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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양은솥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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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
기사입력 2018-06-22

엄마, 이게 아직 있네?”

 

양파를 찾으러 들어간 다용도실 선반 위에 낯익은 양은솥. 먼지가 앉는 걸 막으려는 목적인지 비닐로 싸여있다.

 

이거 30년도 넘은 거 아냐? 내가 8살 때 받은 거 그거 맞지?”

 

그 양은솥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 나이 때 아빠 회사에서 주최하는 표어쓰기 대회에서 1등을 하여 부상으로 받은 것이었다. 크기가 무려 지름 50센티미터, 깊이가 30센티미터는 족히 됨직한 거대한 솥이었다.

 

근데 이거 쓰긴 써? 그냥 버리지 무슨 업소용도 아니고 이렇게 큰 걸 쓸 데가 있긴 해? 자리만 차지하고.”

 

나는 이참에 버릴 요량으로 솥을 꺼내왔다.

 

, 그냥 둬. 왜 꺼내와? 다시 넣으려면 힘든데! (그러면서도 내 손에 들린 솥을 받아들으시며) 이거 받을 때만 해도 니 큰오빠 장가 갈 때 국수 삶으면 좋겠다고 그랬는데 세월이 바뀌어서 뷔페로 다 하니까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명절 때 생선 한 번 씩 찐 거 말고는 몇 번 쓰지도 않았어. 그런데 버리긴 왜 버리냐? 아직 새 건데.”

  

 

 

▲ 오래됐다고 다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 인터넷 이미지

 

새 거는 무슨. 엄마, 냄비 나이 30살이면 그냥 고물이야. 이거 그냥 버리지도 못할걸? 주민센터에 얘기해서 돈 주고 버려야 될껄? 이런 건 진짜 버리는 것도 일이야. 그러고 보면 뭐, 우리 집은 웬만하면 20~30년이네! 저 커피 잔은 큰오빠 어릴 때 산 거라니까 한 40년 된 거고, 스댕반찬통은 또 얼마나 된 거야? 저것도 10년 넘었지?”

 

“10년만 넘어? 20년 됐을 걸? 대방동 살 때 산 거니까 그쯤 되지.”

 

이제 그런 것 좀 제발 버려. 왜 자꾸 버릴 물건들을 쌓아놔? , 더 있다가 <진품명품> 나가게? 그러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먼저 나와, 쓰레기 집으로.”

 

 

그런 말 마라. 아직 다 멀쩡한데 왜 버리냐? 더구나 이 솥은 니가 상으로 받은 건데 어떻게 버리냐? 이거 받을 때 얼마나 신났었는데. 아빠 친구들이 너 똑똑하다고 칭찬을 하고. 너 기억날 걸?”

 

기억나지. 그래서 아빠가 1등 턱 술값으로 낸 돈이 저 솥 값보다 훨씬 많았지.”

 

요즘 애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사연이 있는 물건들은 함부로 못 버리겠더라. 그리고 그렇게 보관하고 있다 보면 쓸 일이 또 생겨. 버리고 나서 꼭 후회하잖아. ““, 그때 버리지 말 걸.”” 하고. 저번에 고무장갑도 네가 버리라고 해서 억지로 버렸더니만, ! 아쉽잖아.”

 

엄마가 얼마 전에 왼쪽 고무장갑이 구멍 났다며 왼쪽만 버리고 오른쪽 장갑은 서랍에 넣어두기에 내가 억지로 우겨서 버렸는데, 이번엔 오른쪽 장갑이 구멍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오른쪽 장갑이 있었으면 구멍 안 난 왼쪽 장갑이랑 같이 쓰면 새 장갑 안 써도 되는데 괜히 낭비했다고 그러는 것이다.

 

고무장갑이 얼마나 한다고? 내가 10개 사줄 게. 고물상 할 것도 아니고 솔직히 갈수록 집이 점점 구질구질해지고 있어.”

    

그럼, 나도 구질구질하냐? 오래됐다고 무조건 버릴 거면 엄마도 버리지 왜?”

 

 

▲ * 글쓴이 최수진은 창원에서 활동하는 에세이 작가입니다.     ©대자보

뭔 소리야, ?”

    

늙었다고 다 낡은 건 아니다. 설사 낡았다 해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그 나름대로 필요가 있는 거야. 오래 써서 손에 익은 것만큼 편한 것도 없다. 요즘은 유행이다 뭐다 해서 새 거도 갖다 버리고 또 사고 그러더니만 나는 그런 거 싫다. 더구나 이 솥은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는데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려지면 얼마나 서운하고 서글프냐. 자리 좀 차지하면 어때. 언젠가 쓸 일 있겠지. 또 쓸 일이 없으면 좀 어때. 그게 다 추억이고 세월인데. 그렇게 못마땅하면 엄마 죽고 나서 다 버려. 그럼 그땐 암말 안할 게.”

 

엄마는 오래된 물건들 이야기인지, 양은솥 이야기인지, 혹은 당신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며 내가 풀어헤친 비닐을 다시 여미는데, 차마 그만 하고 이제 버리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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