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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에 맞선 삼별초는 왜 바다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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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현
기사입력 2021-07-23

한민족의 역사중 삼별초만큼 장엄하면서 동시에 묻혀진 역사가 있을까?

 

이순신, 강감찬, 왕건, 연개소문 ,광개토대왕 주몽 등 위로 올라 갈수록 왕조와 영웅 중심의 역사가 각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삼별초는 달랐다.

 

물론 난을 일으킨 중심은 무인이었지만 호응하는 세력은 천민들이 많았다. 당시 서남해안과 도서지방에 거주하던 향소부곡민들이 열렬히 지지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삼별초의 핵심인 김통정도 백제 유민인 양수척의 후손으로 나온다. 그와 함께 후반기 삼별초를 주도하며 김통정과 서로 가슴에 담고 사랑한 백련사의 주승 혜성도 역시 출생이 불분명한 비구니였다.

 

고려사에서 삼별초를 반역 세력으로 규정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고려의 건국기조가 고구려 고토 수복이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북방을 꾸준히 개쳑했고, 북중국을 지배했던 거란, 여진 등의 대거 침략도 막아냈다 이런 고려무사의 기개는 고종때까지 이어져, 세계 대제국을 이루어 가던 몽골도 막아 냈으며, 그 선봉에 항시 삼별초가 있었다.

 

특히 몽골 기병대는 강화해협에서 삼별초의 수군앞에 번번히 무릎을 꿇고, 분풀이로 내지를 약탈하는 가운데 백성들의 집요한 항거에 수 차례 패주해야만 했다.

 

그런데 고종의 아들 원종이 친몽을 결심하면서 고려의 건국기조를 내팽겨쳤던 것이다.

 

이에 반발한 2만여 삼별초 일행이 천여척의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이들의 남천南遷은 세계 제국 원나라와 고려 건국기조를 배신한 원종에 대한 항거였으며, 인간의 존엄한 자기 결정권에 대한 확보 의지였다

 

▲ 한민족의 묻혀진 역사를 재발굴한 이동연 작가의 [삼별초]     © 도서출판 창해

 

삼별초는 신분의 굴레를 거부하며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이는 일극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삶은 물론 죽음의 방식까지 스스로 선택할 주제척 자유를 갈구했으며 그렇게 살다가 갔다.

 

특히 서남해상에서 극한의 자유와 절망감속에 전개된 대미의 3년은 차라리 어둔 밤일수록 더 빛나는 하늘의 별처럼 서정적이었다.

 

저자인 이동연 작가는 우리 역사와 세계적 명작을 넘나드는 통섭의 인문학 전문가이다. 명작이라 불릴 만한 인류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그림, 문학, 음악 등의 예술작품을 빌려 우리 역사를 살펴보는 교양 역사 서적을 내놓은 이후 우리 역사에서 묻혀진 삼별초를 발굴했다. (도서출판 창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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