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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본식 한자혼용 막으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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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1-07-12

1968년 정부가 1970년부터 한글전용을 힘차게 실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이 일을 반가워하면서 정부를 도와주려고 한글단체와 애국문화단체들이 함께 모여 196812'한글전용국민실천회(회장 주요한)'를 만들었다. 그러니 1969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회장 이희승)가 나와서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것을 가로막고 나섰다. 정부 안에서도 김종필 국무총리가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반대하고 신문이 한자 편을 들었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1972년에 한글 새소식이란 한글운동 소식지를 만들고, 1972년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회장 이대로)가 태어나 대학생 후배들을 이끌고 함께 한글학회를 도와 한글전용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때 한글전용국민실천회를 만들려고 나선 단체는 한글학회(회장 최현배) 민족문화협회 회장( 이은상),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박종화), 한글전용추진회 (회장 주요한) 배달문화연구원(원장 안호상),조선어학회사건모임 십일회 (대표 이 인), 한국자유교양추진회 (회장: 김윤경), 대한기독교서회(대표 조선출) 전국대학국어운동학생회(회장 이봉원), 새싹회(대표 윤석중) 한글기계화연구소(대표 최현배,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최현배), 한글쓰기회(대표 윤인구), 재건국민운동중안회(대표 김팔봉) 15개 단체 대표들이 창립 준비 위원회(위원장 이인)를 구성하고 5번이나 준비 회의를 했다.

 

▲ 1968년 12월 한글, 문학, 애국단체들은 한글전용 정책을 도우려고 ‘한글전용국민실천회’창립     © 리대로

 

 

이 단체 준비 위원회는 기독교계명협회, 방송윤리위원회, 대한교육연합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한기독교연합회, 한국문인협회, 대한기독교교육연합회, 한국여류문인협회, 대한성서공회, 한글타자연구회, 민족문화추진회 들을 참여시켜 26개 단체가 발기 단체가 되어 수백 명 회원을 모아 19681221, 서울 '경기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시민단체로 태어나 한글전용과 국어정화운동에 나섰다. 그 임원은 이사장 겸 회장: 주요한(대한 해운공사 사장, 대한일보사 회장),이사 겸 부회장: 이숙종(여성 단체 협의회 이사장, 성신여자사범대학 학장), 이사에 김동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최기철(한국동물학회장, 서울사대 이학부장), 이사 겸 사무총장: 이승화들이었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한글 전용 실천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여 대통령 국회의장 교육계 언론계 문화인 학생 및 일반 사회에 보내고, 이어서 '한글 전용의 과감한 실천과 조사 연구'를 다짐하는 결의문도 채택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에 지회도 창립하고 전국 순회강연회, 한글전용 여론조사, 한자간판 한글로 바꾸기, 일본말 조사와 버리기, 한글타자기대회, 국어운동 대학생회 돕기 들을 했으나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정치인, 지식들 저항이 심하고 신문이 한자혼용 편을 들며 한글운동소식은 외면했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자체 홍보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공병우 타자기 회사 도움을 받아 1972년에 한글새소식이란 홍보 소식지를 만들었다.

  

▲ 한글전용국민실천회가 한자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활동을 하는 자료 찍그림(왼쪽)과 1972년에 한글학회가 만든 한글운동 소식지 ‘한글새소식’(오른쪽) 창간 때 모습.     © 리대로

 

그런데 일본처럼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한자로 쓰자는 단체와 사람들은 돈이 많고 힘이 있는 사회 지배층들이었으나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자는 이들은 일제 때부터 한글운동을 하는 이들과 글을 쓰는 문학인들로서 한자단체와 견주어 힘이 약해서 밀렸다. 다만 한자단체는 1971년부터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밀어주고 한글단체 쪽은 대학생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1970년에 최현배 한글학회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어 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교수였던 허웅 교수가 한글학회 회장이 되었고 한자에 밀리는 한글 쪽을 돕자고 1972년 한글날에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출범하게 되었는데 내가 대표가 되었다. 그 때 국어운동대학회동문회 소식지 소리 3에 내가 쓴 대표 인사말을 소개한다.

 

이대로, 조용히 옷깃을 모아 동문 여러분에게 인사드립니다. 동문 여러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침묵했습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뿌린 씨앗을 거둬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이제 후배들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자고 만날 수 있는 동지들이 모여 동문회를 조직했는데 부족한 이 사람이 대표로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동문 여러분! 후배들이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흐뭇해하면서 많은 격려를 아끼지 맙시다. 졸업 뒤 침묵을 깨고 우리 다시 모여 지난날 아쉬움을 달래고 인생 보람과 나라사랑 보람을 얻을 수 있도록 다시 마음과 힘을 모아 봅시다.

궁금합니다. 오늘은 무슨 생각 속에 무었을 하고 지내셨나요?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즐거운 일, 어려운 일 함께 합시다. 궁금합니다. 오늘도 무슨 생각 속에 무었을 하고 지내셨습니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즐거운 일, 어려운 일 우리 함께 합시다.

이대로, 한낱 학장시절 추억으로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시 뜻을 함께 하고 힘을 뭉쳐봅시다. 이제 거두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여러분과 밝은 얼굴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 1972년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소식지 ‘소리’ 겉장과 그 발간 경위(속 내용은 등사기로 냄)     © 리대로

 

그래도 한자혼용 단체가 거세게 나오니 한글학회는 1974년 학회 안에 한글문화협회(위원장 주영하, 부위원장에 최재희, 정병욱, 전택부, 이규호, 이종은, 한창기)를 만들었다. 본래 한글학회는 일제 강점기부터 학술만 한 것이 아니라 애국 구국운동을 한 단체였는데 여러 단체가 모인 한글전용국민실천회는 몸이 무거워 활동 절차가 복잡하여 느리고 대표들이 연로해 돌아가신 분도 있어 신속하게 움직이자고 새 모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1975년에 그 부속으로 국어운동고등학생회(회장 강태성)를 만들고 오동춘 교사가 이끌었고 전주에서도 박병순 선생이 고등학생들의 가나다모임(회장 송귀현)‘을 잘 이끌었다. 그때 비록 일제 기성세대에 견주어 힘은 없지만 앞날에 이 나라 임자가 될 젊은이들이 나선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 군대를 전역하면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농촌운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한글이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에 짓밟혀서 태어나고 500 여 년 만에 어렵게 살아나려던 꿈이 물거품이 될까봐 국어운동학생회 후배들과 한글학회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리란 회지를 만들면서 한글이 살고 빛나야 우리나라와 겨레가 살고 빛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온 국민이 알아듣고 바로 끝날 줄 안 이 일이 50년 동안 많은 분들이 함께 애썼으나 아직도 한글이 푸대접받고 있어서 이 국어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다. 이제 미국말까지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구니 아무래도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 여러분들이 이 일을 더 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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