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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백성들이 이루어 낸 우리말 금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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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1-03-10

 일본 강점기에 조선어학회가 우리 겨레와 겨레말을 살리고 빛내려고 한 큰일은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겨레말 말광을 만들고, 표준말과 외래어 표기법을 정한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겨레 말광을 만든 일은 가장 힘들고 오래 걸린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은 대한제국 때 주시경, 지석영 들이 우리말과 우리 글자를 살려서 쓰는 것이 자주독립국이 되는 첫 걸음임을 깨닫고 시작한 일들이었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 주시경이 제자인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 들과 함께 만들다가 마치지 못한 말모이(사전)를 1957년 한글학회가 마지막 6권을 냄으로 그 일을 시작한 지 50여 년 만에 끝냈다. 우리말과 우리 겨레 역사에 길이 빛날 매우 큰일이기에 좀 더 자세히 살피고 되새겨 본다.

 

▲ 1929년 이극로, 김두봉 들 108명이 참여한 조선어사전편찬회 만들기 취지문 머리글 일부.     © 리대로

 

한 겨레말이 제대로 쓰이고 빛나려면 그 말본이 정해지고 말광이 있어야했다. 저마다 제멋대로 말하고 글을 쓰면 교육과 출판이 혼란스럽기에 표준말도 정해야 했다. 그 일을 백성들이 시작하고 해낸 것이다. 그 일 가운데 맞춤법(1933)과 표준말(1936)과 외래어표기법(1941)은 먼저 정했고 말본도 최현배가 만들었으나 말광은 1942년 마지막으로 내려다가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서 말광을 만드는 사람과 그 도움이들을 옥에 가두고 조선어학회를 해산시키는 바람에 마치지 못했다. 1929년 이극로를 중심으로 김두봉, 신명균, 최현배, 정인보, 이윤재 들 108명이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고 13년 동안 애쓴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함흥 형무소에서 이윤재, 한징 두 분은 모진 고문과 추위에 돌아가셨다.

 

일제 때인 1929년 이 일을 시작할 때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회장은 재정을 도와주는 이우식이 맡았고 상무위원에 경리부 이중건, 편집부 이극로, 연구부 최현배, 조사부 신명균, 교양부 정인보, 출판부 이윤재가 맡고 위원에 김병규, 김상호, 김윤경, 김철두, 명도석 백낙준 윤병호 이만규 이순탁 이우식 이형재 이희승 조만식이 있었다.  편찬회 실무 간사에 이극로(간사장), 이중건, 신명균, 최현배, 이윤재가 맡았다. 후원자로 이우식, 김양수, 장현식,임혁규, 김종철, 김도연, 이인, 서민호, 신윤국, 안재홍 들이 있었다. 이들은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천석 군, 만석 군 부잣집 아들들이었기에 편하게 잘 살 수 있었지만 겨레 사랑 정신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제 나라 말글을 못살게 구는 돈 많은 재벌이나 권력자들과는 달랐다.

 

▲ 1931년 조선어편찬회 회장에 재정지원인 이우식, 실무 간사장에 이극로가 맡다.(한글학회)     © 리대로

 

일본제국 강점기에 조선말 말광 만들기는 한글학자뿐만 아니라 재정 후원자와 각계 전문 지식인들이 뜨거운 겨레사랑 정신을 가지고 참여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도왔다. 이 분들이 겨레말을 지키고 살리고 다듬은 일은 그 어떤 독립운동보다 뜨겁고 감동스런 독립운동이었고 건국 준비운동이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민족 지도자들이 뜨거운 겨레사랑 정신으로 출판 준비를 하고 1942년 조판에 들어갔을 때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말 말광을 만들던 실무자와 후원자 33명이 일제에 끌려가서 사전 만들기가 중단되고 조선어학회가 해산되었다. 참으로 불행하고 슬픈 일이었다.

 

▲ 학술, 종교, 문학, 들 각계 전문가들이 전문 용어를 맡아서 전문 지식은 바친 사람들 이름.     © 리대로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어 다시 사전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미국 군정 때에 미국 정부와 미국 록펠러재단이 도와주어서 1947년 ‘조선 말 큰 사전’ 1권이 나오고, 1949년에 2권이 나오고, 1950년 3권 출판 준비를 하다가 6.25 전쟁이 터져서 중단되고 학회 인사들도 이극로, 김병제, 유열, 안재홍, 이만규, 정열모 들이 북으로 간다. 이중화, 신영철은 행방불명이 된다. 그리고 1954년에 한글맞춤법을 무시하는 한글파동이 일어나 한글맞춤법에 따라 만들던 말광이 휴지가 될 판이 된다. 전쟁 때 최현배 유제한 들은 말광 원고를 독에 담아 집 마당에 묻어서 지키고 전쟁 뒤 다시 그 일을 한다. 제 2권부터는 나라가 남북 두 나라로 갈라져서 말광 이름이 “우리말 큰 사전”으로 바뀌어 나온다.

 

▲ 1945년 일제에 빼앗긴 원고를 찾아 일제 때에 군정청에 근무하는 김영세가 일제 때 조선인 관리들 월급을 떼어 모아두었던 국방헌금을 찾아서 희사해 사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 리대로

 

이렇게 우리 겨레말 말광 만들기는 일본 강점기부터 오랫동안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부 도움 없이 온 겨레가 힘을 모아서 제대로 된 우리말 말광을 만들었다. 조선시대까지 중국 사서삼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 교육이었으나 과학과 문화, 실업 들 신식 우리 교육을 하려면 꼭 우리 말광이 있어야 했기에 이 일을 애국자들이 한글학회에 모여 해낸 것이다. 이 일은 겨레다운 겨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위대한 일이다. 이 말광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애쓰고 도와주었으나 일제 앞잡이가 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이 분들을 고문해 두 분은 목숨까지 잃게 한  조선인도 있었단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만든 이 말광은 우리 겨레가 만든 우리말 금자탑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배들이 힘들게 지키고 살린 겨레말을 더욱 빛내고 선열들을 고마워하지 않고  오늘날 정부와 언론과 학자들이 짓밟고 있으니 슬프다. 거리에 영어간판이 자꾸 늘어나고, 회사나 상품 이름이 영문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부는 부처 이름에 ‘벤처’란 외국말을 넣고 “뉴딜정책, 메가시티, 콤팩트 시티”라고 떠들며 영어 바람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은 그 외국말들을 선전하고, 국민은 그게 좋고 잘하는 것으로 알고 따라서 외국말을 마구 섞어서 쓴다. 옛날에 중국과 한문을 섬기고 일본 한자말을 섬기던 못된 버릇이 미국말 섬기기로 바뀌는 것이다. 언제까지 강대국에 무시당하면서 그들에 굽실거리고 살 것인가? 제발 이러지 말자. 세계 으뜸가는 우리 글자, 한글로 빨리 우리 말꽃을 활짝 피워서 세계 으뜸겨레가 되어 어깨를 펴고 살자.

 

▲ 1957년 한글날에 정인승, 류제한 들 사전 편찬원과 직원들이 큰 사전 6권 마치고 찍은 사진.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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