 우리를 분노케 하고, 번번이 능력보다는 오기(傲氣)가 더 많음을 드러내는 대통령의 언행은 우리를 절망으로 내몰지만, 한편으로 그런 사람들을 그 자리에 세운 유권자들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게 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 바로 이런 경우다.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어쩌면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중들이 오랜 세월 피를 흘리며 쟁취한 정치적 권리를 우리는 한꺼번에 너무 쉽게 얻었고, 그 결과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경솔하게 그 권리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유권자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원칙적으로 옳다.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데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서만 지목해서 비판을 하면서 불법자금으로 구속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점이다. 그러면 더 많은 유권자들이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차떼기를 하고도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들은 그 엄청난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두 번째 문단은 아주 심각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적 권리를 한꺼번에 너무 쉽게 얻었고, 경솔하게 사용했는가? 이것은 국민을 바보로 만든 홍사덕의 망언과 일맥상통하는 인식이다. 홍사덕이야 보수적인 지역구 표를 의식한 망발이라고 하지만, 서양사를 전공한 학자가 이렇게 써도 되는가? 서양사를 이렇게 기계적으로 우리 역사에 대입하라고 배웠나?
일제의 식민지배와 이승만 독재, 그리고 박정희 이후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수많은 애국지사와 민주인사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며 싸울 때 박지향은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이런 망발을 내뱉는가? 박지향의 황당한 망발은 계속 이어진다.
“자유주의에서 참정권을 유산자에게 한정한 이유는 재산이 있어야 사회의 안녕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며, 재산이 있어야 강자(强者)로부터의 침해 없이 진정 독립된 개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서울대 학생들이 이런 강의를 듣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당시의 자유주의란 부르주아지를 대변해주는 사상이다. 박지향이 지칭한 유산자에게 ‘사회의 안녕에 진정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비하된 무산자는 착취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참정권을 인정할 정도의 동일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공연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영국을 들먹이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꼴이 우습다. 박지향의 엽기적인 망발은 계속된다.
“문제는 이 젊은이들에게 어김없이 투표권이 부여되고, 그들은 책임있는 공적(公的) 역할의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중략)
그러나 참정권은 그 사회에 속한다고 해서, 그리고 일정한 나이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냥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무슨 얘긴가?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젊은층”에게는 투표권을 제약하자는 얘기다. 그러면 연령 제한을 몇 살로 해야 할까? 박지향은 아마 40세 이상의 부유층에게만 투표권을 주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차떼기당 후보가 확실하게 당선될 것이고, ‘불법 자금으로 줄줄이 구속되는 정치인들’로 분노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르고 지내면 화낼 일도 분노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향은 이 글에서 “역사적 이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글들이 우리 학계에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