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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론 : 양비론자 되지 않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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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순
기사입력 2019-10-02

대를 쪼개듯이 세상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건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요즘 같은 때는 아닌 듯하다. 평소 불편부당을 가장한 양비론을 무척 싫어한다고 자부하지만, ‘우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적의 편이라는 식의 단순 논거는 결코 수긍하기 힘들다.

  

공부를 잘 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부인이 SNS에 올린 글의 한 토막을 우연히 접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딸이 검찰 조사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유급 이야기에 모멸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항변에서 저 말이 나왔다. 딸이 수사를 받고 있고 자신도 기소된 현직 장관의 부인이 사회관계망에다 공개적으로 검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도 좋은지는 차치하더라도, 장관 부인께서 공부 지론을 일찌감치 터득했더라면 딸을 포함한 온가족이 받고 있는 곤욕만큼은 피할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공부는 못할 수도 있는 것임을 인정하였다면 장관 부부는 딸의 입시를 위해 그토록 무리수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조 장관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사법 개혁을 해야 한다는 대의를 중히 여기거나, 검찰의 태도에 실망하여 조 장관 지지로 돌아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리 흠결이 많더라도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 장관의 임명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끌렸다. 그러나 조 장관만이 검찰 개혁을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이 정말 맞을까. 조 장관이 사법 개혁의 최적임이라는 판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에게 보내는 두터운 신뢰감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다.

 

실상 그 신뢰라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갖추었다기보다는 신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은 터무니없을까. 문 대통령은 자신의 사람, 자신의 뜻을 충실히 펼칠 사람, 조 장관이 내보인 평소의 소신, 청와대 근무 당시의 호흡을 감안하여 그보다 맞춤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대학입시에 관한 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과 전혀 다른 행보가 드러나는 등 자신이 포함된 기득권 질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에게 검찰이라는 거대한 기득권을 청산하는 일을 맡겨놓아도 되는지 의구심을 가져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문 정부의 사람 기용에는 예상을 넘는 인사가 없다. 역사로부터 배웠으면 좋을 일이다. 각각 김대중 전 대통령과 수십 년 간 고락을 나눈 최측근과 대북 특사로 활약하여 햇볕정책의 기틀을 닦은 박지원 의원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본래 정치적 성향으로는 김 전 대통령과 맞지도 않았으며 그 반대 자리가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인물들을 기꺼이 발탁하여 역사에 남는 일을 해내도록 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역량이었으리라.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해 망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는 삼국지만 들춰 봐도 알 수 있다.

 

조 장관을 밀어내고 검찰이 정국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검찰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가로막고 나서는 버마재비라면 조 장관이 힘차게 채찍질을 하여 수레의 속도를 높이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새 조 장관은 순결한 피해자의 자리에 있고, 검찰은 무자비한 가해자가 되어있으며, 조 장관은 죄 없는 속죄양이요, 검찰은 기득권의 철옹성을 사수하는 자들로 둔갑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장관 딸의 입시 논란을 잊었다. 그들은 조 장관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개혁의 대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 개혁 못지않게 불공정한 세습과 대물림은 그것대로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병폐요 폐단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저울질 하는 것은 부질없다. 공정한 경쟁과 정의로움을 파탄내고 특권과 독점에 집착하는 자들은 검찰이나 강남부자나 마찬가지다. 그 강남부자 대열에 모 장관 부부가 있음을 왜 외면하는가. 자식을 학술논문 제1저자를 만들어줄 능력이나 대학 총장 인맥은 고사하고 친구로 지내는 대학교수가 한 명도 없는 엄마의 푸념이다.  

 

* 본문은 10월 2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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