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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 한갑수 선생 ‘눈메 한글문화원’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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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4-07-04

2024년 6월 24일 가평군 설악면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 고향에서 서태원 가평군수, 최정용 가평군의회 의장, 임광현 경기도의회 의원, 이동철 설악면 면장, 김진희 미원초등학교 교장들 지역민들과 리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최용기 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들 한글운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눈메한갑수선생기념사업회(대표 오훈필)주최로 “눈메 한글문화원(원장 고상록)”을 열었다. 이 문화원은 오훈필 대표와 지역민들이 한갑수 선생의 한글사랑 정신과 그 실천 업적을 기리고 한글문화를 꽃피우려고 만든 사설 문화원인데 눈메 선생 유품과 저서들을 보여줄 전시관도 있다.

 

▲ 서태원 가평군수와 최정용 군의회 의장, 리대로 한글단체 대표와 한상찬 눈메 선생 아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훈필 대표(오른쪽 끝)와 고상록 원장(왼쪽 끝)이 축하 떡 썰기를 하고 있다.   © 리대로


눈메 한갑수 선생은 1913년 일제 강점기 가평군 설악면에서 태어나 그곳 미원초등학교를 나와 1929년 황해도 해주고보에 다닐 때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전국으로 번진 항일 학생시위를 해주에서 이끌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퇴학을 당했을 때에 다시 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다행히 전북 고창고보에서 받아주어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에서 교사인 한글학자 정인승 선생을 만나 한글 사랑꾼이 되었다. 그래서  광복 뒤 한글학회 이사로서 1945년부터 37년 동안 한국방송 라디오 “고운 말 바른 말” 프로를 맡아 한말글 교육 방송을 하면서 온 나라에 한글학자, 국민교육자로 이름을 날렸고 그 뒤 박정희 정부가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하게 해서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 큰 업적을 남겼다. 

 

▲ 눈메 한갑수 선생이 1929년 광주학생 만세시위 뒤 해주고보 학생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동료학생들과 함께 해주감옥에서 풀려났다는 1930년 2월 27일 조선일보 기사.  © 리대로


눈메 선생은 고창고보를 마친 뒤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학부를 마치고 도쿄 주오(中央)음악학교를 다녔으며 광복 뒤에는 서울대 음악대 교수로 있다가 중앙대에서 국어를 강의했다. 그리고 1950년 공군 소위로 임관해 6.25 전쟁에 참전했고 그 공로로 미국과 한국에서 무공훈장을 받고 1957년까지 공군 장교로 근무한 국가유공자다. 그리고 군 제대 뒤에 이기붕 국회의장과 곽상훈 의장 비서실장 비서실장을 잠깐 하고, 1963년 민주당 소속으로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으나 떨어졌다. 그 뒤 한글학회 이은상 이사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했다. 그리고 “바른말 고운말 사전, 국어대사전”을 냈고 많은 국내외 강연을 통해 한글운동을 한 공로들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표창장과 훈장을 받았다.

 

▲ 한글발전에 업적을 남긴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 때 받은 표창장(왼쪽)과 노태우 대통령 때 받은 훈장증(오를쪽) 사진.  © 리대로


한갑수 선생이 광복 뒤에 한국방송을 통해 37년 동안 한글 바로 쓰기 국민교육을 한 업적도 크지만 1968년 한글학회 이은상, 정인섭 이사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도록 한 것은 매우 큰 업적이다. 왜냐면 박정희, 김종필 군사혁명 정부는 광복 뒤부터 한글전용으로 만들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한자혼용으로 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이들이 살아나는 한글을 못살게 하고 일어나는 나라 기운을 억누르는 일이었기에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가 태어나 정부에 그 잘못을 건의하니 눈메 한갑수 선생은 노산 이은상 선생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학생들 말대로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하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그 뜻을 담아 한글현판을 달게 해 한글을 살리고 빛나도록 했다.

 

이 사실을 많은 국민이 모르고 있는데 그때 나는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정부에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를 일으키라고 외쳤던 한 사람이기에 그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잘 알고 있다. 만약에 그때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는 이들 주장대로 한자혼용 정책으로 갔으면 간신히 살아나던 한글이 죽게 되었을 것이고 오늘날처럼 한글이 널리 쓰이고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자주문화와 경제도 꽃필 수 없었을 것이다.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주최한 청주 강연에서 정인섭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학생들 건의를 듣고 한글전용정책을 펴기로 하면서 탑골공원 현판을 한글로 달았고 대통령 이름 서명도 한글로 적기로 했다”라고 증언했고, 1968년 한갑수 박사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기로 했다”는 증언 녹취록이 있다. 그리고 붓글씨를 잘 쓰는 한갑수님은 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에 한글한판을 걸게 했다.

 

1967년정인섭 선생 증언  https://youtu.be/WEt2XYka9Oo?si=ED9hcVWMHV9VxpMB

1968년 한갑수 선생 증언  https://youtu.be/WM2VXjqaLJE?si=kWV472I3e-xMfxoC

 

그런데 내가 모시고 함께 한글운동을 한 눈메 한갑수 선생은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 항일 만세 시위 때 해주에서 만세 시위를 주동해 일본 경찰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6.25 전쟁 때 공군 장교로 나라를 지킨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인데 박정희 정부에 한글을 살리고 빛내도록 설득하려고 가까이 했다고 독재에 부역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런데 가평 주민인 오훈필 선생이 그분 한글사랑 정신과 업적을 후손들에게 바로 알리고 한글문화를 꽃피우도록 하겠다고 한글학회로 나를 찾아왔을 때에 고맙고 반가워 그와 함께 서태원 가평군수도 만나 그 필요함과 중대함을 설득하고 그를 도와주었으나 정말 그 뜻이 이루어질까 걱정했다. 그런데 사설 기념관이지만 “눈메 한글문화원” 개원식을 보고 고맙고 기뻐 격려사를 하면서 주민들에게 큰 절을 했다.

 

▲ 2023년 서태원 가평군수를 만나 눈메 한갑수 선생 기념사업을 가평군에서 하면 좋겠다는 건의를 할 때 사진(왼쪽)과 1993년 한갑수 선생을 모시고 한글국회를 만드는 운동을 할 때 사진(오른쪽)으로 오른쪽부터 한갑수 선생, 리대로 대표, 이현복 교수, 원광호 국회의원.  © 리대로


1966년 대학생 때 한일회담 무효시위에 앞장을 서기도 한 나로서 그날 그렇게 고마워하고 기뻐한 것은 내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1967년 한갑수, 이은상 선생이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이 살아야 나라가 일어난다는 대학생들 건의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고 한글역사에 중대한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군사혁명을 한 김종필 총리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일본 식민지 세대이면서도 한글전용을 가로막으려고 한 것과 견주어 볼 때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 건의를 받아들여서 한글을 살리는 정책을 펴고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단 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아주 잘한 일임을 오늘날 깊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연산군 때처럼 한글을 짓밟는 쪽으로 갔다면 오늘날 발전된 한국도 한류도 없다.

 

▲ 1999년 김대중 정부 김종필 총리가 일본처럼 한자혼용하려는 정책을 펴서 그 반대시위를 하는 모습(왼쪽), 민주, 자주 상징인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단 것을 반대하는 모습(오른쪽)  © 리대로


그런데 그렇게 한글을 지키고 살린 이은상, 한갑수 선생을 독재에 부역한 사람으로 매도당하고 나도 대학생 때부터 한글을 빛내려고 일생을 바쳤는데 빨갱이라고 비난받고 전대당하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내가 1962년 예산농고에 다닐 때 고등학교 한인수 선배가 농촌새마을운동을 제창했고 그 선배로부터 감화를 받아 대학에 가서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한갑수 선생이 그의 종친인 한인수 선배의 새마을운동 주장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국가발전에 중대한 일이었음을 오늘날에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때 한갑수 선생이 정부가 한글정책을 펴고 새마을운동을 하게 한 일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게 한 밑거름이었고 아주 잘한 일이다. 한갑수 선생은 권력을 누리려고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겨레를 살리려고 그랬음을 나는 안다. 

 

그런데 제 겨레의 목숨과 같은 한글을 짓밟고 한자조기교육과 영어 조기교육이나 꾀하다가 얼빠진 나라를 만들어 한글로 일으킨 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은 민주지도자로 섬긴다. 그리고 한글을 살린 사람은 못된 사람이라 헐뜯고, 정부가 한글을 빛내어 나라를 일으키자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에 달았던 한글현판이 독재정치 상징이라고 떼고 중국 속국 상징인 한자현판을 복제해 달았다. 이런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며 자주독립국이 안 되는 까닭이고 잘못된 흐름이다. 잘못한 일은 비판을 받아야지만 잘한 일은 칭찬받아야 그 나라가 튼튼한 나라가 된다. 부디 한갑수 선생 고향의 가평 주민들이 이번에 문을 연 “눈메 한글문화원”이 한글을 더욱 빛내고 이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은 곳이 되고 계기가 되길 간절히 비손한다. 아울러 조그맣게 출범한 이 “눈메 한글문화원”이 더욱 커질 것이라 믿는다.

 

▲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 로비에 걸린 한갑수 선생 붓글씨 “민족의 얼”이 한갑수 선생이 우리 겨레의 얼을 살리고 빛내려고 애쓴 정신과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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