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건 참겠는데, 우아하지 않은 것은 좀 참기가 어렵다. 회사에서 품위유지비라는 걸 지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로 품위가 유지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아하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가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덕지덕지 처바른 럭셔리 제품으로 우아함이 생겨나는 건 아니다. 그냥, 돈 좀 많겠네 혹은 별로 현명하지 않은 소비를 하는군,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돈으로 우아함을 사기는 어렵다.
좌파들은 가난해서 그런지, 우아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사는 게 힘드니까 최소한의 자기 존엄성 마저도 지키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생계형 전향’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막상 그 결정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질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나도 그 상황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감정과 논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복합적이다.
하여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이제 한국은 보수들의 영구집권에 대해서 걱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듯 싶다. 그 실력으로 영구 집권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야당 하는 거 보면,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면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하여간 야당은 존재감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무게감 있는 개인이 툭툭 찔러주는 그런 맛도 요즘은 없는 듯 싶다. 한동안 진중권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도 지친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타이밍이 아닌 것인지, 의미 있는 반대추 역할을 해주는 개인도 거의 없는듯 싶다.
‘얼음왕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손석희의 경우는, 일종의 거울과도 같았다. 그 스스로 뭔가 얘기를 하기 보다는, 그에게 비치어진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박근혜의 “지금 저와 싸우시자는 건가요?” 등 주옥 같은 어록들이 손석희의 거울에 비치면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런 그가 이제 JTBC로 옮겨간다. 나는 그가 종편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가 MBC 사장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은 – 아마도 당분간 – 벌어지지 않았다. JTBC에서 얼마나 좋은 대우를 약속했을까, 그런 것도 한 가지 시선이지만, 새로운 MBC 사장이 또 얼마나 달달볶았거나 아니면 달달 볶을 것이 예상되었을까, 그런 게 또 다른 시선일 수 있다. 그라고 해서 JTBC로 옮겨가면서 마음이 편했을 것인가?
하여간 상황이 이러다 보니, 새누리당의 질주에 대해서 마땅히 견제구를 던질 세력도 없고, 그럴 위인도 안 계신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상에서 쓰느니 마느니, 그런 논쟁이나 하고 있고. 그 정도는 승자의 아량으로, 좀 너그럽게 넘어가주면 안되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목포의 눈물’도 금지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 아닌가?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느닷없이 터져 나온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이거 누가 시킨 사람도 없고, 사주한 사람도 없다. 미국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알 턱도 없고, 시시콜콜하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야말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좌충우돌, 자승자박, 뭐 그런 형상인데, 참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이 너무 우습게 보이니까 자기네들 하고 싶은 데로 막 하는 셈인데,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올라갈 때에는 내려올 길을 조심해라, 그런 말이 있는데, 워싱턴 갈 때에는 귀국길을 조심해라, 그렇게 변형해서 써도 좋을 정도이다.
앞으로 5년, 뭐하고 이 시간을 보내나 싶었는데, 심심하지는 않을 듯싶다. 상상초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전율감도.
‘꼬질꼬질’, 선거에 패배한 사람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꼬질꼬질해졌다. 진 것도 진 것이지만, 하여간 경제의 전환이 늦어지면서 먹고 사느라고 좀 꼬질꼬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우아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도 역시 진흙탕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듯 싶다. 너무 아무 것도 없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는 문제다. 견제자 없이 권력과 금권을 온통 틀어쥔 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뻔하지 않은가?
이래저래, 참 우아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가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