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의 해석상으로는 사실혼 배우자 일방의 사망으로 사실혼이 종료된 경우에 다른 배우자에게 재산상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입법론적으로 이러한 당사자를 구제하는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윤진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19일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곽배희)의 주최로 열린 ‘변화하는 사회와 사실혼의 법적보호’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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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9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변화하는 사회와 사실혼의 법적보호’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 박철홍 |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사실혼 당사자 일방의 사망으로 사실혼이 해소된 경우에 배우자의 상속권을 부정하는 것이 통설”이라며 “외국의 일부 국가들은 법률혼과 사실혼을 거의 똑같이 다루고 있고, 특별한 법규정 없이 판례가 기존의 다른 재산법적 법리를 사실혼의 경우에 적용하는 나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혼인신고를 해야만 법률혼으로서 보호된다는 것이 일반적 사실로 여겨진다”며 “다른 한편 사실혼이 해소되는 경우에 경제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사실혼 배우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현재로서는 사실혼 배우자를 법률혼과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것은 법률혼 제도를 지나치게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대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혼 배우자 일방이 사망한 경우에 생존 배우자의 보호를 방치하는 결과가 될 뿐이며, 그래도 어느 정도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윤 교수는 부양적 청구권을 제안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부양의 인정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며 부차적으로 현저한 재산적 기여를 했을 때 청산적 성격을 인정하고, 기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므로 재산분할과는 다르다는 것.
또한 윤 교수는 “부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부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인 만큼 포르투갈, 영국 등과 같이 사실혼 배우자가 상속인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양을 위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상속에서 법률혼과 사실혼에 차이두지 않도록 법개정 바람직”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가정법률상담소 위촉연구위원)는 ‘사실혼에 관한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사실혼은 혼인신고라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음으로 인해 법적 보호가 취약하고, 사실혼 배우자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다양한 원인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사실혼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이번 조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실혼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입법 및 정책을 촉구하며, 변화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관계에 있는 가족구성원의 복리와 권익보호를 기하는데 조사의 목적이 있다고 신 교수는 밝혔다.
신 교수에 의하면 이번 사실혼 실태조사 대상자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본부와 전국 30개 지부의 내담자 중에서 설문응답에 동의한 사실혼을 경험한 자들로 모두 134명이며 조사 기간은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20일까지이고, 연구를 위해 개발된 질문지에 자기기입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실시됐다.
신 교수는 “사실혼 경험자(혼외동거 포함)들을 대상으로 실태 및 법적 보호 범위에 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사실혼 부부들은 혼인신고를 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음에도 다양한 사유로 인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사실혼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동조율이 높았고, 사실혼 상태에서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 재산상속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9%가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또한 신 교수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20일까지 20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사실혼에 관한 ‘일반인들의 의식과 태도에 관한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사실혼의 법적 보호정도에 관한 태도와 관련, 사실혼 경험자들은 ‘법률혼과 동등한 보호’가 54.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가능한 폭넓은 보호’가 33.9%로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88.1%에 달했다.
특히 신 교수는 “부부관계의 인정기준 및 사실혼의 법적 보호정도와 내용에 관해 사실혼 경험자가 일반인들 간에는 대체적으로 유사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며 “가정법률상담소 상담창구에서는 사실혼의 경우,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상대방이 혼인신고에 협력하지 않는 등 다양한 사유로 혼인신고를 못하고 살아오다가 갑자기 배우자가 사망해 자신의 기여분을 못 찾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생계유지마저 어렵게 되는 사례를 볼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상속에 있어 법률혼과 사실혼에 차이를 두지 않도록 법개정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거래질서 등이 문제된다면 사실혼 배우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판례 및 입법론적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법 통한 사실혼 당사자들 보호 확대가 근본적 해결책”
안호용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혼인의 다양화와 사실혼의 보호’라는 주제 발표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사실혼 보호는 ‘사실혼의 법률혼화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으나 신고를 전제로 하는 효과는 사실혼에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사실혼의 실태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며 사실혼이 법률혼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실제로 일상생활 과정에서 사실혼 당사자들이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입법을 통한 보호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이와 병행해 상속권이 없는 사실혼의 법적지위 등을 홍보하고 교육해 혼인신고를 유도함으로써 선의의 피해를 예방하는 활동도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안 교수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합하도록 혼인 개념과 가족 개념을 확장해 사고하도록 노력하며, 새로운 혼인관과 가족관에 적합한 제도를 마련토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우리는 현장에서 가정 법률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법률혼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식만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 그리고 기타 가정문제와 관련된 많은 사례들을 접하게 되는데 벌써 10여 년 전부터 사실혼 부부들의 내담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실혼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도 실질적으로 법률혼 부부와 비교해서 여러 가지 법률적·사회적으로 상당히 불이익하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우리나라도 현실적으로 사회변화 등으로 인해 점점 결혼도 줄어들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하다 보면 사실혼 부부의 법적 보호문제가 자연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곽 소장은 “혼인개념의 확장을 통해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 상담소는 열심히 생각해보도록 하겠다”며 “가능한 전국적 통계 수치를 알아보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 불인정은 합리적?
정미화 변호사는 “생존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재산분할은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며 “법원이 ‘준혼’으로 인정하는 사실혼 관계가 매우 제한적인 것이므로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인 상태의 실체적인 혼인관계를 전제로 하는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는 법원의 해석은 변경되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성년남녀의 결합으로 제한해 해석한다면 사실혼과 법률혼의 차이는 혼인신고를 하였는지 여부에 불과한 것”이라며 사실혼 개념에 대한 확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실혼 관계가 중혼적인 관계에서 이뤄지거나 비혼적인 관계에서 이뤄지더라도 사실혼 관계의 일방 배우자의 보호 필요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별도의 생활공동체의 개념으로 인정하고, 재산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정 변호사의 핵심적 주장.
또한 정 변호사는 “상속인이나 유증자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가족법상 법률상 혼인을 전제로 하는 가족과 판례에서 인정하는 좁은 의미의 사실혼(준혼), 혼인의 의사가 확정적이지 않거나 비전형적인 가족공동체를 형성할 의사가 있는 성년가족공동체 관계 등을 모두 망라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각 관계에 따라서 결정한 재산적 법률관계를 처리토록 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상속인 확정 단계에서 사실혼의 실체, 확정돼야”
차선자 전남대학교 법대 교수는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상속 가능성과 관련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속인 확정 단계에서 사실혼의 실체가 확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차 교수는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할 경우에 사실혼 관계에 진정으로 관여했는지에 대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는 상속권자의 확정 과정이 불명료하고 혼돈스럽게 되어 제3자가 누가 상속인이 되는지 알수 없어 거래의 안전에 위험이 된다는 점이 상속권 인정을 부인하는 논거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혼 배우자의 상속권의 근거를 청산과 부양에서 찾는다면 청산과 부양에 대한 정당성은 사실혼 배우자, 그리고 경제적으로 피상속인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부분일 것이라고 차 교수는 주장했다.
또한 차 교수는 “사실혼 배우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실혼 보호의 핵심적 가치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사실혼에 대한 법적 보호는 동시에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보호도 중요한 요인이고, 이러한 사실혼의 유형화를 통한 실체 파악이 결과적으로는 사실혼에 대한 법적 보호에 전제로서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심포지엄에서 사회를 맡은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사실혼의 법적보호 문제가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사실혼 부부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향후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들은 여러 가지 추세나 환경변화 등을 보더라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입법적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앞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곽 소장은 “오늘 심포지엄에서 발표해준 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그분들의 도움을 얻어서 입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www.lawhome.or.kr)는 1956년 창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구조기관으로 가정생활에 필요한 모든 법률문제에 대해 전문상담원과 변호사들이 법률상담, 화해·조정, 무료대서, 무료변론까지 봉사하고 있으며 가정법원 지정 가정보호사건 행위자 상담수탁기관으로서 가정폭력에 관한 상담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 관습에서 비롯되는 남녀차별․부부차별 등 가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가족법 개정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부설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구조 사업의 확대를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해외 및 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설치하고 있으며 2007년 현재 국내 31개 지역, 미국 내 12개 도시에도 상담소 지부를 설치 또는 설치 준비 중에 있고, 향후 전국의 지원과 지청이 있는 중소 도시에 지부를 확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