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수신료 인상에 동아일보가 관심이 많다. 지난 6월27일 사설에 이어 7월에만 기사와 칼럼을 연이어 실어 TV수신료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내용은 KBS 평가에 치중해 정작 TV수신료 관련 논의는 거의 없다. 아마도 수신료를 'KBS수신료'로 착각한 모양. TV수신료가 KBS에 주는 '선물' 쯤으로 간주하고 논리를 전개하면, 논리는 단순명쾌해져 공부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고 KBS만 '조지면' 돼 글쓰기는 편할 듯하다. 방송정책으로서 TV수신료를 상정하면 머리를 무척 써야겠지만, KBS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면 거의 100년에 가까운 노하우를 가진 동아일보로서 글쓰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국 편들기를 위해 독립투사 매도하기부터 시작해 그렇게 수많은 정쟁에서 특정정파 편들기를 위해 다른 정파를 매도해 온 동아일보가 거의 100년의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어찌 이리도 서툰 논리를 동원할까.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동아일보 사설은 "KBS는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굴을 바꿔가며 권력 편향적 보도를 해 왔다"고 지적한다. 친일언론의 대명사 동아일보가 떠올라 한 번 웃는다. '권력의 시녀'에서 또 웃는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자유언론 외치는 기자 자르라고 하자 덤으로 사주가 싫어하는 기자들까지 잘라 '민주투사'로 만들어 준 과거를 두고, 다른 언론사를 향해서 '권력의 시녀'라는 표현을 동원하는, 뻔뻔할 수 있는 재주에 대한 웃음이다. 서툴다 서툴러. 논리전개와 표현 수준이 너무 서툴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TV수신료 쟁점 중 거의 유일하게 지적한 내용이 "수신료를 인상하는 대신 상업광고를 줄인다고 하지만 약속이 지켜질 지 보장이 없다. 어떻게 광고를 줄일지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일단 올리고 보자'는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는 구절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 간 아이의 순수함(?)이 떠올라 또 웃는다. 동아일보의 노골적인 관심영역은 결국 '광고'였다. 한데 굳이 이렇게 노골적이어야 하나. 아니 이렇게 솔직해야 하나. 이 대목에서 동아일보에 해 주고픈 말 한 마디, "쇼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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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KBS 수신료 인상 반대 사설. 그러나 KBS 수신료 인상 반대에 대한 논리는 하나도 없다. © 동아일보 6월 27일자 PDF |
동아일보에 실린 또 하나의 '사설' 같은 칼럼이 있다. 한양대 이민웅 교수의 7월5일자 칼럼 <속임수로 가득 찬 KBS의 수신료 인상극>이다. 언론학 교수인데,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천박한 TV수신료 이해도와 아주 유사한 수준이다. 한 마디로 'TV수신료'를 'KBS수신료'로 이해하고 동아일보 사설처럼 'KBS난타' 외 수신료와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이 없다.
KBS가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지적은 그나마 '언론학 교수'의 흔적으로 읽을 수 있겠다. 반론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KBS 홍보자료에 나타난 '간부 인원 축소 관련 지적'에서부터 경영자료 공개 여부와 이사회 회의록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취재조차 하지 않고 '공발연'을 방패삼아 '찍기칼럼'의 전형이다. 일본말과 미국말을 조합하여 '겐또칼럼'이라고도 한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 작업이나 취재 없이 쓰는 칼럼을 일컫는 말이다.
논리의 표절도 마다하지 않는다. 6월27일 동아일보 사설이 선보였던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시기에 수신료 인상을 관철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는 내용을 "대통령선거의 어수선한 국면을 틈타 졸속과 편법으로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로 문장 중에 삽입한다.
또 동아일보 사설의 "대선에서 '공정방송'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 준 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물어도 늦지 않다"를 "대선에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정하게 보도할 것임을 엄숙하게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수신료 인상은 그런 실천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다음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쓴다. 약간만 생각하고 글을 썼더라면, 오히려 가장 극심한 편파보도의 중심에 서 있는 동아일보에 '공정보도요청' 관련 한 마디 쯤 걸치고 갔으면 '논리의 표절'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비켜갈 수 있을 것을. 이 대목에서 이 교수에게 하고픈 말 한 마디, "쇼를 하라".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KBS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KBS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신료와 연동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의미다.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권력의 시녀로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굴을 바꿔온 KBS라면, 수신료 인상거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차라리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KBS의 '권력지향적 성향'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청자 참여의 실질적인 보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액세스프로그램과 옴부즈만프로그램의 실질적 운영에서부터 시청자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통한 내부 감시체계를 구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장추천위원회 설치를 제도화하고, 후보추천/평가를 위한 공청회 제도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면,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노사 간 합의에 의한 임금삭감 등을 요구함과 더불어 유휴인력의 직종 전환 교육을 통해 수신환경개선작업 등에 투입시킬 수 있는 내부방안 마련 등을 요구해야 한다. 현행 법제도에서 인력감축을 위한 실질적 방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자르지 못했다고 공격하는 것은 '공격을 위한 공격'일 뿐이다.
동아일보처럼, KBS가 가져가는 연간 광고료 6675억 원에 관심이 있다면, '지상파도 있어야겠지만 동아일보와 같은 신문도 있어야 한다'는 미디어균형발전론을 설파하면서,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접근, KBS의 1500원 인상안이 갖는 'KBS독식구조'를 비판하고 적어도 2500원 인상안을 제시, 4000억 가량의 KBS 광고수익을 미디어시장에 환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마저 하기 싫으면, '수신료산정위원회'를 구성해서 수신료 인상 폭과 EBS 배분율 등을 결정하라고 주장하여, 'KBS의 수신료 인상 방안'을 막을 수도 있다. TV수신료에 대한 공부도 안하고, KBS 비난 내용이나 수법도 수 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게으른 논설위원과 객원논설위원의 낡은 논리를 반복하는 동아일보, 그 동아일보가 매번 동원하는 '그 국민들'마저도 동아일보의 주장에 동조할까 의문스럽다. 그래서 동아일보에 조언한다.
"쇼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