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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정 때 우리 말글 살리고 빛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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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0-09-12

1945815일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항복을 함으로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 땅인 한곶이(한반도) 북위 38도 선 남쪽은 자본주의 정치 체제인 미국이 점령하고 북쪽은 공산주의 정치 체제인 소련이 점령한다. 그래서 남북으로 나뉘어 두 나라가 된다. 그러나 겨레 말글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 본래 우리는 같은 말을 하는 한 겨레였으며 양쪽 모두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고 가꾼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남북에서 국어정책을 다루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제 북쪽 일은 내가 잘 모르기에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미국 군정 때에 남쪽에서 우리 한말글을 살려서 바르게 쓰려고 어떻게 애썼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남쪽에선 1945918일 조선어학회 최현배가 미국 군정청 학무국 편수과에 들어가 우리 말글로 배움 책을 만든다. 817일에 함흥감옥에서 나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어 정신이 없을 터인데 우리말을 찾고 살리는 일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조선어학회는 우리 말글로 교육할 선생을 양성하고,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 운동을 한다. 또한 그 해 98일에 일제에 빼앗겼던 말모이 원고를 서울역에서 찾아 1946년에 우리말 큰사전‘ 1권을 출판하고 1946년 한글날부터 법정공휴일(군정법률 제9호 근무규정)로 정하고 덕수궁에서 행사를 크게 했다. 조선어학회 장지영이 최현배와 함께 군정청 교과서 심의회에, 이극로가 초등교육심의회에 참여하고, 안재홍이 군정청 민정장관이 되어 함께 우리 말글 살리는 일을 돕는다.

 

▲ 왼쪽부터 1946년 덕수궁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마치고 찍은 조선어학회 간부들, 조선어학회가 낸 ’우리말 큰사전‘ 제 1권내용 첫 장, 조선어학회가 만든 군정청 교과서 ’한글첫걸음‘     © 리대로


그 때 조선어학회는 미국 군청청에 우리말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주면서 우리 말글로 교육을 하고 말글살이를 하게 하려고 숨 가쁘게 애썼다. 그런데 그 때에 그 일을 방해한 자들이 있었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고 고려대 총장이 된 현상윤은 언문이란 것이 아녀자들에게나 가르칠 것이지 당당한 남자들에게 가르쳐서 무식쟁이로 만들 것이냐"면서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자는 것과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버리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자는 것을 반대했다. 이때에 경성제국대학을 나와서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이숭녕과 마찬가지 경성제국대학을 나와 성균관대 대학원장을 지낸 조윤제도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와 교과서 만들기를 반대했다.

 

현상윤보다 먼저 일본 유학을 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박승빈이 주시경이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자는 것을 헐뜯고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을 반대했는데 그보다 뒤에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고려대총장을 한 현상윤이 박승빈의 한글반대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글을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앞잡이 양성소인 경성제국대학을 나온 이숭녕이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서, 조윤제가 성균관대 대학원장이 되었고 이들의 후배요 제자들이 오늘날까지 이 나라 정치, 언론, 학술계를 지배하고 계속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못하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인데 이 나라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으니 슬프고 괴롭고 답답하다.

 

▲ 왼쪽은 외솔 최현배가 일본 한자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찾아 교과서를 만들자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윤에게 보낸 공개장이 담긴 책과 최현배가 한자를 쓰지 말고 가로로 쓰자고 한 책.     © 리대로

 

최현배가 미국 군정청 편수과장에 되어 우리 교과서는 일제 때 교과서처럼 한자를 섞어서 글을 세로로 쓰지 말자고 주장했으나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은 일제 때처럼 한자혼용을 해야 좋다며 반대했다. 그런데 이 한자혼용은 1885년 고종 때에 일본이 이 나라를 먹으려고 설칠 때 일본인 이노우에 가꾸고로가 한성주보 고문으로 있으며 처음 한자혼용을 선보였는데 그 뒤 그는 조선을 침략하고 통치하게 편리하게 하려고 한자혼용을 조선에 퍼트렸다.“라고 털어놨다. 또 유길준이 1895년에 낸 서유견문이란 책이 최초 한자혼용 문학작품인데 그 책은 그의 스승인 일본인 후꾸자와 유키치가 쓴 서양사정을 본 뜬 책이고 그의 일본인 스승에게 부탁해서 일본에서 찍은 책이다.

 

그런데 이 후꾸자와 유키치는 오늘날 일본 돈 10,000엔에 그의 얼굴 사진이 들어갈 정도로 일본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일본식 한자혼용은 일본 혼이 담긴 일본 식민지 통치 잔재인데 광복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말을 못살게 판치고 있으니 우리겨레의 비극이고 재앙이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식 한자혼용이 판치는 것은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광복 뒤 한글은 잘 모르는데다가 한자혼용이 교수나 지식인으로 행세하기 좋아서 그랬고, 그 제자들이 계속 이 나라 학계와 언론계, 정치인이 되어 계속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가로막고 있다. 조선시대 한문이 지배계층 권익 도구였다면 일제 강점기엔 일본식 한자말을 한자로 쓰는 것이 그들의 특권 유지 도구였다. 그래도 광복 뒤 미국 군정 때 우리 토박이말과 한글을 살리려고 애쓴 분들이 있다.

 

횡단보도란 한자말을 건널목으로 쓰자는 언론인들, ’견골이란 한자말을 어깨뼈로 바꿔서 쓰자고 한 이기인 교수와 생물학자들, 음악용어를 쉼표, 도돌이표처럼 우리말로 만들어 쓴 음악가 금수현님, 한글 타자기를 발명해 미국 군정청에 부탁해 시제품을 만든 한글기계화 선구자 공병우님들이다. 그런 일 가운데 서울사대 생물학과 이기인 교수가 일본 한자말로 된 교육 용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어 새 사리갈말 말광이란 사전을 낸 일은 그 본보기요 아주 잘한 일이다. "새 사리갈말 말광"이란 사전 머리글에 평화적, 민주적처럼 일본 한자말에 ‘~이라는 말을 붙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를 찾아볼 수 없다. “자유적 민주문화란 말을 자유스러운 민주문화라고 했다. ‘생물학용어사전"이란 책 이름부터 '"새 사리갈말 말광"이라고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었다.

 

▲ 왼쪽부터 1948년에 이기인 교수가 낸 ’새 사리갈말 말광‘ 겉장과 속내, 2012년 한글학회로 찾아와서 이기인 교수가 낸 말광을 보여주던 이기인 교수 처남인 신광순 서울대 명예교수     © 리대로


이기인 교수는 5000여 개 생물학 용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었는데 사전말광으로, '수분''물끼', ’생물사리, ’동물옮사리, ’식물묻사리로 바꾸었다. 안타깝게 이 말광은 6.25 때 이기인 교수가 북으로 끌려가서 북에서 활동했기에 요즘까지 이 말광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2012년 내가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를 맡고 있을 때에 신광순 교수가 그 책을 가지고 한글학회에 와서 보여주는데 크지는 않지만 그 머리말과 내용이 감동스럽고 놀라운 것이었다. 마침 그 때 내가 한글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신광순 교수에게 그 책을 세상에 알리고 한글박물관에 기증하자고 제안했고 지금은 그 새 사리갈말 말광은 한글박물관에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머리말을 읽고 나와 같은 느낌과 감동을 받기 바라며 아래에 소개한다.

 

"새 사리갈말 말광" 머리말

 

세상은 바뀌는 것이니 이 나라도 5천년의 긴 동안에 별별 이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이제 민주주의 세상이 오기는 하였으나 자유스러운 민주문화를 일으켜 보자는 데 훼방을 놓고 있는 딴 나라의 한문글자와 일본말은 아직도 내좇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한문글자나 일본말을 가지고 우리말 우리글을 누르려는 것은 딴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것을 배워 쓰던 사람들인 것이니 시대를 모르고 저들만 편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는 동안에 우리를 누르고 잡아먹으려던 나라의 앞잡이 노릇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임자 있는 딴 나라의 글과 말은 독하고 무서운 것이다.

 

딴 나라의 글과 말은 제 나라의 글과 말이 꽤 터가 잡힌 다음이면 어느만큼 이용은 할지언정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는데 먼저 딴 나라의 그것을 배워야 되게 하여 제 나라의 민주문화를 일으키는데 큰 거리낌이 되게 하는 것은 안 되는 말이다.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붙들고 살리려는 것은 그 겨레가 살아보자는 첫걸음이며 가장 거룩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말과 글이 없어진 겨레는 사람의 넋까지 흩어져 말하고 마는 까닭이다. “

 

민주주의란 말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것은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가 되려면 모든 사람이 다 배워 제 힘으로 옳고 그른 것을 알고 말하게 되어야 한다. 쉬운 한글과 우리말로 글 소경을 빨리 없애 버릴수록 참다운 민주주의의 굳센 나라는 빨리 올 것이다.

 

이왕에 한문글자는 쓰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민족문화를 빨리 일으키는데 좋고 옳은 일이라면 한걸음 나아가 조족지혈보다 새 발의 피’, ‘아전인수보다 제 논에 물대기’, ‘생존경쟁보다 살기다툼’, ‘돌연변이보다 갑작다름’, ‘부유보다 하루살이’, ‘동물보다 옮사리따위 말이 훨씬 더 민주주의 나라의 말이 아니랴!

 

그러므로 적어도 모아 된 말(合成語)이 한문글자부터 알아야 그 뜻을 알게 된 말이면 우리말로 그 뜻을 풀어가는 것이 급하고 마땅한 일이매 이것을 깊이 생각도 아니 하고 경솔하게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은 뜻 있는 문화인(文化人)으로서는 못할 일이다.

 

사리갈(生物學)이 과연 우리가 다 배워야 할 모든 배월(科學)의 기초라면 갈말은 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 가장 좋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우리들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으로 사리갈 가르치는 모임(生物敎育會)”에서 한결같은 원칙 밑에서 사리갈말(生物學術語)을 골라 추렸다.

 

이 책은 그것은 엮어 내며 사리갈말 아닌 것도 조금 넣어 쓰는 분들은 편하도록 하였다. 이 책을 낼 지음에 갈말을 골라 추리기에 많은 힘을 쓰신 대학, 중학, 소학의 각 학교 생물 선생님 네와 그 밖에 좋은 가르침을 아끼지 아니하신 여러 조선어학자, 수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약학자, 심리학자, 농학자들과 원고 다듬기에 힘써준 공 정, 이원구 신광순제군 그리고 영양사 권혁찬님과 종업원 여러분께 고마운 말을 드린다.

 

4281(1948)년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사대 이기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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