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최근 각료 인선작업을 하고 있는데, 중도성향의 사람들을 거듭 등용하자 진보세력 일각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온라인판이 9일 보도했다.
오바마는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두고 행정 각료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존 매케인 후보와 절친한 부시행정부 국방장관을 유임시키는가 하면, 전통적 친 기업·자유무역 성향의 경제전문가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같은 오바마의 선택은 그의 당선으로 새로운 진보세상을 바라던 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최근 오바마의 선택은 보수의 상징인 칼 로브나 러시 림바우의 칭찬까지 받을 정도라고 IHT가 언급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아직은 평가를 삼가는 분위기. 그들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진보성향의 오바마에게 아직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후보시절 약속했던 바를 지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 다음 인선에 진보인사가 지명하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
오바마 인수팀은 그가 지금 내무장관 자리를 놓고 크게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내무장관 지명이 오바마를 계속 진보 대통령으로 믿을지 말지를 가를 리트머스시험이라며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오바마 조각에 칼로브가 칭찬을?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오바마의 인사 보다는 정책에 주목한다. 오바마는 최근의 금융위기 극복과 사회복지향상을 위한 21세기 판 ‘신 뉴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수천억 달러를 들어 사회간접자본과 사회안전망, 그리고 친환경산업에 투자해 곤두박질치는 경제를 살리려는 것.
이에 대해 ‘아메리카미래연구소’(IAF)의 대표이자 제시 젝슨 목사의 대통령 후보 캠페인 때 수석 보좌관을 했던 로버트 보로사지는 IHT와 대담에서 “그가 진보 아젠다를 펼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중도노선을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수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유명 인터넷 정치논쟁 사이트인 ‘데일리코스’(DailyKos.com)의 창립자인 마르코스 마우릿서스도 아직 오바마를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인물보다는 정책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우릿서스 보단 좀 가혹한 이들도 있다. 크리스 브라워즈는 자신의 사이트인 ‘오픈레프트닷컴’에 “왜 오바마 진영에는 진보를 대변할 사람이 한명도 없느냐”고 분통을 터뜨렸고, 케빈 드럼은 진보적 잡지 ‘머더 존스’(Mother Jones)에 기고한 글에서 “왜 우리가 그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복잡한 반응은 오바마를 향후 어떻게 볼지 많은 논란거리를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언론이 그를 가장 진보적인 상원의원으로 평가했고 진보 인사들은 그의 당선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오바마는 이념보다는 실용을 그리고 정통 좌파이론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사회보장은 아닐 지라도 대부분의 미국인이 건강보험 혜택을 보도록 하려는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정책을 비판하며 타협적 대테러 약화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바마는 중도·실용, 평가는 정책으로” 하지만 오바마와 보좌진은 당선되고 얼마 안 돼 진보진영을 향해 일부 공약이 좀 늦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복지를 위한 세금인상, 북미자유무역협정 협상재개, 군 내 동성에 규제철폐 등이 그 것이다. 또 16개월 안에 이라크 병력 철수도 군 내부의 의견을 더 듣고 결정하겠다고 하고 있다.
동시에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진보세력의 노력보다는 정치판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시기였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상은 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하고 있고, 정책도 경제문제 해결, 초록기술을 활용한 기부변화와 에너지대안 마련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이라크 논란은 이제 병력을 철수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할 것이냐다.
각료 지명자들도 진보성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재무장관으로 오바마의 경제고문에 지명된 로렌스 서머스는 임금 불공정, 금융산업 규제 등 좌파들이 요구하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진보 잡지인 ‘더 내이션’의 발행·편집인인 카트리나 밴덴 휴벨은 이에 대해 “지금의 서머스는 93년의 서머스가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휴벨은 힐러리 로뎀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그리고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고문이 주도하는 안보팀에는 비판적이다. 그녀는 ‘더 내이션’에 쓴 글에서 오바마는 왜 자신처럼 이라크 전쟁 초기부터 전쟁을 반대한 사람을 기용하지 않았냐고 질타했다.
휴벨은 진보진영에게 필요하면 밖에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잘하는데, 이젠 가능하면 내부에 들어가서도 압박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오바마가 그렇듯이 진보진영도 이제 오바마에게 실용적으로 대해야 한다”며 “아직 평가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내무장관 지명이 리트머스시험대” 대부분의 인물이 중도에 맞춰지는 동안 오바마는 조심스럽게 진보행보도 하고 있다. CIA국장 인선에 자신의 선거를 도왔던 정보전문가를 앉히려다 비판을 수용해 취소했다. 재향군인장관에 부시행정부에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해 유명해진 대장 출신의 에릭 신세키를 지명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도 지난 주 보좌관으로 진보적 경제전문가인 자레드 베른스타인을 지명했다.
진보진영은 지금 남은 요직에 진보인사를 앉히라고 오바마에게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내무장관에 그리잘바, 미국무역대표로 자비에르 베세라 하원의원(캘리포니아), 에너지장관에 에드워드 마키(매사추세츠), 농업장관에 짐 맥가번(매사추세츠)를 기대하고 있다.
팀 카펜터 '아메리카진보민주당원'(PDA)의 전국 대표는 게이츠 장관 유임(기용)에 대해 “놀랍다”며 “오바마가 데려오는 사람마다 그의 오른편에 있는 인사들”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그는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며 “문제는 어떤 변화냐는 것인데, 우리는 오바마가 보다 진보적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