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이 주연한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숙제로 새 종류를 적어가야 한다.”며 아이가 새 종류를 묻자 신은경이 ‘씨방새’라고 대답해 사람들을 한참이나 배꼽 잡게 만들었던 장면이 나온다. 난데없이 “웬 씨방새 타령이냐?”며 비속어를 입에 담는 것을 나무랄게 분명하지만, 요즘 국내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몇몇 블랙코미디의 주인공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씨방새’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인격이 형편없는 자의 막되 먹은 말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이들을 보면 솔직히 이 단어를 대신할 적절한 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5월1일, ‘종전 선언’을 위해 항공모함 에이브러험 링컨 호에 행차한 부시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병정놀이에 심취한 위험한 조폭 두목의 등장을 보는 듯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조종사 복장에 전투기를 타고 항모에 도착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람과 닮은 동물을 연상케 했다. 과거 NASA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우주환경에 인간이 처음 도전하기에 앞서 두 마리의 원숭이(샘과 미스샘)와 한 마리의 침팬지(햄)를 준궤도비행에 성공시켰고, 한 마리의 침팬지(에노스)가 궤도비행에 성공토록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쟁의 명분’이라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지도 못했고, 제거하겠다던 사담 후세인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민주주의를 주겠다던 이라크 국민들에 대해 수시로 발포를 해 도리어 죽음의 공포만 안겨주고, 인종간 종교간 갈등만 부풀린 이번 침략전쟁을 두고 ‘승리’ 운운하는 부시는 신은경이 영화에서 말했던 ‘어떤 새’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그가 압도적 군사력을 이용해 전쟁을 부추기면서 다음 대선에서도 ‘미국의 승리’를 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런 종류의 ‘어떤 새’들은 미국에만 서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새’들이 떼를 지어 산다. 그 중에서도 으뜸을 꼽으라면 전두환 前대통령을 들 수 있겠다. 폭력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부시대통령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전두환씨는 지난달 28일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가진 돈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말해 온 국민을 열 받게 했다. “(비자금은) 정치자금으로 다 쓰고 지금은 한 푼도 없다. 인연 있는 사람들과 아들이 도와줘 생활하고 있는데, 그들도 겨우 생활할 정도라 대신 추징금 내달라고는 못한다.”고 말하는 그의 입을 보며 사람들은 또다시 그 어떤 ‘새’를 절로 외쳤을 것이다.
1996년 당시에 추정된 재산만 해도 그가 가진 재산이 1,600억원에 이르렀는데, 뇌물수수 혐의로 부과된 추징금 2,204억원 가운데 현재까지 314억원만 추징당했을 뿐 아직 1,891억원을 내지 않고 버티면서, “그 돈 다 쓰고 30만원도 안되는 돈만 가졌다”는 주장을 한데 대해 아마도 지나가는 개들도 ‘씨’자로 시작되는 그 어떤 ‘새타령’을 짖어대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새들은 개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4·24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이 29일, 의원 선서식을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국회에 참석했다가 ‘불량복장’으로 선서식을 하루 미룬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또다시 그 어떤 ‘새들’을 보았다. 수시로 욕설과 멱살잡이를 일삼는 그들의 입에서 ‘국회의 권위’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타령을 불었다. 이날 의원나리들은 “복장이 저게 뭐냐”, “국회 권위를 뭐로 아는 거냐?”고 호통과 고함을 지르며 줄지어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는데, 이 장면은 마치 그 ‘어떤 새’들의 집단 이동처럼 보였다.
정작 지켜야 할 국민에 대한 예의는 너무도 밥 먹듯이 어기면서,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국회의 권위’ 운운하며 호통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은 조롱과 조소를 보냈다.
불공정한 신문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개정된 신문고시에 대해 거대언론사들이 부르짖는 ‘언론탄압’ 주장도 이 새들의 합창으로만 들린다. 특히 조?중?동은 “정부가 신문고시 개정을 강행한 것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을 옥죄려는 또 하나의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가지와 경품제공을 유료대금의 20%로 하며 신문구독 사절 뒤 7일 이상 강제 투입하지 말 것’을 규정한 신문고시에 대해 ‘비판적인 신문을 옥죄려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어떤 새’들의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만 들린다.
자율경쟁을 목마르게 주장하는 그들이 어떤 특권을 누리며, 횡포를 부려왔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과식과 폭식 좀 그만하라고 멸치 한 마리 덜어내자 “저 놈이 날 굶겨 죽이려 한다.”며 펄펄 뛰면서 악다구니를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진정한 언론 자유는 자기들 멋대로 부당하게 신문을 팔아먹으라는 자유가 아니다. 그런 게 자유라면, 이 나라는 ‘자유의 나라’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런 식이라면 이 지구는 자유가 구속된 억압의 세상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수구보수언론들과 함께 교장 자살사건을 기회로 삼아 '전교조 죽이기'에 나서는 교장들의 움직임도 그 ‘어떤 새’를 연상시킨다. 전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회장 협의회가 ‘전국학교장 대회’를 추진하면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난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전교조합법화 이후 악화일로를 걷는 작금의 학교 위기가 우리의 단결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국 교장 1만3천여 명이 참가하는 서 교장 추모집회를 서울서 열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설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교장들이 앞장서 교단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과히 아름답지 않다.
이상진 교장협의회장은 “전교조가 사과하고 반성해야만 교단 치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을 규탄하는 것일 뿐 편 가르기는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학교를 바르게 경영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장들이 스스로 반성할 생각은 않고, 교단 편 가르기에 나서려는 모습은 우리 교육현장의 앞날을 걱정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씨방새’라는 말은 말 그대로 비속어요 욕이다. 추방해야 할 단어다. 그러나 단어의 추방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짜 ‘씨방새’들을 추방하는 것이다. 물론 추방은 제거와 쫓아냄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 나쁜 이미지를 개선해달라는 요구다. 진정한 명예는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그것을 지켜내려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