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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웅 김구인가 친일파의 아바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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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관
기사입력 2014-09-09

 

▲ 표지     © 매직하우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존경 받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생전 삶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힌 책이 나왔다. 

저자 김상구 씨가 두 권의 책으로 담은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 김구 청문회>(매직하우스, 2014년 8월)는 독립영웅 김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하게 한 책이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코자 북으로 갔으며, 그 후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게 피살당한 주인공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구 선생의 모습이다. 

하지만 김구의 북행과 그의 죽음 사이에는 약 1년 2개월의 공간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기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김구는 북행 몇 주일 전만해도 이승만의 분단 건국 노선을 전폭지지 했고, 환국 이후 임정봉대 반탁 반공 반소의 노선을 걸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내용을 왜곡하고 반탁을 빙자한 임정정통 봉대론은 결국 미소공위를 좌초시킴으로써 분단 건국노선을 결정적으로 도와줬다고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백범일지>에 묘사된 김구의 모습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면서 동학접주를 지낸 적이 없고, 수많은 한인독립지사들을 공금횡령범, 일제 밀정, 빨갱이 등으로 모함해 죽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위임통치론을 주장했던 이승만의 노선을 지키기 위해 박은식 부자 구타, 윤봉길 의사의 실질적인 기획자 춘산 이유필을 친일파로 몰았고, 임시정부의 외교노선을 비판하며 북경의 무력항쟁론을 폈던 박용만을 친일 주구로 모함했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김구는 친일파는 아니지만, 친일파 부일배들로 이루어진 한민당으로부터 수많은 자금을 받았고 그들과 결탁했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 쓴 것으로 알려진 <백범일지>를 윤문하고 첨삭한 자가 친일파 춘원 이광수였다는 사실도 기록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등장한 고종이 인천에 복역 중인 김창수(김구)를 전화로 사면한 시기가 1896년 10월인데, 이때는 아직 전화가 개통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울과 제물포(인천)간 전화개통일은 1898년 1월이었다는 것은 고종이 전화를 하고 싶어도 전화가 없어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고. 

1919년(기미년) 14인의 명의로 된 ‘대동단결의 선언’, 11인의 ‘2.8독립선언’, 33인의 ‘3.1독립선언’, 39인의 ‘대한독립선언서’ 등에 이승만, 조소앙, 안창호, 신채호, 김좌진 등의 인물은 등장하지만 김구는 등장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결국 이 기간 동안 백범은 독립운동과 관련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 강점 후 가장 치열했던 3.1운동 과정에서 주축세력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부하 안두희의 총에 맞아 사망한 김구 선생의 사망한 원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부하고 있다. 

김구의 우상화 작업을 주도 했던 측근 엄항섭을, 히틀러 우상화작업에 동원된 괴벨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엄항섭은 사후 남북 양쪽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흔치 않는 정치가 중 한명이기도 하다. 정부는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1990년 조국통일장이 추서됐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괴벨스가 있었다면 김구에겐 엄항섭이 있었다. 물론 김구를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구라는 인물이 대중에게 영웅화되는 과정은 히틀러의 예와 너무 닮았다. 그리고 김구 신화의 일등공신은 분명히 엄항섭이다.(중략) 엄항섭은 1930년 한국독립당, 1935년 한국국민당을 거쳐 해방이후 반탁운동, 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등의 활동을 할 동안 김구 곁을 벗어난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본문 중에서- 

엄항섭이 김구 우상화의 첫 번째 홍보 전략이 백범일지 상권 배포이고, 두 번째 홍보 전략은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후 사후 처리 과정이었다. 세 번째 홍보 전략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국무부에 발송한 문서 중 김구의 소개이고, 네 번째 홍보 전략은 1945년 해방이후의 일인데, 그중 1949년 7월 5일 김구 선생 영결식장에서 참석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엄항섭의 조사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평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르대학 교수는 “사실 유신시대 권력체계에서의 김구 아들 김신(교통부장관 등 역임)의 높은 위치와 김구에 대한 영웅화 작업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짐작해 왔다”며 “보수에게는 물론 진보의 상당부분에도 김구는 손 댈 수 없는 신화 그 자체이다”고 밝히고 있다. 

강정구 동국대 전사회학과 교수는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정통성이나 역사 평가는 일시적인 혼란 등이 있을 지라도 올바른 장기적 역사 행로를 위해 응당 허물어져야 한다”며 “ 여운형 선생이나 건준을 비롯해 정통성의 근원은 얼마든지 쌓여 있다, 단지 외세와 친일파 및 그 후예들의 폭압에 의해 지금까지 묻혀왔고, 왜곡과 사장을 강요당해 왔을 따름이다”고 밝혔다. 

저자 김상구는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며 회피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기독교 본질이자 근원을 비판하는 작업과 종교인의 소득납세운동 및 종교법 제정, 이승만에 대한 역사 바로보기 등의 운동 해왔다. 

저서로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 행적>, <다시 분노하라>, <미 제국주의 두 기둥, 전쟁과 기독교>, <예수 평전>,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 <범재 김규흥과 3.1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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