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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정치학, 모든 사회운동은 부분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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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태
기사입력 2006-05-07

요즘 한창 페미니즘 관련하여 가령 우에노 치즈코, 조한혜정 등 페미니스트들의 저서들을 읽다가 여성운동가로 활동한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
 
다양한 사회적 모순, 횡단의 정치로 돌파해야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 교양인, 2005년
정희진은 페미니즘이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내고 ‘횡단의 정치’를 지향할 것을 역설한다. 니라 유발데이비스로부터 빌려온 횡단의 정치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과 그 개인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구별하며, 대화의 과정을 정치적 목표로 삼는다. 초월적 보편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보편을 지향하며 … 움직이는 현실을 타고 넘나드는 것이다.”며 여성주의는 그 어느 정치학보다도 다른 사회적 차별에 매우 민감하며, 다양한 피억압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연대와 제휴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으로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 
 
모든 사회운동은 부분 운동이다
 
진보진영 내부의 그러니까 최근에 있었던 김규항이나 손석춘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의 충돌에 대해서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중산층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역겹다.”라는 정치적 신념을 밝혔다.”라면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의식적 태도와 여성이라는 피억압 집단을 자기 맘대로 재현하고픈 남성의 무의식적 욕망을 모두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정치의 시각에서 본다면, 좌파와 우파 모두 남성 중심적 정치 전선을 강하게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종류의 진보 남성과 극우 논객 조갑제의 차이는 없다.”고 비판한다.
 
얼마 전 본 기자가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에 대한 서평에 대해서 비난 섞인 댓글 반응이 생긴 것도 이러한 정희진의 인식에 공감하는 독자로 생각된다. 과거 혹은 아직도 있을   지 모르는 운동권 내부의 가부장적 구조로 인한 여성의 소외와 차별에 대한 인식이 정희진의 비판의 동일선상에 있다.
 
정희진은 여성운동을 하는 자신 또한 다른 타자에 대해서는 차별적 언어를 내뱉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몇 달 전 나는 한 인권단체에서 강의 도중, “시간 없으니, 화장실 가실 분은 각자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후, 어느 남성 지체 장애인이 내게 “선생님 말씀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저를 배제한 표현입니다.”라고 비판했다. 나는 곧바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고맙다”는 내 말은 다시 문제가 되었다.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알아야 할 장애 문제가 무궁무진한데, 이제 겨우 하나 안 거잖아요. 하나 알았다고 고맙다고 하는 것은, 아직 남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감사의 말은 헤어질 때나 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해요.”라는 말을 또 할 뻔했다.”며 다음과 같이 “모든 사회운동은 부분 운동이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각자의 처지(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연대이지, (남성중심의) 단결이나 통합이 아니다. 어떻게 전체 운동이 따로 있고, 부분 운동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전체와 부분을 나누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김규항의 주류 페미니즘 비판, 그 취지엔 공감한다
 
나는 김규항의 주류 페미니즘 비판이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그 동기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음과 같은 정희진이 성매매 관련 성적 급진 자유주의와 급진주의의 전통적인 서구의 대립과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인신매매, 여성의 가족부양, 소비 자본의 욕망, 입시 제도, 강력한 가족주의, 학연, 가족 내 성폭력, 전무하다시피 한 사회복지 등으로 인한 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의 계급차이가 성판매 여성의 ‘선택’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선배 여성운동에 대해 “내가 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매매는 한국의 ‘주류’ 여성주의 진영의 (이성애자로 서울과 인근 신도시에 사는 비장애인이며 중간층에 대학을 나온…) 여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감수성 - 정확히 말하면, 이는 인권 감수성, 정치의식이다. - 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는 지적이 김규항의 비판취지와 포개어지지 않은가.
 
저자가 재차 강조하듯이 주류 페미니즘 비판은 “만약 내가 탈 성매매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여성주의자인 나의 주장이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되거나, ‘당사자’, ‘민중 여성’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 것은,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절대화하려는 일부 여성주의자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에서, 나는 1980년대 중산층 출신 운동 진영의 ‘민중 판타지’를 떠올렸다.”는 정희진의 인식이 김규항과 동일선을 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계몽프로젝트의 핵심은 ‘계몽의 계몽’ 즉, 자신에 대한 반성을 가능케 하는 비판적 이성에 달렸다. 페미니즘 담론구성도 예외가 없다. 이러한 비판적 이성의 방식을 끊임없이 사유해야 고인 물로 썩지 않는다. ‘정희진의 여성학’은 ‘이성의 이성’, ‘계몽의 계몽’ 방식을 바탕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Fucking U.S.A> 담론
 
지난 월드컵 시즌에 대학가에서 유행한 운동가로 히트곡은 단연 Fucking U.S.A였다. 나또한 이 곡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들렸을 뿐 문제의식은 없었다. 정희진은 이 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 담론의 전제는 여성은 'fuck' 할 수 없다는 것이다. ‘fuck’의 주체는 남성이다. 한국 남성이 이 노래를 열창하는 것은, 그간 한미 관계에서 약자였기에 여성으로 간주되었던 자신의 성별화된 타자성을 극복하고 남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강간이든 섹스든 미국을 ‘fuck'하게 되면, 한국은 남성이 되고 미국은 여성이 된다. … 그런데 <Fucking U.S.A> 담론은 그 ‘보호’가 한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직접 보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국 남성이 미국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결국 남성은 한국 남성이나 미국 남성이나 모두 강간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만, 한국 여성이나 미국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 간 싸움의 대리 전쟁터로 제공된다. <Fucking U.S.A>의 논리는 바로 르완다, 구(舊) 유고, 동티모르 등 모든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의 면죄부였다.”
 
반미를 내걸은 진보진영의 운동이 페미니즘의 시선에서는 오류를 낳은 것이다. ‘모든 사회운동은 부분 운동이다.’는 명제의 활용은 그간 진보진영의 운동에 대한 이렇게 미시/거시적으로 광범위하게 마주한다. 즉, 페미니즘의 시선이 앞으로 진보진영에 대한 성찰에 기대되는 부분이다.
 
‘엄마누라줌마’의 조작된 이데올로기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자기 욕망으로 젖가슴을 드러낼 때 그녀는 필시 몸을 파는 여성이거나 ‘미친 년’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성스럽고 숭고하다. … 학술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한 남성 참가자로부터 “어떻게 아줌마가 (애를 안 보고) 이런 곳엘 다 왔느냐.”라는 ‘칭찬’을 들은 여러 번 들었다. 그 말은 “여자 주제에 어떻게 인권과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 왔느냐.”는 의미가 아니다. 그 대회에 참가한 미혼 여성들은 어느 누구도 공적 영역에 나올 수 있는 여성은 남성이 규정한 여성 이미지 - 젊고 예쁜,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 에 걸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 남성들이 논하는 아줌마/어머니의 존재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단한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픽션이며,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임의적인 이데올로기다.”
 
버스나 지하철에 아줌마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극성스럽다는 편견도 독자들은 다른 남성, 세대들은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 지 자신을 포함하여 관찰해보길 바란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단편영화 중에서 ‘엄마누라줌마’라 여성영화가 제목만 기억난다. 성스러움과 상스러움을 동시에 유포하고 있는 ‘엄마누라줌마’는 여성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장애인 등의 다른 타자에 대한 마주보기를 요청하고 있다.
 
오줌이 튀지 않으려면
 
집안에 여성이 한명 뿐인 어머니로 인해서 우리 집의 남성들은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 왜냐면 변기에 오줌이 튀지 않기 위해서다. 별 생각 없는 생리적 작용도 이러한데 담론에 대한 그 이면에 ‘오줌이 튀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통해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Fucking U.S.A> 담론처럼 솔직히 진보진영 내부의 폐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나치는 점이 있다. 이러한 맹점에 대해서 페미니즘은 유용한 시선을 제공해준다. 정희진의 본서는 한국사회 지형에 걸맞은 페미니즘의 입문서로 남성들은 물론이고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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