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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성적 순? 이상문학상의 이상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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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순
기사입력 2020-02-05

수년 전 문예연구’라는 문학계간지에 평론을 게재한 적이 있다. 청탁의뢰서에서 원고료를 확인했고 글을 써서 보냈다. 그러나 투고한 뒤 책이 나오기까지 원고료 입금이 꿩 구워먹은 소식이었다. 청탁의뢰서에서 고료가 얼마인지 명시되어 있었지만 재능기부도 고려해 달라고 적혀 있었던 부분이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 좀 더 기다려보다가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원고료를 달라고 전화하는 일이 쑥스러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글을 쓴 대가를 제대로 받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얼마나 속상하고 모멸스러웠던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할 지경이었다. 집필을 위한 책 구입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고료를 아끼려고 나를 빚 독촉하는 사람쯤으로 만든 해당 출판사와 다시는 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고 그 뒤로 그들과 놀 일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최근 이상문학상파동이 빚은 작가들의 문학사상투고 거부 운동을 보면서, 달라고 줄기차게 재촉하지 않으면 원고료 줄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문학계간지가 떠올랐다. 문학계간지는 대개 문학출판사를 끼고 있으며, 작가들을 쥐고 흔드는 문학출판사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원고료를 떼먹으려고 했던 자들은 문학 시장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을 것이다. 문학출판계에서는 그래도 규모가 큰 (주)문학사상도 출판계 불황이나 문학책 시장의 어려움을 내세우며 작가들을 발 아래 두려고 했던 행태를 합리화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리는 작품들의 저작권이지만,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의 이상한 행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문학사상은 해마다 단편소설 중에서 이상문학상 이름으로 대상 1편과 추천우수작 여러 편을 선정하여 한 데 모아 책으로 만들어 파는 관행을 오랫동안 지속해 오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매우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문학상의 경우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오직 한 작품에게 주어질 뿐이며 수상작과 경합을 벌인 작품둘은 후보에 그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다. 아니 문학뿐 아니라 어떤 분야의 상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은 대상, 우수상 등 여러 타이틀로 분류된다. 다른 문학상의 수상작에 해당하는 것이 대상 작품이고 후보작품이 우수작인 격이다. 특별상 이름으로 지난 연도에 대상을 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책에 실리는데 우수상을 여러 번 타면 특별상을 주기도 한단다. 여기에다 심사평도 곁들이면서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희대의 걸작이 탄생했다는 극찬의 글까지 들어가면 분량이 제법 두툼해진다. 

 

출판사로서는 단편소설 한 편을 파는 것으로는 돈이 되지 않으니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우수라는 이름을 붙여서라도 여러 작품들을 끌어 모아 넣고 싶었겠지만, 문학을 등급화하고 서열을 매기는 이상한 관행을 작가들에게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은 권력자의 갑질이나 횡포에 다름없다. 대상 수상 작가는 차치하더라도 자기 소설이 2등이라는 서열을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작가가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그동안 이런 이유로 우수상을 거부한 작가가 나왔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해당 작가들로서는 비굴함을 어쩔 수 없이 감수했는지 아니면 그것이 얼마나 작가의 자존심을 긁는 일인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나마 2010년 대상 수상자인 소설가 박민규가 문학상에 회의적이지만 수상 거부가 소용없다고 느꼈다고 말한 데서 문학상을 편하게 대할 수 없는 작가의 속내를 조금 읽을 수 있지만 이런 심정을 드러낸 작가도 드물었다. 

 

이상문학상 자체도 작가 이상의 작품 경향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가나 작품에게 주어진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기실 한국의 허다한 문학상은 등단한 지 일정한 연수가 되고 활동을 활발히 하는 작가가 순번대로 받는 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문학상을 상품화하기 위해 작가들에게 등수를 매겨 줄 세우는 문학사상의 전략은 매우 독보적이다.

 

이상문학상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수상작과 후보작을 함께 묶어 책으로 내는 다른 문학상 출판사도 문인이나 작품 줄 세우기의 혐의를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과 후보작의 이름 아래 작품을 한 곳에 모으는 위계화 작업에 문학이 소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우수작이니 후보작이니 하는 것은 오로지 책 판매가 가능하도록 들러리 서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독자들은 문학상 대상작이나 수상작이 가장 좋은 작품이고 우수작이나 후보작은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이고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차별적 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

 

문학잡지를 통한 작품 게재 기회나 출간 등을 무기로 문학출판사가 작가에게 휘두르는 갑질은 여러 번 터져 나왔다.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그때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국 문단은 자정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대형 문학출판사가 문학권력이라는 비판이 나왔음에도 기껏해야 수십억 원의 자본으로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겠느냐며 감싸 안는 목소리도 나왔다. 출판계와 언론을 정점으로 한 한국 문단 지형도에서 자정 능력을 잃은 문단에게 작가의 출판사 종속을 해결하라고 요구하기는 더 이상 힘들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만 열심히 쓰면 먹고사는 생계가 해결될 경우 출판사에 얽매일 일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생계는 정부나 지자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작가들을 실업급여 받지 못하는 실업자로 규정하여 일정한 소득 기준에 따라 격년마다 실업급여에 해당하는 수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현재의 맹아적인 창작지원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창작생활을 하는 데 최소한 굶어죽지 않을 수준의 도움이 아니라 작가 월급을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지급하는 식의 획기적인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조앤 롤링이 젊은 날 가난한 문인에게 주는 창작지원금으로 버티면서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문인에 대한 창작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타 분야와의 형평성이나 국민의 여론을 걱정하고 있지만, 국민 세금으로 작가를 먹여살리지 않으면 권력화된 문단의 횡포와 영혼 없는 작가의 양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의 폐해는 고스란히 독자들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작가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감당하도록 요구하는 문학권력의 횡포를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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