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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 나는 우리말 지킴이요! 불쌈꾼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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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1-02-16

2월 15일, 어제 불쌈꾼(혁명가) 백기완 선생이 숨을 거두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옳지 못한 것을 보면 가만히 있지 않고 바로잡으려고 나서고, 어려움을 겪는 민중들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맨 앞에 나서서 싸우고, 생각한 일을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민중 지킴이였다. 그가 나서면 새뜸(뉴스)이 되어 신문과 방송에 나온다.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운동에 앞장선 백기완 선생은 한마디로 민주투사요 통일 운동꾼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 하나 “우리 겨레말 지킴이”이었음을 모르는 이가 많다. 우리 말글 독립운동을 하는 나로서는 백기완 선생이 고맙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백기완 선생이 이 땅을 떠나심을 슬퍼하면서 이제 살아있는 이들이 백 선생이 못 이룬 꿈, 민족 통일과 자주독립을 이루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모두 불태우고 뜨겁게 산 백기완 선생 추모 물결이 거세다     © 리대로


내가 백기완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조선일보’가 한자는 국제 글자라면서 한자나라로 만들려고 날뛰던 27년 전인 1994년 2월이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서 ‘스승의 날’에 일본 식민지 때 선생도 아니고 그 선생 후손을 청와대에 불러들이면서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는 자들과 함께 한자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서고 언론이 그 편을 들어서 한글이 바람 앞의 촛불 꼴이었던 때였다. 그 언론 가운데 조선일보가 그 앞잡이로서 신문 1면에 날마다 ”한자를 배우자“는 한자타령을 하고 있어 한글단체는 이 못된 짓을 어떻게 잠재울까 고심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선배들이 일본 강점기에도 목숨까지 바치며 지키고 살린 한글인데 일본 앞잡이들에게 짓밟혀 죽을 판이었다. 한글을 짓밟는 이들이 친일 기업과 조선일보, 친일 정치인 김종필, 이희승 들 경성제대 출신 친일파들이 주축이었다.

 

▲ 조선일보가 ”한자를 배웁시다.“연재(오른쪽)하니 노조에서 그 잘못을 따지고 반발(왼쪽) 했다.     © 리대로

 

그 때 정부는 미국 군정 때부터 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고, 얼빠진 한자파 국회의원들이 한글전용법 폐지 법안까지 발의하고, 정치, 경제, 학술단체와 언론이 함께 한글을 짓밟고 있었다. 나는 그 때에 한글단체 대책 회의에서 방어만 하지 말고 먼저 공격하고 세차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14대 국회 초에 국회의원들 한글이름패를 만들어 주자고 해서 그렇게 했고, 우리나라 으뜸 한문학자이면서도 한글전용을 찬성하는 임창순 선생님을 찾아가 뵙고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면 좋을 지 상의하기도 했다. 그 때 한글단체 연합회인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회장에 안호상, 부회장에 전택부, 그리고 한갑수, 공병우 박사 들 원로와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들 한글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한글운동모임이었다.

 

나는 이 모임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서 원로 어른들을 모시고 가장 어린 젊은이로서 한글운동을 했는데 그 때 조선일보 대책 회의에서 조선일보 앞에서 시위도 하고 김동길 교수와 백기완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규탄 강연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김동길 교수를 모시는 것은 합의가 되었는데 백기완 선생은 그 분이 우리 일에 나서겠느냐면서 꺼려했다. 그 때 국어운동고등학생회 지도교사인 오동춘 박사가 내 의견에 찬성하고 한글학회 허웅 회장이 “젊은이 의견을 들어줍시다.”라고 말하니 안호상 회장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대로 추진하자고 결의해버렸다. 허웅 한글학회 회장은 내가 대학생 때 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교수였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믿고 밀어주셨다.

 

그 때에 조선일보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미루고 강연회는 시행하기로 해서 강사 모시는 일은 내가 맡았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국어 선생인 국어운동대학생회 김두루한 후배와 함께 백기완 선생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백기완 선생을 만난 일은 없으나 후배들로부터 대학생 모임에서 미국말을 쓰지 말고 우리말을 사랑하라고 강조하고, ‘써클’이라는 말을 ‘동아리’로, ‘신입생’이라는 말을 ‘새내기’라고 하자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우리 부탁을 들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한글단체에서 찾아오다니 뜻밖이라면서 자신은 학술강연회와는 거리가 멀고 못된 자들을 패주는 싸움꾼이고 쌍 도끼라면서 꺼려했다. 그런데 내가 한겨레신문에 가끔 투고한 글을 읽고 내 이름이 특이해서 나를 알고 계셨고 속으로 당신이 하고 싶은 우리말 독립운동을 내가 하는 것을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 동숭동 학술재단 강당에서 조선일보 규탄 강연회 알림 글(오른쪽)과 백기완 김동길님들 강연을 듣고 있는 글쓴 이 이대로(왼쪽에서 두 번째 어깨 띠 두른 이)이고 그 앞이 강사 이진우님.     © 리대로

 

그래서 한글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선생님을 모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조선일보가 못된 짓을 해서 혼내주시면 좋겠다고 간청하니 “박정희가 남산에 ‘터널’을 뚫겠다고 해서 ‘맞뚜레’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왜 터널이라는 미국말을 쓰느냐고 청와대에 욕을 했더니 나를 남산 정보부에 불러다가 죽도록 두들겨 팼다. 또 ‘판자촌’이라는 말을 ‘달동네’라고 한다고 빨갱이라고도 했다.”면서 먹물들이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을 마구 쓰는 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내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정부가 괘씸해서 노재봉 국무총리를 한글전용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이야기와 공병우박사와 함께 한글기계화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니 공병우 박사가 통일운동을 잘 하라고 당신을 도와주었는데 요즘은 뵐 수 없다면서 강연회 연사를 승낙 했다.

 

그날 강연회는 백기완님 덕분에 뜨거운 열기 속에 마쳤고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부터 더 연재하려던 걸 멈추었다. 만약에 조선일보가 계속 그 짓을 하면 백기완 선생과 함께 거리투쟁을 할 생각이었는데 조선일보가 판을 크게 벌리지 않으려고 했던 거 같다. 일찍부터 백기완 선생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임을 깨닫고 있었는데 다른 운동권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그 일을 하는 나를 만나니 반가워하면서 1년에 한번이라도 만나자고 하셨다. 그리고 가끔 찾아 가 뵙고 여러 의논을 했는데 어느 해인가 운동권 투사들 송년회에 백 선생이 오라고 해서 가니 내로라하는 많은 분들에게 “오늘 귀한 손님이 왔다.”면서 나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던데 백 선생은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놔두고 외국말을 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주셨다. 언젠가 학생운동을 한 내 처조카 혼인식에 갔는데 백 선생이 주례였다. 그런데 주례사가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이 아니고 외국말 쓰지 말고 우리말을 사랑하라면서 주체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다. 그 예식에 그 분이 주례를 서는 줄도 몰랐고, 내가 그 식장에 있는 줄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주례사에서까지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리는 백 선생을 보면서 놀라고 감동했다. 그뿐 아니라 “뉴스는 새뜸, 혁명가는 불쌈꾼” 등 우리말로 바꾸어 쓰고 그런 책도 냈다.

 

우리말을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만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2002년에 백기완 선생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아서 발표한 일이 있는데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백기완님이 “내 일생에 처음 상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걸 들은 일이 있다. 나는 그날 백 선생이 “나요? 나는 우리 겨레말 지킴이요!”라고 외치는 것으로 들렸고 다른 이들로부터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느꼈다. 그래서 나 혼자 운전을 하면서 큰 소리로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말 으뜸 지킴이입니다!”라고 외치고 기뻐한 일이 있었다. 사실 이 모임에서는 돈이 없어서 우리말 지킴이로 뽑아도 상장이나 상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겨레이름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뻐하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백기완 선생님은 영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 일이 우리 겨레가 살고 통일을 하는 데 절실하고 중대한 일임을 알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이런 백기완 선생님이 계셔서 우리말과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든든하고 힘이 나고 의지가 되었다. 이제 선생님이 이 땅을 떠나셨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 뜨거운 삶과 보여주신 겨레사랑 정신을 이어서 남북통일을 이루고 겨레말과 겨레독립을 해야겠다. 초등학교만 나오셨지만 일류대학 총장이나 대통령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실천하신 백기완 선생님! 우리말 으뜸 지킴이 백기완 선생님! 존경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소서! 못 다하신 선생님 뜻과 꿈을 제가 이루겠습니다!”

 

▲ 1994년 조선일보 규탄 강연회 날 대학로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호소문(오른쪽)과 강연회를 마치고 내가 읽은 조선일보와 강력하게 투쟁할 것임을 밝힌 결의문(왼쪽).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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