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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라 글자로 제 나라 말 적는 나라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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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1-02-24

 우리 겨레는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수천 년 동안 중국 한자를 썼다. 그래서 한문으로 쓴 사서삼경 같은 중국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이 교육이었고, 그 지식을 가지고 과거 시험도 보고 나라 일꾼이 되었다. 그런데 한문은 우리말이 아니고 중국말을 한자로 적은 글이기 때문에 우리와 잘 맞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과 불편함을 없애려고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우리 글자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글자가 태어나고 500여 년 동안 제대로 쓰지 않았다. 그리고 1945년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때가 왔으나 중국 문화와 한문에 찌든 이들과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그 길을 가로막았다.

 

일제 강점기에 목숨까지 바치며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표준말을 정하고 우리말 말광을 만든 것이 그 꿈을 이룰 밑바탕이고 밑거름이었다. 조선어학회는 해방되자마자 1945년 9월 장지영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자 폐지 실행위원회'를 꾸리고 위원 30여 명이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나라를 만들려고 나섰다. 그리고 바로 미국 군정청 편수국에 최현배와 장지영이 들어가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고 그 교과서로 교육하게 했다. 또한 조선어학회는 한글문화보급회를 만들고 한글로 교육할 수 있는 국어 선생을 양성하고 지방을 돌며 한글 강습회도 열었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문서라도 한글로 쓰자는 한글전용법도 만들었으나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이들이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으로서 지배층이 되어 반대했다.

 

▲ 1948년 한글전용법을 만들고 공포했으나 중앙정부부터 잘 지키지 않아 한글학회는 그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운동을 했다. [한글학회 100년사 621쪽 한글전용법 개정운동 내용]     © 리대로

  

그래서 조선어학회는 끈질기게 정부에 건의하고 언론에 호소했다. 사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때 만든 한글전용법은 1894년 조선 고종 때 공문서는 한글로 적는다는 칙령 1호 공문식을 되살린 것인데 그 법을 만들 때에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있었고, 법이 통과 된 뒤에도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적는 말글살이에 길든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한글전용법을 잘 지키지 않았고, 학교 교과서를 한글로 만드는 것을 반대했으며 신문은 일본 신문처럼 한자혼용이었다.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과 중국 유교와 한문을 섬기는 이들은 한글 전용이 싫었다. 그러나 우리 글자로 우리말을 적는 말글살이가 우리에겐 더 좋고 꼭 그 길로 가야하는데 1949년 5월 각의에서까지 강효석 내무부장관과 총무처는 ”한글전용법을 버리자“라고도 했다. 이러니 조선어학회는 1949년에 ’한글문화보급회‘를 ’한글전용촉진회‘로 바꾸고 한글전용 촉구 강연회와 강습회를 열었다.

 

이 모임은 ”위원장:최현배, 위원장:정인승·이희승, 총무부장:정태진, ,사업부장:김진억 조사연구부장:유열, 보급부장:옥치정, 감사:안창환, 위원:오천석·주기용 외 40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 자주문화 발전을 방해하는 한문을 철폐하고 세계에 으뜸가는 한글을 전용하여 그 편리함을 3천만이 모두 몸소 느끼게 하는 것은 문화민족으로 긍지를 갖게 하고 아울러 민족문화 향상을 위하여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일이다. 그래서 해방 뒤 한글이 되살아나고 민중들이 한글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5년이 지난 오늘 식고 있다.”며 “ 국어교육과 한글문화 향상·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한글의 보급 및 전용국어 정화에 관한 실천운동, 한글지도를 위한 강연회와 강습회 개최, 기관지 및 출판물의 간행, 그밖에 본 회의 목적을 이룸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한글전용법을 지키고 국민은 한글을 사랑하자고 호소한 한글학회 성명서. 1956.10.28.     © 리대로

 

 

이렇게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지식인들이 저항하니 한글학회는 계속 정부에 한글전용법을 지킬 것을 건의하고 신문도 한글로 만들도록 한글전용법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니 1956년 한글날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신문과 잡지가 순 한글로 찍혀 나와야 한다.“는 한글전용을 강조하는 담화를 발표한다. 대통령의 이 말이 옳다. 한글은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고 민주 국민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본이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10월 28일 대통령 담화를 뒷받침하는 한글전용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에 건의문을 보내니 그해 12월에 정부는 한글전용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글전용 적극 촉진에 관한 건“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실천 요강을 발표했다.

 

▲ 1957년 12월 6일에 국무회의가 의결하고 발표한 [한글전용 촉진에 관한 건] 내용이다.     © 리대로

 

위에서 보는 것처럼 한글전용법을 개정하고 시행령을 만들 때까지 한글전용을 적극 추진한다면서 ”문교부장관은 한글전용법을 개정하고 시행령을 개정한다. 거리 간판과 표지를 한글로 한다. 정부 계시, 고시, 공고문은 한글로 한다. 각종 인쇄물은 한글을 전용한다. 1958년 1월 1일부터 정기 간행물은 한글을 전용한다. 혼동하기 쉬운 고유명사, 학술 용어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도록 한다. “ 내용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일제 지식인들이 국회와 정부 안에서 드세게 반대했으나 한글학회가 끈질기게 한글을 살리려고 애쓰고 한글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리승만 대통령이 있었기에 이런 결의도 나왔다. 이런 노력이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피고 경제를 발전하게 만들어 외국인들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 말까지 나오는 밑거름이 되었다.

 

▲ 1960년대까지 거리에 한자간판(오른쪽)을 한글로 바꾸자고 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 영어간판(왼쪽)이 점점 늘어나서 문제다. 한자로 ’大特賣‘라고 쓰던 것이 영문 ’SALE‘로 바뀌었다.     © 리대로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중국 한문과 문화를 섬기던 언어사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아서 대한민국을 세우고 60년이 지날 때까지 한글전용법이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이 법을 어기면 처벌한다는 조항도 넣지 못하고 한글단체 요구대로 법을 개정하고 시행령을 만들지 못해서 신문과 잡지 같은 정기 간행물은 한자 혼용이었다. 그러나 한글운동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2005년 국어기본법을 제정하게 했으나 그 법도 한자파들이 반대해서 위반하면 처벌한다는 조항도 넣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거리에는 한자 간판은 사라졌으나 영어간판이 늘어나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들까지 나오는 판이다. 참으로 우리 말글 독립은 어렵고 계속 가시밭길이다. 아무래도 우리 핏속에는 사대주의 식민지근성이 흐르고 있는 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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