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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뽑았으니, 체면치레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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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방식
기사입력 2008-11-03

세계인들에게 미안하다고 4년 전 눈물을 흘렸던 미국인들이 있었다. 재선에 성공한 부시와 한 나라에 살기조차 싫다며 북부 국경을 넘었던 이들이다. 그들이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이제야 체면치레 좀 했다”며 화사하게 웃을 수 있을까?
 
좀 우스꽝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대선 ‘족집게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인트루이스 북서쪽 미시시피강가 작은 마을 ‘링컨 카운티’가 그 곳. 한국서도 가끔 민심을 예측할 때 거론되는 제주도와 같은 곳. 지난 50년 동안 빗나간 적이 없다니 한번 알아는 볼 일이다. 타임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족집게 민심은 오바마란다. 
 
샛길로 빠진 김에 좀 감성적으로 한번 가볼까. 인기 절정의 월드스타 안젤리나 졸 리가 한 연예정보지와 대담에서 이랬다. “오바마는 국제적 정의를 위해 싸우죠. 다양한 인종이 모인 우리 가족을 위해 오바마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게 좋겠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벤 애플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시카 알바, 스칼렛 요한슨, 린제이 로한, 수전 서랜든... 8월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덕에 덴버 시민들은 LA 시민들도 못 보는 할리우드 스타를 매일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특혜를 누렸다나.
 
족집게 민심은 오바마
 
지성인 사회에선 어떤 반응일까. 지난 8일 로이터가 재미있는 외신 하나를 전했다. 61명의 과학(의학, 화학, 물리학)분야 노벨상 수상 미국인들이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공개서한 뼈대는 이렇다. “미국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새로운 비전의 지도자를 원합니다.”
 
인문이나 사회를 모르는 이들이 사고 쳤다고는 하지 말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가 이탈리아의 한 신문 기고문에서 이랬으니까. “미국 경제가 긴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1929년 대공황에 맞먹을 상황이죠. 금융기관의 부정직과 당국의 무능 때문이죠. 11월 대선결과는 분명합니다. 누가 공화당 후보를 찍겠습니까?”
 
이쯤해서 사회과학을 동원해 보자. 투표를 안 하고도 민심을 알 수 있는 건 여론조사 덕이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신문)가 지난 11일까지 등록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바마가 53%로 매케인을 10% 앞섰다. 갤럽에선 7%, CNN방송에선 8% 오바마가 앞섰다. 
 
▲ 존 메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와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     © CBS노컷뉴스

승자독식제(주별로 이긴 후보가 선거인단 싹쓸이)라는 특이한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여론조사로는 가늠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으니 선거인단 수를 따져봐야 한다. 전문기관인 ‘인트레이드’에 따르면, 오바마는 4년전 존 케리가 이겼던 모든 주, 부시가 이겼던 네바다·플로리다·아이오와·뉴멕시코에서 승리해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364명을 확보할 것이란다. 매케인은 174명에 그치고.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소식은 8개 스윙(혼전)주의 신규등록 유권자 수.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 13일 보도에 따르면, 민주·공화 양당의 신규등록 유권자수가 적게는 2대1에서 많게는 6대1로 벌어져 투표율이 지난 대선정도면 오바마 압승이 예상된다는 것. 정치전문 사이트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도 오바마가 최소 27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이긴다고 추정했다.
 
“누가 공화당 후보 찍겠어?”
 
당연히 공화당의 전망이 궁금하다. 한 시사주간지가 공화당 내부 인사를 대상으로 한 질문에, 9월 중순까지만 해도 매케인 승리를 점쳤던 이들이 지난 11일에는 오바마(무려 80%가)를 꼽았다. 뉴트 깅그리치 공화당 전 하원의장의 말이다. “매케인은 경제이슈에서 오바마 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선거예측은 이렇게 싱겁게 결론이 난다. 도대체 어떤 이슈가 쟁점이기에 투표를 3주나 앞둔 시점에 하나같이 오바마 승리를 점치는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를 중심으로 한 외교·안보 결정론이 퇴색한 건 왜일까? 매케인이 그토록 바라는 ‘브래들리 효과’나 ‘언더독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삼척동자도 아는 답이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1929년에 버금갈 정도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으니까. 미국 최대 금융기관이 잇따라 무너지고 세계 금융자본의 집결지였던 월스트리트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그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매케인에게 뾰쪽 수가 안보이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는 공화·민주 간의 보혁 경제논쟁을 뛰어넘는 것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줄여주고 기업들에게는 돈벌이를 보장해준 공화당. 부자 세금을 높여 서민복지를 추진하려는 민주당. 둘의 전통적 공방도 ‘월가 쓰나미’ 한 방에 묻혀버렸다.
 
미국식 자본주의야말로 인류 최후 최고의 경제시스템이라고 ‘역사의 종말’에서 극찬했던 보수 경제학자 후쿠야마가 말을 바꿨다. "규제 완화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미국의 대표적 정책이 종말을 고했습니다. 작은 정부론에 집착한 미국이 금융규제를 소홀히 해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습니다."
 
‘언더독 효과’ 지나친 욕심
 
오바마나 민주당이 이런 금융위기를 돌파할 뚜렷한 비전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갤럽이 14일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경제난이 계속 악화될 것이며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돼도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제위기 대응능력에서 매케인(37%) 보다 오바마(53%)를 선호하는 여론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양당 후보간 맞붙은 3차례의 TV토론은 사실상 금융위기 해법 대결이었다. 2차토론까지 마친 뒤 오바마가 승기를 잡았고 둘은 앞다퉈 금융위기 해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정 심판론에 매케인이 남아날 수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부자당을 좋아할 서민이 어디 있겠는가.
 
금융위기 충격은 그렇다 치자. 양당의 전통적 정쟁으로는 유불리를 따져봐야 별무소용일 테니. 하지만 ‘쓰나미’ 속에는 9·11사건과 대테러(사기)전쟁에 희생된 이들, ‘카트리나’로 죽은 이와 1년이 넘게 제집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미국인들의 처참한 삶이 오롯이 배어 있다.
 
금융위기는 이렇게 이념논쟁을 부추긴다. 오바마는 벌써부터 매케인과 신자유주의의 폐해, 그리고 부시정권이 망쳐놓은 중산층의 삶을 조목조목 공략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 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여론은 오바마의 ‘변화론’을 선호하고 있다.
 
올 대선 최대의 이슈로 유권자의 69%가 경제를 꼽지만 여전히 외교문제(이라크·아프간 전쟁 포함)도 핵심 이슈. 2004년 선거에선 53%가 외교이슈가 중요하다고 꼽았다. ‘거짓말 전쟁’으로 현지인 수십만명과 자국군인 1만여명이 희생됐으니 여론악화는 당연지사.
 
부시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세계를 괴롭히는 깡패나라’라는 욕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자국 안에서조차 불안에 떨고 있으니... 지구촌 어디를 가나 때를 가리지 않는 테러위협으로 극심한 피로감에 쌓여 살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으니 처량한 신세다.
 
‘SICKO' 안봤다고 모를까?
 
정작 서민들은 맹장수술 하나 받으려 해도 1천만원이 넘게 들어 병원에 갈 엄두조차 못내는 ‘복지 후진국’은 안살아 본 이는 그 고통을 알 리 없다. 마이클 무어의 ‘SICKO’를 안 봤다고 모를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평생 마련한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알리 없다.
 
선거 때면 오르내리던 가치 이슈들은 이젠 별 볼일 없는 처지다. 낙태, 동성애, 불법이민, 기후변화, 줄기세포연구, 인종 등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최근까지 ‘브래들리 효과’ 입방아가 호사가들의 안주거리였다. 설문에선 ‘오바마’(흑인)라 답하고 실투표에선 반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것. 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인기는 앞서고 선거에선 떨어진 민주당 흑인후보 ‘브래들리’ 전철을 밟을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매케인이 간과할리 없다. 마타도어로 안 되니 최후 선택은 애국주의와 가치론. 정체불명의 페일린과 손잡고 ‘위험한 좌파 무슬림’ 등 가지각색의 헛소문을 퍼뜨리며 이른바 ‘언더독 효과’를 노려보지만 패색은 짙어만 가고 구걸하는 동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대세론은 그 정도 하고, 잠시 미국의 대선 제도를 좀 알자. 선거는 11월 첫 월요일 다음날. 이날 유권자가 뽑는 건 주별 대통령 선거인단. 그 수는 상하원 의원수에 워싱턴DC에 특별 배정한 대표 3명을 더한 538명. 주별로 인구비례 선거인단 수가 배정되는 데, 당선되려면 최소 270명을 확보해야 한다. 선거인단의 대통령 선출투표는 12월 13일. 1월 6일 상원서 결과를 발표하고 같은 달 20일 대통령이 취임한다.
 
선거인단 선출방식은 주 헌법으로 규정하는 데 메인주와 네브라스카를 뺀 48개 주는 승자독식제(Winner-takes-all)를 채택하고 있다. 다득표 후보가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것. 이 제도 때문에 2000년 앨 고어가 유권자표를 48.38%로 부시(47.87%)보다 더 얻고도 선거인단에서 266대271로 패한 적이 있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헌법 가치를 구현하는 장점이 있다나. 선거인단 수가 4, 5명인 메인과 네브라스카에서는 최다득표자가 2표를 갖고 그 외 선거구에서는 최다득표 후보가 1표씩 갖는다.
 
승자독식제, 견제와 균형
 
선거인단 수에서 양측이 268명으로 같으면 하원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주별로 다수당이 1명의 대표를 뽑고 50개주 대표 50명이 1표씩 행사해 결정한다. 부통령은 상원에서 투표한다.
 
이렇게 오바마의 승리를 점쳤는데, 그가 집권하면 미국은 어디로 갈까? 세계경찰이자 1등시민이었던 미국인. 오만과 독선으로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나라. 오바마호에서 이들의 행보는 어떨까?
 
오바마 행정부는 ‘신 뉴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모양이다.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주정부·자치단체의 부채 탕감 등에 거액의 연방예산을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민주당 의원들이 이미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대공황 해결사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예다운 발상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전직 재무장관, 증권거래위원장 등과 만나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 등 경기부양책을 논의했다. 이를 위해 1500억달러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로부터 조건부 지지의사까지 들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보고서는,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12일 내놓은 ‘44대 대통령의 10가지 도전’. 10대 숙제인 셈이다. △금융위기 △녹색아젠다 △스마트파워 높이기 △세계 무역체제 강화 △중국과 협력 △러시아와 협력 △인도와 사귀기 △중남미와 화해하기 △아프리카 키우기 △중동과 협력이다. ‘슈퍼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오바마가 부응할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오바마의 언급은 이렇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두려워 말고 더 좋은 앞날을 향해 나갑시다.” 패닉을 경계하고 낙관론으로 재기 발판을 마련하려는 격려일 것이다. 부자 증세정책, 서민 건강보험 확대, 일자리창출과 경제회복 등의 기조도 마련했다.
 
후쿠야마도 말을 바꿨다
 
하지만 종말을 고한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증은 여전하다. 현 경제위기가 오바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조달러가 넘는 국가부채가 더 늘 것으로 보여 경제난 타개가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
 
오바마 정부에 지구촌 사회가 가장 기대하는 건 외교. 주먹을 앞세우기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새 패러다임의 외교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존경받는 미국’이 될 수 있을지, 깊게 패인 전쟁의 생채기는 또 어떻게 치유할지 지켜봐야 한다.
 
우리에겐 북한핵 처리가 관건. 호시절 허비하다 뒤늦게 타협에 나선 부시 정권과 어떻게 다를지. 한반도 비핵화로 나아갈지가 관심 끈다. 6자회담의 성공을 이루려면 미국에 의존하기 앞서 나서서 북한과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MB정권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이니 자칫 한반도의제에서 한국이 왕따 당하지는 않을 지 우려가 크다.
 
월스트리트저널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행정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로 북미합의를 이룬 것에 오바마는 매케인과 달리 지지의사를 밝혔다. 북한을 고립시키면 핵무기만 늘 것이라고도 했다. MB정권의 대북정책과는 참 멀어 보이니 안타까울 수밖에.
 
오바마 정부는 공격일변도로 몰아붙였던 중동지역, 사회주의 세력 발본색원 차원으로 관리해온 남미, 모른 채 해온 아프리카에 어떤 외교를 펼칠 지도 관건 중 하나다. 물론 이 지역과 선린우호를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바람일 뿐이다.
 
지역별·나라간 자유무역협정의 운명이 어떨지도 한국에게는 특별한 관심거리. 한미FTA를 구걸하기 위해 쇠고기안전성을 부시정권에 갖다 바친 MB정부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오바마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 궁금하니까.
 
오바마가 한미FTA를 반대했을 때 MB정권은 ‘표몰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부시에게 매달렸다. 쇠고기시장을 주고 부시가 레임덕 회기에 한미FTA를 처리할 것이라고 안심시키면서. 우리 국회 먼저 비준해 미의회를 압박하자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줄 것 다주고 받을 것 못 받으면 어찌하나? 줬던 것 다시 내놓으라고 해야겠지?
 
이 정부는 그저 미국식이 최고인줄로만 알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주저앉고 세계를 쥐락펴락 하던 월가 금융자본이 붕괴해도. 신자유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데 망한 체제를 맹신하고 졸졸졸 따라가고 있으니. 공포가 엄습한다. 우린 세계인들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해 본 적도 없지만 체면치레는 언제나 해보나.
 
* 본문은 월간 <말>지 11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기자는 말지 편집위원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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