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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천리안 등 누리통신에서 꽃핀 한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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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기사입력 2023-11-22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500년 뒤 셈틀로 글을 쓰고 누리통신을 하는 때를 내다보고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셈틀과 딱 어울리는 글자다. 그래서 공병우 박사는 미국에서 셈틀로 글을 쓰는 길을 연구하고 세벌식 한글문서편집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88년 귀국하여 종로 옛 공안과 병원자리에 한글문화원을 차리고 셈틀로 한글을 쓰고 누리통신을 하는 세상을 이끌었다. 1990년대 초 하이텔, 천리안 들 피시통신회사가 생겼을 때 공병우 박사는 아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피시통신으로 한글사랑운동을 하셨다. 그때 나도 공병우 박사님이 셈틀로 글을 쓰고 누리통신 하는 길을 가르쳐주셔서 누리꾼들과 한글사랑운동을 함께 했다. 

 

그래서 나도 공병우 박사와 함께 누리꾼 1세대가 되었다. 공 박사는 미국에서 귀국하시자마자 1945년 해방 때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일제가 망한 소식을 방송한 문제안 선생과 나를 불러서 셈틀로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때 공병우 박사는 여든이 넘으셨고,  문제안 선생은 일흔이 다 되었는데 셈틀로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고 하시니 문 선생이 “저는 늙어서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공병우 박사는 “나도 하는데 젊은이가 왜 어려우냐!”시며 역정을 내셨다. 그때 40대인  나도 기계를 보면 겁나고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문제안 선생도 그런 마음으로 말한 것인데 공 박사가 셈틀과 한글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버럭 화를 내신 것이다. 

 

▲ 한글 셈틀을 만드신 공병우 박사님. 한글타자기의 기능을 진일보 시켰다.  © 리대로

 

그래서 문제안 선생은 공박사로부터 셈틀로 한글을 적는 길을 배워서 문재완 글꼴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보신 공 박사는 “자판을 보지 않고 타자해야 셈틀로 글 쓰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소.”라시며 내게 공 박사님 댁으로 와서 배우라고 하셨다. 내가 밤 11시부터 12시까지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니 그때까지 주무시지 않고 기다렸다가 날마다 1시간씩 셈틀로 글을 쓰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렇게 해 내가 자판을 보지 않고 300타까지 글을 쓰니 “이제 되었소, 이 선생은 글을 잘 쓰니 피시통신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한글운동을 합시다.”라고 기뻐하셨다. 

 

그때 공병우 박사는 정부가 한글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 두벌식 자판을 국가 표준으로 정한 잘못을 바로잡으려다가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이야기를 피시통신에 올렸는데 조회 수가 900명이 넘게 나왔다. 보통 100명이 넘는 조회 수가 나와도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내가 공병우 박사 아이디로 “내가 배운 주법과 주도”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조회 수가 1000명이 넘은 것을 보고 “이 선생 글은 꾸밈이 없고 글이 솔직해서 셈틀로 글을 쓰면 더 글을 잘 쓸 것이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 글은 1966년 내가 대학생 때 국민문화연구소 토요강좌 때에 성균관대 2대 총장을 지낸 이정규 박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 공병우 박사가 한글기계화운동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이야기 글.  © 리대로


공 박사는 1906년 태어나 일본 식민지 때에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작문 숙제로 일본인 교장 선생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그 교장은 혼내지 않고 오히려 전교생이 모인 조회 시간에 공박사가 쓴 글을 읽어주면서 글은 그렇게 꾸밈없이 제 생각을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칭찬받았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내 글이 거짓이 없고 쉬운 우리말로 써서 좋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래서 칭찬을 하면 소도 웃고 춤을 춘다고 공병우 박사 칭찬이 내게 자신감을 주어서 날마다 한글사랑 글을 써서 피시통신에 올렸다. 그렇게 공 박사는 교수나 박사,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바른 생각을 하고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을 더 알아주었다. 

 

그래서 교수나 일류대학을 나온 이는 공 박사를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은 솔직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이 겨레를 위해서 한글기계화 복음을 전하려고 몸 바치는 모습이 성인처럼 보였다. 그때 공병우 박사는 날마다 한글사랑과 한글기계화운동 글을 써서 피시통신에 올리고 그 글을 종이로 뽑아서 통신을 안 하는 이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는데 “내 글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읽는 사람은 이 선생뿐이오. 학벌이나 권위만 내세우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보다 실천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고 쓸모가 있소.”라시며 나를 알아주고 하나라도 내게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셨다. 그래서 나는 공 박사에게 인정을 받으며 모시고 한글운동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그때 내가 공병우 스승을 모시고 피시통신을 통해서 한 남다른 한글운동 할 때 일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나는 공병우 박사와 함께 누리꾼 1세대다.

 

그때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들 피시통신이 생겼고 그곳에 한글사랑모임이 있었다. 공병우 박사는 날마다 그 곳에 한글사랑과 한글기계화, 과학 중요성 들들 글을 써서 올렸다. 나도 공병우 박사처럼 한글사랑모임에 자주 글을 써 올렸다. 그래서 그때 많은 젊은이들이 공병우 박사와 내가 쓴 글을 읽고 한글사랑꾼이 되었다. 그때 한글사랑꾼들은 통신상에서 글로만 만난 것이 아니라 가끔 한글회관과 한글문화원에서 만나 토론도 하고 한글사랑을 한글기계화에 힘 쓸 것을 다짐했다. 

 

그때 만난 이들 가운데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있었는데 중학생인 김용묵 군과 초등학생인 최재길 군은 다음에 공병우 박사처럼 셈틀 전문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두 사람 모두 과학기술대를 나와 셈틀 자판 연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공병우 박사 글을 읽고 감명 받은 이들이 세벌식사랑모임을 만들고 지금도 셈틀자판을 연구하고  한글기계화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공병우 박사가 이렇게 우리나라를 정보통신 선진국으로 올려놨는데 정부와 학자들이 공병우 정신과 업적을 외면해서 한문나라인 중국보다도 정보통신 발전과 과학 발전이 느리고  나라가 주저앉게 되어서 안타깝다.

 

▲ 공병우 박사를 모시고 한글기계화연구와 운동을 하는 장님인 유한중 군과 나를 불러 함께 활동하는 것을 소개한 1993년 한국일보 보도 기사 찍그림.  © 리대로


2. 영문으로 쓰던 통신 아이디를 한말글로 쓰게 하다. 

 

하이텔과 천리안 들 피시통신에서 이름(아이디)을 영문으로 쓰게 했다. 그래서 나는 하이텔에 한글로 쓰게 해달라고 건의를 했더니 들어주어서 아이디( 통신이름)를 한글로  ‘나라임자’라고 했다. 지금도 그때 함께 하이텔 통신을 하는 이들은 나보고 ‘나라임자님’이라고 기억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하이텔에 글을 쓰려면 회비를 내야 했는데 좋은 글을 자주 올리는 이들에게는 논객이라고 해서 통신비를 받지 않았다. 나도 하이텔에서 그 혜택을 받았다. 참으로 하이텔이 고마웠는데 없어져서 안타깝고 오늘날 미국이 만든 얼숲(페이스북)처럼 발전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때 한글사랑모임 모람들은 인터넷을 ‘누리망, 누리그물’이라고 하고 이메일을 ‘누리편지’라고 우리말로 했다. 그런데 누리통신인들을 ‘네티즌’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거슬려서 한글사랑모임 뜻벗들에게 ‘누리꾼’이라고 바꾸자고 했더니 많은 젊은이들이 좋다고 써주었고 지금은 이 말이 사전에도 올랐다. 우리는 새로 말을 만들 줄도 모르고 만들어 쓰려고도 않는다. 그리고 그대로 외국말을 쓰니 우리 말글살이가 불편하다. 그때 한글사랑모임 젊은이들과 함께 한자혼용과 한자병기 정책을 반대하는 운동,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 한글국회 만들기 운동을 했다. 언론은 그런 활동을 보도해주지 않는데 누리통신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내 활동을 알릴 수 있어 좋았다.

 

▲ 신문이나 방송에서 누리통신에서 내가 쓴 글을 보고 이렇게 소개(경향신문)해주기도 했다.  © 리대로


3.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 정하자는 운동을 하다.

 

그때 한자혼용이나 영어조기교육 반대활동 들 한글을 살리고 빛내려고 많은 활동을 한 것 가운데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1호로 하자”는 운동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데 쓰지 않아서 빛나지 않고 있기에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1호”로 정해서 국민들이 한글이 얼마나 훌륭하고 고마운지를 깨닫도록 하고 싶었다. 더욱이 국보1호인 ‘숭례문’이 불타서 그 가치가 떨어졌기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데 문화재청은 국민의 소리를 외면했다. 그 뒤에 국회에 청원을 했더니 한글이 빛나는 것을 방해하려고 국보 순위를 없애버리는 꼼수를 부렸다.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정문(광화문)에 걸린 한글현판을 떠버린 것도 그런 얼빠진 짓이었다. 무엇이 귀중한 문화재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와 겨레를 일으키는 것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 1996년 한글회관에서 한국바른말연구원 이름으로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1호로 정하는 토론회 때 사진(아래)과 피시통신에서 그런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보도한 기사 제목(위)  © 리대로


4. 한컴 “아래아한글 지키기“ 운동을 하다.

 

참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은 못나고 어리석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서 그 장제 원리와 특징을 살려서 셈틀을 이용하면 한글이 더욱 빛나는 데 가로 막았다. 세벌식 자판에 조형형 코드로 국가 표준을 정해야 한글이 살고 국민이 편리하게 말글살이를 하는데 두벌식 자판과 완성형으로 글을 쓰는 방식을 국가 표준으로 정했다. 한글 24글자를 조합해서 11172자를 조합해 쓸 수 있는데 정부는 2350자만 쓸 수 있는 완성형을 국가표준으로 정해서 한글이 가진 장점을 못살게 만들어 한글을 빛나지 못하게 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정부요 어리석은 엉터리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공병우 박사는 그 정부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때 세벌식 조합형 글쓰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글과컴퓨터 회사가 어렵게 되어 두벌식 완성형 코드를 구현하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 넘어가게 되었다. 한컴은 공병우 박사가 도와서 창업하고 힘들게 키운 회사다 그렇게 되면 그 회사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공병우박사 뜻과 노력이 무너지는 일이고 한글을 세벌식 조합형 방식으로 글을 쓸 길이 막히는 것이었다. 또한 한글 발전을 가로막혀 큰 국가손실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소기업인들과 한글단체를 이끌고이 한컴지키기운동본부(회장 이민화)에 참여해 열심히 활동을 했다 다행히 한컴은 살았다. 이 일은 국민이 나서서 한컴과 한글을 살려낸 중대한 일이었다. 

 

▲ 한컴 아래아한글지키기모임 화원들이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리대로



5. 누리꾼들이 모여 정치개혁운동에도 나서다.

 

2000년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을 막아 정치개혁을 하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조직했을 때에 누리꾼들도 그 일을 돕자고 ‘총선정보통신연대’를 만들었다. 그때 하이텔, 천리안들에서 활동하던 논객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신문 대자보 이창은 대표가 앞장을 섰고 나도 힘껏 밀어주었다. 참여연대 손혁재 사무총장과 함께 나도 그 신문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어 한글회관 강당에서 총선시민연대 박원순 상임위원장과 성유보 한겨레신문 논설위들이 참여해 출범식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대자보 이창은 대표는 역사학을 전공한 논객으로 인터넷신문 창시자인데 대자보 시작 때부터 나는 그 신문에 지금까지 한글운동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하이텔통신에서 만난 이창은 대표가 고맙고 든든하다.

 

▲ 2001년 인터넷신문 대자보 이창은 대표(왼쪽 끝)가 앞장서서 만든 총선정보통신연대 출범식 때에 나도(오른쪽 끝) 박원순, 성유보 선생들과 함께 참여했다. (노동일보 보도 사진)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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