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시절에 내가 열심히 뭘 한 건 없다. 87년 이후로 조선일보를 거의 안 봤더니, 오히려 그 신문에 뭐가 실리고 어떤 어조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른다. 너무 오래 안보다 보니 그게 왜 문제가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다.
개인적인 신문과의 관계만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내가 초짜 시절, 아마 97년인가? 처음 나에게 와서 인터뷰했던 신문이 중앙일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산자부 담당관에게 새벽부터 끌려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죽고 싶냐는 투의 얘기를 들었다. 물론 나는 콧방구도 안 꼈다. 다만 나를 불렀던 담당관이 아주 나이 많은 주사 아저씨라서 나이에 대한 예우를 해드렸을 뿐이다. 하여간 그 시절에는 신문에 정부를 불편하게 하면, 박사고 뭐고 당장 불려가서 초죽음이 되도록 잔소리를 듣고 와야 했었는데, 나같이 웃기지 말라고 버티면 사실 서로 별 수 없다.
그 시절에는 문화일보를 많이 활용했다. 음, 내가 현대에 있었으니까 당연했다.
가장 오랫동안 내가 기사를 제공했던 곳은 중앙일보였는데, 별 다른 이유가 아니라 환경 대기자라는 분이 새만금이나 이런 것에 대한 기사들에 관심이 많았고 비슷한 이유로 가장 최근까지 같이 작업했던 곳이 문화일보이다. 새만금이나 골프장 같은 얘기 나오면 아무도 안 다뤄준다. 한겨레? 그 시절에는 똑같았다. 개그우먼 한 명을 데려다가 골프 아카데미인지 그런 거 하면서 열심히 골프 광고할 때,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정말이지 나도 피눈물을 흘렸었다. 그 시절에 골프가 환경적으로 문제 있다고 받아준 유일한 신문이 문화일보였다 (KBS와 MBC 피디들이 몇 번 골프장의 환경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아직도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가지고 있는 분이 몇 분 계시다.)
문화일보에는 신문사 높은 분한테 직접 부탁을 받아서 기고도 몇 번 했고, 내가 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주장들은 대부분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서 나갔다.
동아일보에는 서평을 몇 번 썼다. 5~6년 전 생태경제학 관련된 책들에 그나마 관심을 표시하고 서평이라도 실어준 곳이라서 종종 글을 보내게 된다.
2년 전인가? 신동아에 기고하고, 여성동아, 주간동아, 이런데 줄줄이 내 사진이 나간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신동아에 기고한 적이 있다. 하긴 그 시절에는 내가 뭘 잘 몰라서. 우리나라에 나오는 여성지 중에서 어지간한 데에서는 다 한 번씩 취재를 했었다 (그랬음에도 <음식국부론>은 1쇄를 결국 못 털었다. 이제는 인터뷰를 안한다는 삶의 작은 원칙 하나가 그 때 섰다.)
서울신문에는 1년 반이나 칼럼을 썼고, 한겨레에는 워낙 많이 써서 새삼 생각할 것은 없을 것 같고, 이 두 신문을 제외하면 내 글이 가장 많이 실린 신문이 어디일까?
조선일보다. 내가 월급쟁이 시절에 높은 분들의 일종의 '고스트 라이터' 역할을 했던 셈인데, 처음에는 사장이나 그런 사람들이 비서실 통해서 "써라"하고 오니까 끽소리도 못했는데, 나중에는 나와는 무관한 관계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칼럼도 대신 써주게 되는 약간 서글픈 상황이 되었었다. 월급쟁이 박사, 힘 없다. 쓰라면 쓰고, 욕하면 욕하는 대로 먹고 하여간 대빠 힘쎈 사람들 글이 조선일보에 많이 실렸고, 그래서 조선일보에 사실 기고를 많이 하기는 했다. 나의 서럽던 월급쟁이 시절의 후일담이다. 요즘도 그런가? 높은 사람 중에서는 직접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조선일보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 돌고 돌아서 두 번이 왔었는데, 두 번 다 안 썼다. 물론 아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안 썼다. 괜히 썼다가 내 주변 사람들한테 몰매 맞고 약값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고, 어차피 내 책이나 혹은 시민단체에서 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서평은 물론 일절 소개를 안할 것인데, 내막도 잘 모르고, "어이 조선일보 필자, 힘 좀 써보시지..."라고 하는 야유(?)를 감당하기가 무섭다. 그런 게 연관된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런 야유가 사라지면 쓸 것인가? 물론 안 쓴다. 세 번째 현실적인 이유는 아내가 조선일보에 글 쓰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아주 치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 주위에 조선일보 필자라는 이유만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 몇 명 있어서, 조선일보 필자에 대해서 아주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내가 조선일보에 기명으로 글을 쓰면 집에서 쫓겨날 거다. 큰 일 난다. 이 나이에 쫓겨나면 정말 대책 안 생긴다.
최근 시민단체 일각에서 조선일보에 기고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논의가 조심스럽게 있다. 현실적으로 조선일보가 망하지는 않을 거고, 조선일보가 망했을 때에는 아마 새로 창간되는 시사저널 정도 제외하고 한겨레 등등은 이미 망했을 거다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좀 있다. 조선일보는 안 망한다. 지금도 시장점유율 1등에 수익률 1등이다.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다른데 다 망하면 그 다음에 망할 회사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좌파들이 전부 철수하고 나니까 국민들이 가장 많이 보는 조선일보가 오히려 더 극우파 일색으로 변했는데, 그 사람들에게도 세상은 꼭 그렇게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냐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논의가 일각에 있다.
기원을 따져보면, 사실 조선일보와 좌파들이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계기가 아마도 91년 김지하 선생이 "죽음의 굿판"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이 사건은 87년보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지금의 모양새를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좋으나 싫으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일보가 직간접적으로 기획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댓가는 조선일보에게도 컸던 것 같다. 10년 간 그들은 정권을 잃었다.
조선일보가 쎈 건 맞는데, 정론지는 아닌 것 같다. 정론이라고 하기에는 분석의 깊이가 너무 얕고, 또 이데올로기 편향이 너무 강하다. 내가 이 신문을 불신하는 건, 사실 이데올로기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너무 얄팍해서 그렇다. 농업, 환경, 생태, 그리고 기업, 산업, 여기에 문화... 이 정도가 내가 약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데, 이런 분야의 조선일보 기사들은 대부분 초보들이 저지르는 시각의 오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조선일보에서 정치면을 제외하면 특히 문화면이나 경제면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정치면이야 자기들이 그렇게 하겠다는 거니까 오히려 뉴스의 가치가 있는데, 다른 분야는 오히려 분석 수준이 떨어져서 그야말로 속보이는 날탕 기사들이 많다. 물론 한겨레도 그런 날탕이 많다. 결국 정론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어차피 그 신문이 그 신문기는 하다.
자, 처음으로 돌아와보자. 조선일보에 글 썼다가 영 이미지 구긴 사람들도 역대로 한 리스트가 나온다. 김지하가 그랬고, 문부식이 그랬고, 아직은 그런대로 좀 버티지만 김호기가 그렇고...
난 개인적으로 이 이름 뒤에 내 이름을 보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조선일보를 보는 나머지 국민들과 영 대화도 안하고 심통난 사람처럼 좌파들이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쫙 갈라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안 쓰겠다는 말과 너도 쓰지 말라는 말은 조금 다르다.
물론 공개된 토론에서 이런 논의가 시작되면 결론은 집단적으로 대화하고, 시스템으로 움직이자라고 결의가 나올 확률이 많지만, 그거야 처음에 잠깐 해보는 얘기이고 결국에는 곧 개인이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나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거야 자신의 소신과 생각에 따라서 판단할 일이다. 좁게 보면 조선일보에 글 쓰는 것이 원래 영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쓰지 말라고 해도 쓰게 될 것이고, 그게 별로 명예롭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은, 원래 좌파들이 가난하니까 원고료가 "상당하다"는 수준이 되면 고민을 좀 하다가 결국 쓰게 될 것이다. 사실 개인의 선택에 관한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의 기고의 경우에는 꼭 짚어봐야 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대체적으로 신문사에서 원칙적으로 안 한다고 하지만 약간의 가필이나 삭제와 같은 첨삭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교정교열과 관련된 기술적인 얘기지만 문장 하나로 내용의 뉘앙스를 바꾸는 첨삭을 좀 한다. 한겨레에서도... 내가 한겨레 내부 비판한 문장을 편집국에서 지웠던 적이 있다. 이건 좌파나 우파나, 그런 문제는 아니고, 글이 사회로 나오는 중간장치, 그 매체의 운용원칙에 관한 원칙의 문제이다.
아주 유명한 저자들 몇 사람이 사석에서 나와 얘기를 하다가 조선일보에 기고했다가 항의를 하고, 정정보도 해달라는데, 팩스로 "미안해요"라고 찍 날라왔던 사연들을 얘기해준 적이 있다.
평소에 보도자료를 놓고도 살짝살짝 행간에 손을 대는 솜씨로 봐서는 외부 기고에 대해서도 아주 유연하게 결론을 전도시키는 일들을 아마도 살짝살짝 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지우기는 어렵다.
어쨌든 조심스러운 논의이기는 하지만,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문제가 요즘 시민단체나 좌파들 내부에서 질문으로 제기되는 중이다.
핵심을 딱 짚자면, 결국 이렇게 된 상황의 한 가운데에는 안티조선 운동으로 마치 자신들이 무슨 운동권으로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등 그야말로 완전히 신분세탁을 한 우스운 분들이 좀 계시는데, 이 분들이 노무현 시절에 꼭 일제 총독부 시절에 한국인 괴롭혔던 일본인 앞잽이 - 그러니까 조선분들이라는 뜻이다 - 마냥 온갖 패악질을 하고 다니기도 하셨다.
안티조선 출신, 총독부 앞잽이, 랭킹 탑 파이브... 팍 실명을 써버리고 싶은 충동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내가 참는다." 이 사람들, 현실에서는 초강력 울트파 파워를 가지신 분들이라서, 나같은 잔챙이는 눈 밖에 났다가는 당장 다음 달 밥 먹기도 어려워진다.
현실이 조선일보 보다 안티조선을 포장지로 사용한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의 온갖 고위급 위원회에서 패악질을 일삼았던 분들이 더 나쁘다. 조선일보는 자기들 나름대로 계통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뮤턴트들은 계통도 없고, 그야말로 어디 숨었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두더쥐 잡기랑 비슷하다.
운동권에서는 그들에게 "물 흐린다'라는 표현을 전문 용어처럼 쓴다.
이라크 파병할 때 파병해야 경제가 산다, 한미FTA 때, 정권을 뒤에서 흔들지 마라, 골프장 때, 이제는 우리도 민중의 수준을 좀 높이자, 기업도시 할 때, 이런 숫제 평생을 기업에서 살아온 사람들처럼 꼭 대기업 홍보실 과장 같은 소리를 하면서 염치도 없었다. 그 초절정은 황우석 사태 때였다. 그 시절 이 안티조선을 포장지로 사용했던 분들이 어두운 곳에서 맹활약들 하셨다. 아니다, 정말 절정은 2006년 월드컵 때였다. 제발 축구 좀 쇼비니즘으로 몰고 가지 말라는 일부의 항의에 너희들이 정치를 아느냐? 정말 볼만했다.
지난 4년간 패악질의 정도로 치자면 조선일보가 아니라 안티조선을 외피로 두른 분들이 몇 배로 컸다. 이건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것에 대해서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은 결국 기고를 하기로 집단적으로 결정을 하면, 또 역시 조선일보에 먼저 찾아가서 이런 기획을 해보자는 등 이런 시리즈를 열어보자는 등 아마 그분들이 제일 먼저 쓰게 될 것 같다는 우울한 예감이...
<닥터 지바고>의 진짜 주인공은 유리 지바고나 라라가 아니라 코마로프스키이다. 자본주의 시절에도 잘 먹고 잘 살았던 인간이 결국 사회주의 시절에도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이건 체계나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인간 피는 따로 있다"는 아주 숭고한 교훈이 담긴 이 소설의 코마로프스키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지난 4년간 아마 열 분 정도는 맹활약하신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조선일보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이 생각해보고,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은 맞는데, 그보다 더 많이 안티조선이 어떻게 결국 패악질하는 코마로프스키류의 인간들의 놀이터로 전락해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